‹ 목록으로 망아지 대마법사

2화

매화의 숨이 점점 얕아지고 있었다. "흐윽... 흐응... 흐윽..." 다리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는 이미 짚더미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출산 후 출혈. 그것도 심한 편이군.' 대현자 시절, 인간이든 짐승이든 산모의 출혈은 셀 수 없이 봐왔다. 전장에서, 왕궁에서, 심지어 던전 깊은 곳에서 마물이 새끼를 낳는 순간까지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 모든 경험이 지금 이 순간 하나의 결론으로 모였다. 이건 방치하면 죽는다. 확신할 수 있었다. '출혈량, 색깔, 숨소리... 전부 최악에 가깝군.' 교과서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산후 대출혈이었다. 밖에서는 아까 그 남자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어이 김씨! 저쪽 목초지 좀 봐줘야겠는데!" "어, 알았어! 지금 가!" 발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하필 지금, 다른 데로 가고 있었다. '세상에, 타이밍 한번 예술이네.' 이럴 때 꼭 사람은 딴 데로 가더라. '사람을 부를 시간이 없다.' 마방 문 밖까지 소리쳐볼까 생각했지만, 내 목에서는 여전히 낑낑거림밖에 나오지 않았다. 말도 못 하는 갓 태어난 새끼가 무슨 수로 사람을 부르겠는가. '대현자 시절엔 손짓 한 번, 말 한 마디로 사람을 다 불러 모았는데.' 지금은 이 조그만 몸뚱이로 낑낑대는 게 최선이었다.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상황이었다. 선택지는 하나였다. [마력 총량: 3] [현재 마력: 2/3]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화염구 시전 한 번에 이미 1을 날렸다. 남은 건 고작 2. '세상에, 이게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마력량이라고?' 대현자 시절엔 이런 숫자로는 손톱도 못 깎았다. '회복 마법... 그것도 지혈 계열이면 최소 마력이 얼마나 필요하지.' 해동에서 인간 산모의 출혈을 멈추려면 보통 마력 30에서 시작했다. 물론 산모 상태나 출혈량에 따라 더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지금 내가 가진 건 그 15분의 1도 안 되는 양이었다. '이건 계산이 아니라 그냥 안 되는 거잖아.' [스킬: 회복술(하급)] [필요 마력: 5] [현재 마력: 2/3] [경고: 마력 부족] 예상대로였다. 마력이 부족해서 정상적으로는 시전조차 불가능했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당연한 결과에도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매화의 숨소리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흐윽...!" 시간이 없었다. '그럼... 그 방법을 써야겠군.' 대현자로 살아오면서 딱 한 번 만들어둔, 봉인해두었던 스킬이 있었다. 죽음을 앞둔 순간,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서 만든, 쓰지 않기를 바라며 만든 스킬이었다. '설마 이걸 조랑말 몸으로 쓰게 될 줄이야.'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스킬: 초과시전 - 영혼압축] [설명: 남은 마력을 전부 사용하고, 영혼의 여력을 태워 부족분을 강제로 충당한다.] [페널티: 시전 완료 즉시 강제 수면 상태 발생 (예상 72시간)] [경고: 3일 이상 지속되는 완전 무의식 상태. 회복 불가능한 손상 발생 가능성 있음.] 72시간. 사흘. 그것도 최악의 경우엔 다시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허허, 이것 참 무시무시한 조건이군.' 예전 같았으면 웃으며 넘겼을 조건이었다. '대현자 시절에는 이 정도 페널티, 그냥 낮잠 한번 자고 나면 그만이었는데.' 그때는 몸이 튼튼했으니까. 명색이 대현자인데 어디 가서 쓰러져도 알아서 지켜줄 제자들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 작은 몸으로 사흘을 잠들면, 그 사이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말이 밟을 수도, 사람이 뭔가 잘못 대처할 수도, 최악의 경우 정말로 다시는 못 일어날 수도. '조랑말로 태어나서 첫날 죽는다니, 그것도 참 기가 막힌 엔딩이군.' 머릿속으로 별의별 상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누가 나를 밟고 지나가는 상상, 아무도 모르게 짚더미 밑에 깔려버리는 상상, 그리고 정말로 다시는 못 일어나는 상상까지. '그런데... 그럼 매화는 어떻게 되지?' 매화의 눈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갓 태어난 나를 핥아주던 그 눈이었다. 따뜻했던 그 숨결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온기였다. 그 온기를 만들어준 존재가, 지금 눈앞에서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래, 이건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결심했다. 죽어가는 존재 앞에서 셈을 하는 건 대현자로 살아온 세월 내내 해본 적 없는 짓이었다. 전쟁터에서도,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도, 나는 늘 앞뒤 재지 않고 손을 뻗었다. 그것이 대현자로서의 삶이었고, 그것이 곧 내 원칙이었다. 지금 이 몸이 조랑말이라 해서 그 원칙까지 버릴 이유는 없었다. '몸이 바뀌었다고 마음까지 바뀌면, 그건 이제 내가 아니지.' 우습게도, 그 생각 하나가 결심을 굳히는 데 결정적이었다. [스킬: 초과시전 - 영혼압축 시전 확정] 온몸의 마력이,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빨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찌잉-! 작은 발굽 끝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대현자 시절이었다면 이 정도 빛으로는 성 하나도 못 밝혔을 것이다. '참으로 초라한 빛이군.' 성 하나 밝히던 손이 이제는 손바닥만 한 빛 하나 겨우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빛이 전부였다. 빛이 매화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출혈 부위를 감싸듯, 검붉게 물든 짚더미 위로 은은한 온기가 퍼졌다.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상처 부위를 찾아 스며들었다. '제발... 제발 이걸로 충분해야 한다.' 이 순간만큼은 대현자의 자존심도, 조랑말의 처지도 전부 잊었다. 그저 하나만 바랐다. 매화가 살아야 한다는 것. 매화의 숨소리가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흐윽... 흐응..." 거칠던 숨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알림: 회복술(하급) 시전 완료] [대상: 매화] [결과: 출혈 정지, 생명 반응 안정화] 됐다. 안도감이 몰려왔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말이 안 나오는 몸이라 소리도 못 냈지만, 속으로는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대현자 시절 몇 번의 대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더 큰 성취감이 느껴졌다. '조랑말 목숨 하나 살렸다고 이렇게 기쁠 일인가.' 그런데 정말로 기뻤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경고: 강제 수면 상태 진입] [예상 지속 시간: 72시간] '허, 이렇게 빨리 오는군.' 경고 문구를 보고도 마음의 준비 같은 건 안 됐던 모양이었다. '적어도 인사라도 좀 하고 넘어가지, 이렇게 다짜고짜.' 몸이 무거워졌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대로 짚더미 위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이 스쳤다. '매화 옆에 누가 오긴 할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까.' '혹시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어디 파묻히기라도 하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등골이 서늘했지만, 이미 몸은 통제 밖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인 건, 다시 힘을 되찾은 매화가 놀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었다. "흐응...? 흐응!" 걱정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괜찮다, 그냥 잠깐 자는 거니까...' 그 말을 전할 방법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이럴 때 사람 말 한마디만 할 수 있었어도. '말 못 하는 게 이렇게 서러운 일일 줄이야.' 의식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 마방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사람 목소리가, 뭔가 놀란 듯한 톤으로 울려왔다. "뭐, 뭐야 이거! 매화 피가 왜 이렇게... 어? 근데 왜 멈춰 있어?"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다. '어이, 김씨. 거기서 그렇게 놀랄 거면 좀 더 빨리 왔어야지.' 속으로 투덜거릴 여유가 남아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이어서 뭔가 더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는... 어? 얘 왜 이래? 자나?" 당황한 목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 뒷말은 듣지 못했다. 세상이 완전히 까맣게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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