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름은 강태식. 마흔둘. 서울 소재 IT기업에서 십오 년째 근무하던 남자였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코드를 짜는 개발자였고, 회의실에서 상사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사람이었고, 퇴근길에 편의점 맥주 한 캔을 사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었다. 전염병이 돌았고, 회사는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나는 그것을 축복이라 여겼다. 출퇴근이 없는 삶,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삶. 회의도 화면 속에서 끝났고, 옷도 대충 입어도 됐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좋기만 할 리는 없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생활이 길어지자 몸도 마음도 조금씩 무너져갔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모니터만 보다 보니 밥 먹는 시간도 불규칙해졌고,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늘었다. 체중이 늘었고, 혈압이 올랐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 늘어갔다.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화상회의 속 짧은 인사말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카메라를 끄고 참여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인간이 그럴 때가 있다.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는 것.
그 와중에 부모님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먼저였다. 지병으로 몇 달을 앓다가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는 그 반년을 못 넘겼다. 남편을 잃은 충격이 병을 앞당겼는지, 아니면 원래 예정된 시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두 분의 장례를 연이어 치르며 깨달았다. 이제 나에게는 정말로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형제도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마흔이 넘도록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코드와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장례식장에 앉아 있던 조문객 명단조차 짧았다. 회사 동료 몇 명, 먼 친척 몇 명. 그게 전부였다.
회사에 병가를 냈다.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그즈음이었다. 손이 떨렸고,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찼고,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만성질환이라 진단했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대로 계속 일하시면 큰일 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스스로도 몰랐던 피로를 실감했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을, 머리가 뒤늦게 인정한 셈이었다. 그렇게 짐을 챙겨 강원도 산골, 부모님이 남긴 낡은 집이 있는 구현리로 내려왔다. 집을 정리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아버지가 쓰던 낫과 어머니가 쓰던 절구, 곳간에 쌓여 있던 씨앗 봉지들. 그 모든 것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귀향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초인의 시작이, 하필이면 이런 산골짜기 요양 생활에서 시작될 줄은 나조차 몰랐다. 그때의 나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한 환자였을 뿐이었다.
구현리는 인구가 채 오십 명이 안 되는 마을이었다. 편의점도 없었고, 밤이 되면 가로등 몇 개만이 도로를 밝혔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예순이 넘은 노인들이었다. 나 같은 젊은 축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처음 몇 달은 그 정적이 견디기 힘들었다. 서울에서는 새벽에도 자동차 소리가 들렸는데, 여기서는 밤이 되면 정말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정적이 오히려 편해졌다. 낮에는 재택근무로 코드를 짜고, 저녁에는 산책을 하는 것이 유일한 일상이었다. 의사가 하루 삼십 분 이상 걸으라 했으니 그 말을 충실히 따른 것뿐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마을 뒤편 야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늘 걷던 그 길이었다. 나무 데크가 깔린 구간을 지나면 좁은 흙길이 나오고, 그 길 끝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나는 그 저수지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를 매일 밤 걸었다. 왕복 사십 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 길에서 마주치는 건 대개 고양이 한 마리, 혹은 밭일 마치고 돌아가는 노인 한 명 정도였다.
그날은 뭔가 이상했다.
새소리가 없었다. 평소라면 산비둘기 울음소리라도 들려야 했는데, 숲 전체가 숨을 죽인 것처럼 조용했다. 바람도 없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계절이 바뀌는 중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그럴 때가 있다. 위험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일상의 관성으로 그걸 무시해버리는 것.
나는 평소처럼 걸었다.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였다. 산책할 때는 이어폰을 끼지 말라고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었다. 그 말을 지킨 게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그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저수지 근처, 참나무 두 그루 사이 공간에서 그것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어두워서 형체가 뭉개져 보였을 뿐이라고.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다리를 접었다 펴는 순간, 나는 그게 살아있는 무언가라는 걸 알았다. 크기는 대형견 두어 마리를 합쳐놓은 정도였다. 표면은 딱딱한 갑각으로 덮여 있었고, 등에는 사슴벌레의 그것과 비슷한 뿔이 두 개 솟아 있었다. 다리는 여섯 개였다. 눈은 붉게 빛났다.
곤충이었다. 그러나 어떤 곤충 도감에도 실릴 수 없는 크기의 곤충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머릿속이 백지가 됐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늦게 왔다. 저게 뭐지, 저게 진짜인가, 하는 의문조차 완성되지 못한 채 끊어졌다. 그것이 먼저 움직였다. 뿔을 앞세우고 나를 향해 돌진했다. 속도가 상상보다 훨씬 빨랐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어깨가 흙바닥에 부딪히면서 통증이 번졌지만, 그 통증조차 인식할 여유가 없었다.
괴물이 방향을 틀어 다시 달려왔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손에 잡히는 건 굵은 나뭇가지 하나뿐이었다. 팔뚝 정도 굵기의, 누가 부러뜨려 놓았는지 알 수 없는 나뭇가지였다. 나는 그것을 움켜쥐었다. 회사에서 마우스나 쥐던 손이었다. 십오 년 동안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힘을 쓴 적 없는 손이었다. 그 손으로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습다면 우스웠지만, 그 순간 웃을 여유는 없었다.
두 번째 돌진이 왔다.
이번엔 피할 곳이 없었다. 등 뒤는 저수지였고, 옆은 나무 뿌리가 얽힌 비탈이었다. 나는 나뭇가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정확히 어디를 노린 건 아니었다. 그냥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팔을 움직였을 뿐이었다. 나뭇가지가 뿔 사이 틈으로 밀려들어갔다. 정확히 괴물의 목덜미로 보이는 부위를 파고들었다.
괴물이 괴성을 질렀다.
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기계가 갈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에 고막이 얼얼했다. 나는 순간 손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놓으면 그대로 저 뿔에 몸이 꿰뚫린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있는 힘껏 나뭇가지를 밀어붙였다. 괴물이 발버둥쳤다. 다리 여섯 개가 허공을 긁어댔다. 그중 한 다리가 내 종아리를 스쳤다. 갑각 끝이 살을 찢고 지나갔다. 통증이 뒤늦게 밀려왔지만, 그때는 이미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넘어질 듯 버티며 계속 힘을 주었다. 팔의 힘줄이 끊어질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마흔둘의 몸으로 이런 격투를 벌인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지만, 몸은 머리보다 먼저 답을 알고 있었다. 놓으면 죽는다. 그 사실 하나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결국 나뭇가지가 괴물의 목을 완전히 관통했다.
괴물은 몇 번 몸을 떨더니,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뛰고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나뭇가지를 쥔 채였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온몸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었다. 종아리에서 흐른 피가 신발 안까지 스며들었다. 강함을 제압하는 건 결국 더 강한 것이 아니라, 물러설 곳이 없는 절박함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것을 보았다.
괴물의 몸이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작은 입자들이 표면에서부터 떨어져 나가더니, 허공으로 흩어졌다. 처음에는 다리 쪽부터, 그다음엔 등의 뿔, 그리고 몸통 전체가 차례로 빛의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마치 게임 속 몬스터가 죽으면 사라지는 것처럼, 그 거대한 사체가 몇 초 만에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 지금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피 한 방울, 다리 조각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뭇가지만이 내 손에 덜렁 남아 있었다. 그 나뭇가지 끝에 검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게 그 괴물의 피였는지, 아니면 그저 흙물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것뿐이었다. 저수지 물결이 조용히 흔들렸다. 새소리도, 바람도 없었던 숲이 다시 조금씩 소리를 되찾고 있었다. 멀리서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세상이 멈춰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뭇가지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를 절뚝이며 걷는 내내, 아까 그 순간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씻지도 못한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방금 겪은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신고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신고할 대상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파출소에 가서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대형견만한 곤충이 나타나 목을 관통시켰는데 빛이 되어 사라졌다고. 증거가 없었다. 목격자도 없었다.
나는 결국 그날 일을 스스로 납득시키기로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환각이라고. 부모님을 잃은 충격, 오랜 병가, 사람 없는 시골살이가 겹쳐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차라리 편했다. 세상이 그렇게 갑자기 이상해질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믿고 잠들려 했다.
그러나 몸에 남은 흙과 상처는, 환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종아리의 상처는 소독약을 바르는 순간에도 여전히 얼얼하게 아팠고, 어깨는 굴렀던 자리대로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환각이 사람의 살을 이렇게 찢어놓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한 채, 불도 끄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다. 창밖 어둠 속에서, 붉은 눈 두 개가 다시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