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흔, 밤의 사냥꾼이 되다

3화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여덟 시, 저수지 근처 참나무 두 그루 사이로 나갔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사흘째부터는 두려움보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패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처음 보는 괴물 앞에서는 오줌을 지릴 듯 떨지만, 그것이 사흘만 반복되면 어느새 시계를 보며 "아, 슬슬 나갈 시간이네"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여덟 시 오 분 전이면 몸이 먼저 현관으로 움직였다. 괴물은 매일 같은 시각에 같은 자리에서 나타났다. 형태도 거의 동일했다. 죽이면 빛의 입자로 흩어졌고, 다음 날 같은 시각 다시 나타났다. 마치 게임 속 리스폰 지점처럼, 그 저수지 주변은 매일 밤 정해진 괴물을 뱉어내는 통로 같았다. 첫날은 몽둥이만 한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나갔다. 그다음 날은 창고에서 낡은 도끼를 찾아냈다. 자루가 반쯤 갈라져 있었지만 그런대로 쓸 만했다. 그 다음 날은 아버지가 등산 다니실 때 쓰시던 피켈을 꺼냈다. 무기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나는 이겼고, 괴물은 빛으로 사라졌다. 재미있는 건, 갈수록 그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처음엔 도끼를 휘두르다 헛손질만 세 번을 했다. 나중엔 한 번의 타격으로 끝났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며 숙련도를 올리는 것 같았다. 다만 나는 게임 속이 아니라 현실의 저수지 옆에 서 있었다. 문제는 그 사냥이 반복될수록 내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근육통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격한 몸싸움을 하니 당연히 몸이 단련되는 거라고. 마흔둘 먹은 재택근무자가 매일 밤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근육통이 안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이상한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두운 산길인데도 발밑이 또렷하게 보였다. 예전에는 손전등이 없으면 발목을 접질리기 딱 좋은 길이었는데, 이제는 어스름한 달빛만으로도 돌부리 하나하나가 선명했다. 낮에 컴퓨터 화면의 작은 글씨가 유독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노안이 시작되어 안경까지 맞춰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고민이 무색해질 정도로 시력이 돌아왔다. 밤에 창문 밖에서 작은 벌레가 날아다니는 소리까지 들렸다. 처음엔 이명인가 싶어 병원을 가야 하나 생각했다. 시력이 좋아졌다. 청력도 좋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이 세졌다. 어느 날 밤, 나는 마당에 있던 오래된 절구를 옮기려다가 그것이 너무 쉽게 들리는 것에 놀랐다. 그 절구는 할머니 살아계실 때부터 마당 구석에 박혀 있던 물건이었다. 예전 같으면 두 사람이 붙어야 겨우 옮길 수 있는 무게였다. 마을 이장 아저씨와 내가 예전에 그 절구를 치우려다 둘 다 허리를 삐끗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 옆으로 치웠다. 들어 올리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절구를 내려놓고 나서야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냥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 처음엔 그렇게 넘겼다. 그다음 날은 산책로에서 넘어질 뻔했다가,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켜 균형을 잡았다. 발밑의 돌이 미끄러지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해서 축을 틀었다. 그 반응속도가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예전의 나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면 그냥 넘어지는 부류였다. 몸으로 부딫혀 배우는 스타일이었다는 뜻이다. 그냥 몸이 회복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요양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그냥 시골 공기가 좋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세 번, 네 번 스스로에게 그냥이라는 말을 붙이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 그럴싸한 핑계는 늘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열흘쯤 지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사냥이 아닌 상황에서 그 힘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 대낮이었다. 마을 뒷산 초입,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나는 두꺼운 나무 앞에 섰다. 지름이 어른 허벅지만 한 참나무였다. 도시에서 살 때라면 이런 나무는 조경업체가 크레인을 불러다 베어낼 법한 크기였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 나무를 밀었다. 나무가 흔들렸다. 한 번 더 밀었다. 뿌리 근처에서 흙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 번째로 밀자, 나무가 통째로 기울며 쓰러졌다. 쿠웅, 하는 소리가 산 전체를 울렸다. 새 몇 마리가 놀라 날아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쓰러진 나무를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다. 숨도 크게 차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한 컨디션 회복이 아니었다. 이건 명백한 신체 능력의 초월이었다. 마흔둘, 재택근무로 살이 붙고 근육이 줄었던 몸이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헬스장 트레이너가 이 광경을 봤다면 자기 직업에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것은 힘을 써서 그런 게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더는 예전의 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이상한 흥분도 있었다. 평생 남들보다 특별한 적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인간의 규칙을 벗어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공포와 동시에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학창시절 체력장에서 늘 뒤에서 세 번째였던 내가, 이제는 나무 한 그루를 손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인간이 그럴 때가 있다. 두려운 것과 짜릿한 것이 같은 감정에서 시작될 때.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손가락 관절이 접히는 소리마저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이 힘이 어디까지 갈지,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이 힘의 근원은 매일 밤 사냥하는 그 괴물들이었다. 죽일 때마다 몸에 남는 미세한 떨림 같은 게 있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으로 자각했다. 마치 뭔가를 흡수하는 감각이었다. 그동안은 그저 격투의 흥분이라 여겼는데, 되짚어보니 그건 흡수의 신호였다. 매번 괴물이 빛으로 흩어질 때, 그 빛 조각 중 일부가 내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처음엔 착각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것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이미 내린 결심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유는 단순했다.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떤 정신과 의사도 이걸 믿지 않을 것이고, 어떤 마을 사람도 이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밤마다 괴물을 잡는데 그때마다 힘이 세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곧바로 폐쇄병동 입원 서류에 사인하게 될 것이었다. 결국 이건 나 혼자만의 비밀이 되어야 했다. ───── 그날 밤, 여덟 시가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저수지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은 여느 날과 조금 달랐다. 나는 처음으로 무기가 아니라 맨손으로 괴물을 상대해보기로 했다. 집을 나서기 전 피켈을 챙길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창고 문 앞에서 멈춰 서서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냥 맨손으로 해보자."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나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저수지에 도착하자 참나무 두 그루 사이의 어둠이 꿀렁였다. 늘 그렇듯 정확히 여덟 시였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 시각이 되면 몸이 먼저 알았다. 괴물이 돌진해왔다. 나는 그 뿔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딱딱한 갑각의 감촉이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졌다. 표면은 매끈했지만 그 밑에는 단단한 뼈 같은 것이 박혀 있는 듯한 질감이었다. 나는 힘을 주었다. 괴물이 버텼다. 놈도 만만치 않았다. 발굽 같은 다리로 흙을 파헤치며 뒤로 밀리지 않으려 했다. 나는 더 힘을 주었다. 결국 뿔 하나가 부서지며 괴물이 균형을 잃었다. 부러진 뿔 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마 내 청력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틈을 타 목덜미를 팔로 감아 꺾었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 소리가 마치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처럼 담담하게 들렸다는 게, 스스로도 조금 무서웠다. 사람 목을 부러뜨리는 것과 비슷한 소리일 텐데, 나는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나는 내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무기조차 필요 없어지고 있었다. 괴물은 이내 빛의 입자로 흩어졌다. 그 빛이 흩어지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눈을 감지 않고 똑바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작은 입자들이 허공에서 반짝이다가 서서히 내 몸 쪽으로 끌려오는 듯한 감각. 그것은 분명한 흡수였다. 착각이라고 우기기엔 너무 또렷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저수지의 수면이 달빛을 받아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평화로웠다. 방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괴물과 싸웠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이 힘이 계속 커진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집에 도착해서 거울 앞에 섰다. 마흔둘의 얼굴, 조금씩 늘어나던 흰머리, 배에 붙었던 살. 그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겉모습은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가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목을 슬쩍 만져보았다. 만약 저 힘으로 이 목을 부러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섬뜩한 상상이 스쳤다. 그런 상상을 하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아이러니하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도망쳐 온 시골에서, 나는 점점 평범함과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밤 있었던 일들을 다시 되짚었다. 절구를 한 손으로 들었던 일, 나무를 세 번 밀어 쓰러뜨린 일, 그리고 방금 전 괴물의 목을 맨손으로 부러뜨린 일. 하루하루 쌓여가는 이 이상한 목록이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았다. 이 힘이 언제까지 커질지,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 저수지의 밤은, 이제 단순한 산책 시간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매일 밤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끝이 어디인지, 아직 아무도, 심지어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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