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날은 마을 이장의 집 마당에서 작은 모임이 있었다. 봄철 마을 회의라고 해도 무방할 자리였다. 마당 한쪽에 펴놓은 돗자리 위로 부침개와 막걸리가 올라오고, 처마 밑에는 낮부터 켜둔 백열등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안건을 논의하다가, 자연스럽게 요즘 도는 소문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초대받아 구석에 앉아 있었다. 원래는 참석할 마음이 없었지만, 이장이 굳이 나를 불렀다. 시골 인심이란 게 그런 법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떻게든 끼워 넣으려 하는.
"자네도 이런 자리 좀 나와야지. 혼자 밥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장은 그렇게 말하며 내 잔에 술을 채웠다. 나는 웃으며 받았지만, 속으로는 이 자리가 얼마나 위험한 자리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요새 가축 사라지는 게 심상치가 않아."
"저번 주에는 우리 집 개도 이상하게 짖더라고. 밤새 산 쪽만 보고 짖어대는 거야."
"그게 다 산짐승 때문이지 뭐."
"산짐승이면 왜 흔적이 없어. 발자국도 없고, 사체도 없고."
그 말에 나는 젓가락을 멈췄다.
흔적이 없다. 사체가 없다. 나는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체가 없는 건 당연했다. 사체가 남을 리 없었다. 빛으로 흩어지는 것들에게는 애초에 남길 몸뚱이가 없었으니까.
"염소도 두 마리나 사라졌다잖아. 최씨네."
"거긴 울타리도 튼튼하게 쳐놨는데."
"울타리가 무슨 소용이야. 밤에 뭐가 넘어왔는지 봐야 알지."
옆자리 아주머니가 부침개를 뒤집으며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요즘 애들 밤에 못 다니게 하잖아. 우리 손주도 저녁 되면 무조건 집에 있으라고 했어."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누구는 산신령 탓을 했고, 누구는 멧돼지 무리 탓을 했다.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안전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군청에서 조사팀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어."
순간 술잔을 들던 손이 굳었다.
"조사팀요?"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물었다.
"응, 야생동물 관련 전문가들이라던가. 아니면 뭐, 환경청 소속이라던가 하는 사람들. 확실친 않은데, 다음 주쯤에 마을에 들어와서 며칠 머문다더라고."
"왜 갑자기?"
"소문이 여기저기 퍼지니까 위에서 신경 쓰이는 거지. 요즘 인터넷에도 우리 마을 이름이 좀 돈다고 하더라고. 뭐라더라, '강원도 산골 미스터리 실종 사건' 같은 걸로."
나는 그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인터넷에 소문이 돈다는 건, 이미 이 일이 마을을 벗어나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사팀이 들어온다는 건, 누군가 정식으로 이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조사팀이면 뭐, 카메라 같은 것도 설치하나?"
"그럴걸. 요즘은 다 그렇게 하잖아. 야간 촬영 카메라니 뭐니."
야간 촬영 카메라. 그 단어가 귀에 박히자 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만약 그들이 저수지 근처를 조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밤에 매복해서 뭔가를 목격한다면. 혹은 그 자리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나를 마주친다면. 카메라에 내 모습이, 혹은 내가 상대하는 그 형체가 찍힌다면.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도 최대한 담담하게 냈다.
"그 조사팀은 언제쯤 온답니까?"
"확실친 않은데, 다음 주 초쯤이라고 하던데. 왜, 관심 있어?"
"아뇨, 뭐 그냥. 시골에 그런 사람들 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긴 하지. 이참에 마을 이름 좀 알려지려나 몰라."
이장은 그 말을 웃으며 넘겼다. 다른 사람들도 별일 아니라는 듯 술잔을 들고 화제를 옮겼다. 누군가는 조사팀이 오면 민박이라도 받을까 궁리했고, 누군가는 이참에 마을 홈페이지를 만들자는 소리까지 했다. 다들 그 일을 남의 동네 잔치처럼 여기고 있었다. 나만 그 자리에서 혼자 다른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조사팀이 들어온다. 이 상황을 조사하러. 나는 그들이 뭘 발견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반대로, 뭔가 결정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 속에는, 매일 밤 그 저수지에서 벌어지는 나의 사냥도 포함될 수 있었다.
나는 걸으며 몇 가지 경우를 하나씩 따져보았다. 조사팀이 낮에만 움직인다면 상관없었다. 밤에도 움직인다면 문제였다. 카메라만 설치하고 돌아간다면 그나마 나았다. 사람이 직접 매복한다면 최악이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사람을 지치게 했다.
나는 그날 밤 사냥을 나가야 할지 처음으로 고민했다. 만약 조사팀이 미리 도착해서 근처에 진을 치고 있다면, 나는 그들 눈앞에서 정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사냥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얻은 이 능력이 유지될지, 혹은 반대로 사냥을 게을리하면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길지, 나는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상담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결국 나는 평소처럼 여덟 시에 집을 나섰다. 다만 그날은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산책로 초입에서부터 주변을 살피며, 낯선 인기척이 없는지 확인했다. 혹시 몰라 마을 쪽 도로에도 눈을 한 번 주었다. 낯선 차 한 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숲은 평소와 같았다. 새소리도 없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졌다. 나는 참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저수지 쪽을 바라보았다. 수면은 검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위로 달빛이 얇게 부서졌다.
여덟 시 정각, 괴물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날의 괴물은 뭔가 달랐다.
형태는 여전히 곤충형이었지만, 크기가 눈에 띄게 컸다. 등의 뿔은 네 개로 늘어나 있었고, 다리 여섯 개 중 두 개가 앞쪽으로 튀어나와 마치 낫처럼 굽어 있었다. 눈은 붉은색이 아니라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이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괴물이라는 걸.
한 달째, 매일 밤 나타나던 괴물의 형태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뿔이 하나 더 붙거나, 다리가 한 마디 더 길어지거나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의 변화는 그 이전과는 명확히 다른 수준이었다. 마치 한 단계를 건너뛴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상대했다. 예전보다 훨씬 강한 힘이었다. 낫 같은 다리에 팔을 스치기만 했는데도 옷이 찢어지며 붉은 선이 그어졌다. 나는 그 상처를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한 번은 놈의 몸통에 제대로 박아넣었다고 생각한 순간, 되레 튕겨 나갔다. 등이 흙바닥에 처박히면서 숨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맷집이었다. 나는 일어서며 팔뚝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대충 닦았다.
결국 시간이 두 배로 걸려서야 그것을 처치할 수 있었다. 몸이 빛으로 흩어질 때,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낯설게 거칠었다.
괴물의 몸은 흔적도 없이 빛으로 흩어졌지만, 놈이 지나간 발자국과 나무에 남긴 발톱 자국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라지는 것은 몸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상처를 소독했다. 팔뚝에 그어진 선이 생각보다 깊었다. 이 정도 상처는 처음이었다. 소독약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나는 저절로 숨을 들이켰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이 사냥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게임처럼 여기고 있었다. 매일 여덟 시, 정해진 장소, 정해진 규칙. 그 안에서라면 나는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의 그 괴물은, 내가 쥐고 있던 그 통제감에 균열을 냈다.
다음 날, 나는 낮 시간을 이용해 저수지 주변을 다시 살펴보러 갔다. 밤이 아닌 낮에 그 장소를 자세히 관찰한 건 처음이었다. 낮의 저수지는 놀랍도록 평범했다. 물오리가 몇 마리 떠 있었고, 근처 밭에서는 누군가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이 물가에서 밤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조차 못 하겠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참나무 두 그루 사이, 그리고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가 나는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나무껍질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사람 손가락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깊이였다. 마치 거대한 발톱으로 나무를 할퀸 것 같은 자국이었다. 그 자국은 내 키보다 훨씬 높은 위치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자국을 만져보았다. 손가락 두 개가 나란히 들어갈 정도의 홈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흙바닥에는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괴물의 발자국보다 큰, 사람 성인의 상체만 한 크기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발자국의 크기를 가늠해보았다. 발자국 하나에 내 신발 두 짝이 다 들어갈 것 같았다. 이건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곤충형 괴물의 것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더 크고 더 위협적인 존재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 몇 걸음 걸어보았다. 발자국은 저수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산 안쪽을 향해 이어지다가 이내 낙엽더미 속으로 흐려졌다. 그 방향을 눈으로 좇는 동안, 목덜미가 저절로 서늘해졌다.
나는 조사팀이 온다는 소식과, 이 새로운 흔적을 놓고 저울질했다. 사냥을 멈춰야 할지, 계속해야 할지. 조사팀보다 이 흔적이 먼저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조사팀이 뭘 발견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뭔가에 발견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물러설 수 없는 지점까지 와 있었다. 한 달 동안 쌓아온 이 힘을, 이 비밀을, 그냥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등을 돌린다는 건, 그동안의 밤들을 전부 헛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다시 저수지로 향했다. 발걸음마다 어제 본 그 발자국의 크기가 떠올랐다. 참나무 뒤에 자리를 잡으면서도, 나는 자꾸 산 안쪽 어둠을 살폈다. 그런데 그날은 여덟 시가 되어도 평소의 괴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았다. 여덟 시 삼 분. 이런 일은 한 달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그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던 규칙이었는데, 오늘은 그 규칙마저 어긋나고 있었다.
대신, 숲 깊은 곳에서 낮고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포효였다.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소리와도 달랐다.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의 저음이었다. 발밑의 흙까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가 울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숲 안쪽, 저수지보다 훨씬 깊은 곳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사냥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이 그 소리에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들이 소형견이었다면, 이 소리의 주인은 그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는 무언가였다.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정적은, 이전의 어떤 정적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그날 밤, 참나무 뒤에서 한참을 더 서 있었다. 그것이 다시 울지 않을까, 혹은 이대로 숲 안쪽에서 걸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