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눈을 감으면 붉게 빛나던 눈과 여섯 개의 다리가 떠올랐고, 그것이 빛의 입자로 흩어지던 장면이 반복 재생되었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베개로 얼굴을 눌러도 소용없었다. 눈꺼풀 안쪽에 그 장면이 아예 인쇄된 것 같았다. 새벽 세 시쯤, 결국 잠을 포기하고 거울 앞에 섰다.
어깨에 든 멍이 선명했다. 손바닥에는 나뭇가지를 움켜쥐었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금을 따라 붉게 부풀어 오른 자국을 손끝으로 눌러보니 통증이 그대로 전해졌다. 환각이라면 이렇게까지 몸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거울 속의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사십 대 남자의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이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낮, 나는 평소처럼 일을 했다. 노트북을 켜고 코드를 검토했다. 화면 속 함수와 변수들은 지난밤의 일과 무관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괄호는 여전히 짝이 맞았고, 세미콜론은 여전히 문장 끝에 붙어 있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나는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젯밤 나는 괴물을 죽였는데, 컴파일러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연하다는 게 이상했다.
오후에는 마을 이장을 만났다. 정확히는 우연히 마주쳤다. 이름은 박씨, 나이는 예순쯤. 여기서 나고 자라 평생 이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람이었다. 산책로 옆 텃밭에서 삼십 년 넘게 고추와 배추를 키웠고,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알고 제일 늦게 잊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필 저수지 근처를 지나가던 나를 발견했다.
이장은 밭일을 하다 허리를 펴며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태식 씨, 요즘 산책 잘하고 있어?"
"네, 뭐 그럭저럭요."
"저수지 쪽은 어두워지면 조심해. 요새 산짐승이 늘었다는 얘기가 있어서."
산짐승. 나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발음해보니 참 순진한 단어였다. 여섯 개의 다리를 달고 붉은 눈으로 빛나며 빛의 입자로 흩어지는 산짐승이라니, 그런 짐승은 도감에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산짐승이요?"
"몰라,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야. 최씨네 개가 요새 밤마다 저수지 쪽으로 짖는대. 뭐 고라니겠지."
이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다시 밭일로 돌아갔다.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어제 본 것이 산짐승이라는 단어로 정리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최씨네 개가 옳았다. 나였어도 그 앞에서는 밤새 짖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마음은 그날 저녁까지도 이어졌다. 나는 저녁밥을 먹으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오늘은 산책을 나가지 않는다. 밥그릇을 씻으면서도 다짐했다. 오늘은 절대 그 저수지 쪽으로 가지 않는다. 이 닦으면서도 한 번 더 다짐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 않는다.
당연한 판단이었다. 어제 죽을 뻔했으니 오늘은 쉬는 게 맞았다. 세상 누가 봐도 상식적인 결론이었고, 나 역시 그 결론에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 여덟 시가 되자,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정확히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무언가가 나를 그 저수지 쪽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이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 수도 있었다. 나는 겉옷을 걸치려고 옷걸이에 손을 댔다가 멈추고, 다시 다짐하고, 다시 손을 댔다가 멈추고, 다시 다짐하는 과정을 세 번쯤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이 정도로 명확하게 하지 말라고 다짐했는데도 몸이 알아서 문을 열고 나가는 걸 보면서, 나는 내가 생각보다 이성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젯밤의 기억이 발밑에서부터 스며드는 것 같았다. 풀벌레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마저 무언가의 발소리처럼 느껴졌다. 참나무 두 그루가 보이는 지점에 다다르자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나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저수지 쪽을 살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어제와 똑같은 모양의 괴물이 서 있었다.
크기도 같았다. 붉은 눈도 같았다. 등의 뿔 두 개도 같았다. 심지어 서 있는 각도까지 똑같은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어제 내가 죽였던 그 존재가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게 우연일까. 다른 개체가 같은 자리에 나타났을 뿐인 우연일까. 아니면 어제 그 괴물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생성된 것일까. 세 번째 가능성도 있었다. 애초에 저수지라는 공간 자체가 그런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어떤 장치일 수도 있었다. 셋 다 소름 끼치는 가정이었고, 셋 다 내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가정이었다.
어느 쪽이든 소름이 끼치는 결론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괴물은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 저수지 주변을 천천히 배회하고 있었다. 마치 정해진 구역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설계된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게임 속 몬스터가 정해진 좌표 안에서만 왔다갔다하는 패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다만 이건 게임이 아니었다. 화면 밖으로 손을 뻗으면 실제로 만져지는, 실제로 사람을 물어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나는 조용히 뒷걸음질쳐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뭇가지 하나를 밟아 부러뜨렸는데, 그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다행히 괴물은 반응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매일 반복되는 현상이라면, 나는 방금 두 번째 목격자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는 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오늘은 마주치지 않고 도망쳤다. 다음번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어제와 같은 행운이 오늘도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애초에 그게 행운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노트를 꺼내 어제와 오늘 일을 적어보려 했다. 첫 줄에 '8월 14일, 저수지, 괴물 목격'이라고 썼다. 두 번째 줄에 '붉은 눈, 여섯 개 다리, 뿔 두 개'라고 썼다. 세 번째 줄을 쓰려다가 손을 멈췄다.
이걸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고, 신고할 수도 없었다. 112에 전화를 걸어서 "저수지에 여섯 개 다리 달린 괴물이 있는데 어제 나뭇가지로 죽였습니다"라고 말하면, 나는 신고자가 아니라 보호 대상이 될 것이 뻔했다. 정신병원 응급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그날 밤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거대 곤충 목격', '강원도 산골 괴물', '빛으로 사라지는 생물' 같은 검색어를 넣어봤지만 나오는 건 도시전설이나 게임 커뮤니티 게시글뿐이었다. 어느 카페 글은 뿔 달린 사슴 귀신 이야기였고, 어느 블로그는 지리산 반달곰 목격담이었다. 참고할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검색창을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새삼 한심하게 느껴졌다. 세상 누가 이런 걸 검색해서 답을 찾겠는가.
나는 결국 스스로 실험해보기로 했다. 다음 날에도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가보기로.
이상한 일이었다. 무서웠지만, 동시에 궁금했다. 인간이 그럴 때가 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불에 데어본 사람이 다시 불에 손을 가져가는 것처럼, 나는 그 붉은 눈을 다시 보고 싶었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알고 싶어서였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이 일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다음 날에도 나는 같은 시각 그 자리로 향했다. 낮 동안 나는 평소처럼 코드를 검토했고, 평소처럼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고, 평소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평범한 하루였다. 다만 속으로는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게 달랐을 뿐이다.
심장은 여전히 뛰었지만, 발걸음은 어제보다 덜 흔들렸다. 참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이제는 그 자리가 낯설지 않았다. 이틀 만에 익숙해진다는 게 우습기도 했고 서글프기도 했다.
여덟 시 정각. 저수지 근처 공기가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또다시 같은 괴물이 나타났다.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 정해진 규칙처럼 그것이 나타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정해놓은 스케줄표가 있는 것처럼, 여덟 시가 되면 저수지는 그 괴물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확신과 함께, 새로운 질문에 부딪혔다. 만약 이것이 매일 반복된다면, 나는 이걸 계속 피해야 할까, 아니면 다시 맞서야 할까. 도망친다면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이 마을에 계속 살 수 있을까. 이사를 간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저수지가 있는 곳마다 이런 게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은 늘어났지만 답은 하나도 늘어나지 않았다.
나는 나뭇가지를 다시 쥐었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손바닥에 남은 자국이 아직도 얼얼했다. 그 얼얼함이 오히려 나를 붙잡는 것 같았다.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은 못할 것도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손에 나뭇가지를 쥐었다.
이번에는 어제보다 더 굵고 단단한 것을 골랐다. 손에 쥐어보니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참나무 뒤에서 나는 그 나뭇가지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숨을 고르며 괴물을 바라보았다. 어제와 똑같은 붉은 눈이 저수지 수면 위로 흔들리는 빛을 받아 더 붉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뒤에서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다.
내 뒤였다.
분명히, 아주 가까운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