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성인식 날 아침, 나는 확률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제 새로 나온 가챠 이벤트의 픽업 확률표였다.
['불꽃의 정령왕' 등장률 0.6%.]
이 숫자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확률은 배신하지 않는다, 확률은 그냥 확률이니까.
옆에는 어젯밤에 정리해둔 노트도 펼쳐져 있었다.
날짜, 시도 횟수, 결과, 그리고 옆에 작게 적어둔 '체감 확률'까지.
누가 보면 논문 쓰는 줄 알았을 거다.
사실 이건 그냥 미련의 기록이었지만.
"박시우! 성인식 늦으면 스탯 페널티 받는다니까!" 엄마가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가요, 가!"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는 다시 확률표를 확인했다.
오늘도 정령왕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방문을 열고 나가니 엄마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날에 그 이상한 앱만 붙잡고 있냐."
"이상한 앱 아니야, 이거 확률 통계 자료야."
"확률 통계는 무슨. 그거 하다가 각성 시간 놓치면 진짜 벌목꾼 된다니까?"
'벌목꾼'이라는 말에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사실 나도 그게 제일 무서웠다.
이 세계에서 성인식이란 그런 거였다.
열여덟이 되는 해, 각성의 제단 앞에 서면 시스템이 사람마다 직업과 스킬을 부여한다.
전사, 마법사, 궁수... 흔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가끔 희귀 직업이 튀어나온다.
다들 그 순간을 위해 몇 달씩 몸을 만들고 마력 감각을 훈련한다는데.
나는 그 몇 달을 확률표 붙잡고 앉아서 날렸다.
'이러다 벌목꾼 되는 거 아니야.'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걱정됐다.
동네에 사는 형 하나는 준비를 안 했다가 '짐꾼' 직업을 받았다고 했다.
스킬은 '무거운 걸 오래 들기'였다.
그 형은 요즘 이삿짐센터에서 일한다.
집을 나서면서 옆집 사는 재준이를 만났다.
재준이는 벌써 갑옷까지 갖춰 입고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오, 시우야. 너도 지금 가는 거지?"
"어, 어. 준비 많이 했나 보네."
"당연하지! 나는 전사 계열 확정이야. 벌써 몸도 다 만들어놨어."
'나는 확률표만 만들어놨는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그냥 웃어 보였다.
재준이의 팔뚝이 내 허벅지보다 두꺼워 보였다.
확실히 격차가 느껴졌다.
제단은 마을 광장 한가운데 있었다.
돌로 쌓은 낮은 단상 위에, 빛나는 문양이 새겨진 원형 판이 박혀 있었다.
딱 봐도 이벤트용 소환진 그림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거 보면 또 설레는 게 문제란 말이지.'
광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같은 나이대 애들, 그 부모들,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까지.
다들 저마다의 기대를 안고 서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누군가는 벌써 눈을 감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누군가는 몸을 풀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다들 진지하네.'
나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제 본 확률표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
"박시우 님, 올라오세요." 진행 요원이 명부를 확인하며 불렀다.
나는 단상에 올랐다.
발밑의 문양이 은은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살짝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찌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양이 점점 더 밝아졌다.
[성인식 각성 절차를 시작합니다.]
오, 왔다.
[대상: 박시우 (18세)]
[적성을 분석 중입니다...]
분석이라니, 이거 완전 캐릭터 생성창 아닌가.
나는 속으로 실실 웃었다.
'제발 딜러 계열만 아니면 좋겠다, 나 몸치인데.'
빛이 점점 강해지면서 광장 전체가 밝아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제발, 제발, 뭔가 그럴듯한 게 나와라.'
[분석 완료.]
[희귀 직업 '테이머'를 확인.]
[유니크 스킬 '가챠'를 확인.]
뭐?
순간 광장이 조용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 머릿속이 조용해졌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왜냐면 광장 사람들은 여전히 웅성거리고 있었으니까.
"희귀 직업이래!" 누군가 소리쳤다.
"스킬 이름이 뭐라고?"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가챠? 그게 뭔데?" 또 누군가가 반문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나만 알아들었다, 저 두 글자가 뭔지.
'설마... 진짜로?'
나는 확인창을 열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스킬: 가챠 (Unique)]
[설명: 마력을 소모하여 무작위 보상을 획득합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소모 마력이 커집니다.]
[등급 구성: 커먼 68% / 레어 23% / 에픽 7.5% / 레전더리 1.4% / 유니크 0.1%]
와.
와, 이거 진짜 확률표잖아.
내가 매일 밤 들여다보던 그 확률표가, 지금 내 스킬창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손이 떨렸다.
좋아서 떨렸는지 무서워서 떨렸는지는 나도 잘 몰랐다.
옆에서 재준이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이쪽을 흘끔거리는 게 보였다.
"야, 뭐 나왔어?" 재준이가 조그맣게 물었다.
"테이머."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오, 그거 마수 부리는 거잖아. 좋겠다."
'너는 몸이 좋고 나는 확률표가 있으니 비긴 걸로 하자.'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박시우 학생, 어떤 직업이 나왔나요?" 진행 요원이 다가와 물었다.
"테이머요." 나는 다시 한번 대답했다.
"오, 희귀 직업이네요! 축하합니다!" 요원이 활짝 웃었다.
"스킬은 뭐가 나왔죠?"
"가챠요."
요원이 잠깐 눈을 깜빡였다.
"가챠... 라고요? 처음 듣는 스킬이네요. 혹시 소환 계열인가요?"
"글쎄요, 저도 방금 알았어요."
속으로는 '테이머 상성이 애매해서 걱정인데' 싶었지만 겉으로는 그냥 웃었다.
테이머는 좋은 직업이었다.
문제는, 이 직업이 전투형 스킬과는 상성이 좀 애매하다는 거였다.
마수를 부리는 직업인데, 마수를 부리려면 먼저 마수를 구해야 하고.
마수를 구하려면 던전에 들어가야 하고.
던전에 들어가려면 전투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전투 스킬이 하나도 없었다.
'이거 완전 무과금 유저가 최종 스테이지 도전하는 꼴 아닌가.'
단상에서 내려오면서 스탯창을 슬쩍 열어봤다.
[근력: 8] [체력: 9] [마력: 15] [민첩: 7]
평균 이하였다.
재준이 스탯을 옆에서 살짝 봤는데 근력이 벌써 22였다.
격차가 눈물 나게 벌어졌다.
'뭐, 어쩔 수 없지. 확률로 승부하는 인생 아니겠어.'
집에 돌아와서 나는 방문을 잠그고 침대에 앉았다.
창문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딱 이럴 때 배경음악이라도 깔리면 완벽할 텐데.
가방에서 물 한 병을 꺼내 마셨다.
목이 왜 이렇게 마르는지 몰랐다.
아마 긴장이 아직 안 풀린 모양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어제까지의 확률표 노트를 다시 펼쳐봤다.
이제 이건 그냥 취미가 아니라 내 밥벌이 수단이 됐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현실이 게임을 따라오네. 아니, 게임이 현실이 됐다고 해야 하나.'
나는 다시 스킬창을 열었다.
[스킬: 가챠 (Unique)]
[누적 사용 횟수: 0회]
[보유 마력: 100/100]
'0회라니, 신선하다.'
이제부터 하나씩 쌓아가는 거다.
"가챠." 나는 낮게 스킬명을 읊었다.
[스킬 '가챠'를 사용하시겠습니까?]
[필요 마력: 10]
[현재 마력: 100/100]
오, 열 번은 뽑을 수 있네.
나는 침을 삼켰다.
'이건 그냥 게임이야. 확률은 확률이야. 떨지 마, 박시우.'
손바닥을 폈다가 다시 오므렸다.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학창 시절 시험 성적 확인할 때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 더하지. 이건 인생 성적표잖아.'
"뽑을게." 나는 조그맣게 말했다.
빛이 손바닥 위에 모여들었다.
딱 봐도 연출이 화려한 등급이었다.
빛의 색이 노란빛에서 파란빛으로 넘어가는 걸 보고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설마 벌써 에픽인가?'
[레어: 견습 사냥꾼의 단검]
첫 뽑기 결과가 눈앞에 떴다.
짜식, 나쁘지 않은데.
손바닥 위에 정말로 작은 단검이 실체화되어 나타났다.
칼자루가 반질반질했다.
날은 얇고 가벼웠는데, 손에 쥐어보니 무게중심이 딱 맞게 잡혔다.
'견습 사냥꾼이라는 이름 붙은 거 보니 초급 무기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뭔가 손에 잡히는 물건이 실제로 나왔다는 게 신기했다.
'진짜네. 진짜 나오네.'
나는 웃음이 나왔다.
혼자 방구석에서 실실 웃는 열여덟짜리 소년.
누가 보면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왜냐면 나는 이제, 진짜로, 이세계 최강의 뽑기 유저가 될 참이었으니까.
단검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상하는 사이, 스킬창 옆에 작게 표시된 마력 게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마력은 아직 90이 남아 있었다.
'아홉 번 더 뽑을 수 있단 소리네.'
손이 근질거렸다.
어제까지는 확률표를 보면서 상상만 하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진짜로 그 확률을 내가 굴리고 있었다.
'이 다음엔 뭐가 나올까.'
"한 번 더." 나는 다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