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04:12초쯤에 잠깐 그림자가 이상하게 늘어나는데 저거 CG인가요?]
댓글을 확인한 도윤의 손끝이 얼어붙었는데, 마우스를 쥔 손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곧바로 영상을 다시 재생해 해당 구간을 몇 번이고 되돌려보았다.
되감기, 재생, 다시 되감기.
같은 4초 남짓한 구간을 열 번 가까이 돌려보던 도윤의 눈이 화면 구석의 한 지점에 고정되었고, 그 순간 그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화면 구석, 조명이 약간 어두운 통로 벽에 아영의 그림자가 비쳤는데, 그 그림자만큼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무언가의 형태를 어렴풋이 띠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벽을 타고 기어가는 거대한 절지동물의 실루엣처럼, 그림자의 윤곽은 여덟 개인지 열 개인지 모를 다리 형태를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망했다.'
도윤은 이마를 짚으며 다급하게 편집 프로그램을 열어 해당 구간을 잘라내려 했으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허둥대는 사이 이미 조회수는 1,200을 넘어섰고, 그 짧은 몇 초를 이미 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지금 잘라낸다고 해도 이미 본 사람은 본 거잖아. 캡처해서 퍼뜨리면 그걸로 끝이야.'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도윤은 댓글창을 새로고침하며 혹시라도 정체를 알아챈 반응이 올라오지 않았는지 초 단위로 살폈는데, 다행히도 대부분의 댓글은 그것을 CG나 편집 효과로 오해하고 있었다.
[던전 특유의 시각효과인가]
[이 채널 그래픽 잘 뽑는다]
[오 이런 디테일 좋음ㅋㅋ 무섭게 하려고 일부러 넣은 거지?]
우려와는 다르게 반응들이 흘러가고 있어, 도윤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의자에 파묻듯 몸을 늘어뜨리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일단은 넘어갔지만··· 다음번엔 이런 실수가 없어야 해.'
도윤은 그날부로 조명의 위치와 각도를 철저히 점검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마음먹었는데, 아영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비칠 여지가 있는 구간은 촬영 자체를 피하거나, 아예 각도를 완전히 틀어서 찍는 방식으로 위험을 줄여나갔다. 통로 벽에 붙어 있던 낡은 조명 하나를 떼어내 위치를 바꾸고, 카메라 삼각대를 이리저리 옮겨보며 그림자가 지지 않는 각을 찾아내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차라리 역광으로 찍는 게 낫겠어. 실루엣이 아예 안 보이게.'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채널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는데, 아영이 등장하는 영상은 매번 화제를 모았고, 특히 그녀가 발광 식물이나 던전 내부의 낯선 생태를 설명하는 담담한 어조가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목소리 진짜 좋다···]
[이런 던전 컨텐츠 처음 봄, 신선함]
[던전 안에 저런 생태계가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구독자 수는 어느새 300명을 넘어섰고, 도윤은 매일 밤 늘어나는 숫자를 확인하며 묘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던전튜브 플랫폼의 규칙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거고, 어디부터가 위험한 걸까.'
도윤은 플랫폼의 공지사항과 이용약관을 꼼꼼히 뒤적이기 시작했는데,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이 몇 번이나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할 만큼 그 방대한 문서 속에서 그의 시선을 붙잡은 조항이 있었다.
[제7조: 던전 소유주가 아닌 자가 던전 내부의 비인간 개체를 조종·이용하여 콘텐츠를 제작할 경우, 해당 개체의 종족·위험도를 사전에 등록해야 하며, 미등록 시 계정이 즉시 정지될 수 있습니다.]
도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영을 등록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러나 등록이라는 절차는 던전과 소유주의 신상 정보를 일정 부분 플랫폼 측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도윤이 가장 두려워하던 정체 노출의 위험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는 도윤의 손끝이 다시 얼어붙었다.
'등록하지 않고 계속 올리면 계정이 정지될 수도 있고, 등록하면 신상이 노출될 수도 있어.'
양쪽 모두 위험천만한 선택지였는데, 도윤은 밤새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 절충안을 떠올렸다. 새벽 세 시가 넘도록 이용약관의 하위 조항들을 뒤지고,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까지 뒤적인 끝에 발견한 실낱같은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던전튜브 내에서 흔히 통용되는 '비공개 등록' 방식이었는데, 최소한의 정보— 종족의 대분류와 위험도 등급만을 기재하고 세부 신상은 비공개로 처리할 수 있는 옵션이 존재했다.
'이거라면··· 어느 정도는 안전할지도.'
도윤은 아영의 종족을 최대한 모호하게, '거대 절지형 아인종'이라는 광범위한 표현으로 등록했는데, 이는 사실이면서도 구체적인 정보를 거의 담지 않은 표현이었기에 플랫폼의 승인을 받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등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도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고, 화면에 [승인 완료] 문구가 떠오르자 그제야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 일단 이걸로 급한 불은 껐다.'
등록을 마친 그날 밤, 도윤은 지하 통로에 놓인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올린 채 아영에게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등록 조항이 무엇인지, 왜 등록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최소한의 정보만 넘겼는지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말하는 도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럼··· 이제 내가 완전히 숨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담담함 대신 옅은 떨림이 섞여 있었고, 도윤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완전히는 아니야. 그냥 최소한의 정보만 등록한 거고, 네 진짜 모습은 여전히 비밀이야."
도윤이 그렇게 대답하자, 아영은 잠시 안도한 듯 어깨를 늦추었는데, 그 표정 속에는 여전히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불안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통로 벽에 몸을 기댄 채 잠시 침묵했고, 여러 개의 다리 끝이 바닥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만이 좁은 공간을 채웠다.
'아영에게도 감추고 싶은 게 있는 거겠지.'
도윤은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자신의 본모습을 세상에 함부로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노트북을 덮으며 애써 가벼운 투로 말을 이었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잘 가릴 테니까."
아영은 대답 대신 옅게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 뒤에 감춰진 표정을 도윤은 끝내 읽어내지 못했다.
***
다음 날 아침, 도윤이 학교에 도착하자 반 분위기가 어딘가 묘하게 들썩이고 있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소곤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채널 봤어? 요즘 좀 뜬다던데."
그 대화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자신의 채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가방을 내려놓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그의 시야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들어왔다.
박준서였다.
박준서는 도윤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던전튜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채널 통계가 떠 있었고, 옆에 앉은 아이들이 감탄사를 내뱉는 소리가 도윤의 귀에까지 흘러들어왔다.
"야, 이번 달에 얼마 벌었다고?"
"뭐, 대충 80 정도?"
80만원.
그 숫자를 듣는 순간 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는데, 자신은 겨우 구독자 300명을 넘긴 것에 안도하고 있던 참이었으나, 박준서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사업을 굴리고 있는 셈이었다. 옆자리 아이가 휘파람을 불며 감탄사를 흘리는 소리, 박준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모습까지, 도윤의 눈에는 모든 장면이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왔다.
'박준서도 던전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도윤은 그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경쟁심과 초조함, 그리고 자신도 저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한꺼번에 뒤섞여 그의 속을 어지럽혔다. 책상 밑으로 슬며시 내려간 도윤의 손이 무릎 위에서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80만원이면··· 한 달에? 대체 어떤 던전을 가지고 있는 거야.'
박준서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고, 주변 아이들의 관심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도윤은 애써 자신의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신경은 온통 옆에서 오가는 대화에 쏠려 있었다.
"근데 그 채널 뭐 올리는데 그렇게 벌어?"
"몰라, 뭔가 특이한 몹 나온다던데."
특이한 몹이라는 단어가 도윤의 귓가에 박히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들었다. 설마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애써 그 생각을 눌러 삼켰다.
'아냐, 설마 아영 같은 게 또 있겠어.'
그때, 박준서의 시선이 우연히 도윤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