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날 밤, 도윤은 아영과 함께 던전 안쪽 구역을 답사하기로 결심했는데, 지금까지는 입구 근처의 안전한 구간만을 촬영해왔으나, 콘텐츠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깊은 곳의 풍경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준서가 눈치챈 것 같으니,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혀서 채널을 더 확실하게 키워야 해.'
도윤의 이런 계산에는 위험한 도박의 성격이 짙게 깔려 있었지만, 이미 손을 놓기에는 채널이 벌어다 주는 소소한 수익과 성취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카메라 배터리를 세 개나 챙기고, 렌즈에 서린 습기를 옷깃으로 닦아내며, 도윤은 던전 입구에 서서 몇 번이고 숨을 들이켰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긴장할 거면 그냥 입구에서 편집만 하지."
"아니야,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해야 해. 구독자들이 다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도윤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아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앞장서서 지하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통로를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벽면의 발광 식물이 점점 희미해지고 대신 낮게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일정한 박자로 반복되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잉···.
아영이 앞장서서 손을 들어 도윤을 멈춰 세웠다.
"이쪽부터는 슬라임 계열 몬스터들이 나오는 구역이야. 위험도는 낮지만, 촬영하려면 조심해야 해."
"슬라임이면··· 그 게임에 나오는 것처럼 물컹거리는 거 맞지?"
"비슷해. 근데 실물로 보면 좀 다를걸."
도윤은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통로 안쪽을 비췄는데, 화면 속에는 젤리처럼 투명한 몸체를 가진 작은 개체 하나가 벽을 타고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몸속으로는 흐릿한 형광빛 핵 같은 것이 두근거리듯 맥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슬라임이구나.'
생각보다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도윤은 안도감을 느끼며, 아영에게 이번 영상에서는 그녀가 직접 슬라임을 처치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내가?"
아영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곧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볼게."
도윤은 재빨리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각도 잘 나오면 조회수 대박인데.'
촤아아악.
아영이 손끝에서 뻗어나간 가느다란 실 같은 무언가로 슬라임을 단숨에 휘감아 터뜨리는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도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는데, 그것은 명백히 인간의 능력이 아니었다.
'저게 아영의 진짜 힘이구나.'
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고, 도윤은 이 장면이 채널에 큰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감에 손끝이 떨려왔다.
터진 슬라임의 잔해가 바닥에 흩어지며 옅은 빛을 내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도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방금 그거··· 다시 한 번만 더 보여줄 수 있어?"
"몬스터가 있어야 보여줄 수 있지, 이 바보야."
아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꾸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통로 저편에서 작은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푸드덕, 푸드덕.
도윤과 아영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동그란 눈이 반짝이며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것은 올빼미를 닮은 새 형태의 생물이었다.
"누구냐, 인간."
놀랍게도 그 존재는 유창한 인간의 말을 구사했는데, 도윤은 순간 얼어붙은 채로 카메라를 들이대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말하는 새라니, 이거 실화냐.'
"나, 나쁜 뜻은 없어. 그냥··· 촬영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도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 생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카로운 눈으로 그와 카메라를 번갈아 살폈다.
"촬영? 그 이상한 상자로 뭘 하는 것이냐."
아영이 나서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주자, 그 올빼미 형태의 생물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부리를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마치 렌즈 속을 들여다보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 상자가 지금의 모습을 담아둔다는 것이냐. 흥미롭구나."
그러고는 뜻밖의 제안을 꺼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 이 던전의 생태에 대해서라면 나만큼 잘 아는 자가 없을 것이다."
"네가? 왜 도와주려는 건데?"
도윤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그 생물은 날개를 가볍게 펼치며 자신을 청조라고 소개했다.
"오래된 지식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이 던전이 세상에 조금 더 알려진다면, 우리의 존재도 함부로 짓밟히지 않을 것이니."
청조의 말에는 어딘가 노회한 지혜가 배어 있었는데, 도윤은 그 제안이 채널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해설자가 있으면 콘텐츠 완성도가 훨씬 올라갈 거야. 게다가 말하는 몬스터라니, 이거 자체로도 화제성이 엄청날 텐데.'
"좋아, 그럼 다음 촬영부터 같이 해보자."
도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하자, 청조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영은 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표정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괜찮겠어? 처음 보는 몬스터를 그렇게 쉽게 믿어도 돼?"
"괜찮아. 어차피 우리한테 해코지할 이유도 없잖아."
***
며칠 후, 청조를 해설자로 합류시킨 첫 영상이 업로드되었는데, 그 반응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청조의 담담하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로 던전의 생태를 설명하는 방식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고, 채널 구독자 수는 순식간에 천 명을 넘어섰으며, 도윤은 매일 밤 늘어나는 숫자를 확인하며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구독자 천 명, 이제 시작이지···. 만 명도 금방일 거야.'
댓글창에는 온갖 반응이 쏟아졌는데, 어떤 이는 청조의 목소리에 반했다며 팬아트를 그려 올리기도 했고, 어떤 이는 저 새가 진짜 몬스터냐며 조작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도윤은 그런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웃음을 참지 못했고, 아영은 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화면을 흘겨보았다.
"조작 아니냐는 사람들, 직접 데려와서 보여주고 싶다."
"그러다 진짜로 소문나면 어쩌려고."
아영의 말에 도윤은 잠깐 표정을 굳혔으나, 곧 다시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그러나 그 기쁨과 동시에, 도윤은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도 시달리고 있었는데, 시청자들의 요구는 갈수록 더 깊고, 더 위험한 구역을 원하고 있었다.
댓글창 한 귀퉁이에는 '다음엔 더 깊은 곳도 가주세요', '진짜 위험한 몬스터도 보고 싶어요' 같은 요청이 계속해서 쌓여갔고, 도윤은 그것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며 묘한 갈증을 느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다음 촬영을 위해 도윤과 아영, 그리고 청조는 이전보다 훨씬 깊은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통로의 벽면은 점점 거칠어지고, 발광 식물 대신 축축한 습기와 낮은 울음소리 같은 것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발밑에서는 물기 어린 진흙이 질척하게 밟히는 소리가 났고, 벽을 스치는 손끝에는 미끈거리는 이끼 같은 것이 붙어왔는데, 도윤은 그 낯선 감촉에 몸을 살짝 떨었다.
"이 근처는 나도 잘 모르는 구역이다."
청조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하자, 아영의 표정에도 순간 긴장이 스쳤는데, 도윤은 카메라를 든 손에 힘을 주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도윤아, 이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야."
아영이 낮게 경고했지만, 도윤의 발걸음은 이미 멈추지 않고 있었는데, 렌즈 너머로 보이는 어둠이 그를 자꾸만 앞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그르르릉.
그 순간, 통로 저 안쪽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낮고 무거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의 진동만으로도 바닥에 흩어진 자갈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르르릉···. 그르르릉···.
아영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이건··· 이 구역에 있을 리 없는 존재야."
청조 역시 날개를 곧추세우며 낮게 경고했다.
"물러나야 한다, 지금 당장."
청조의 깃털이 곤두서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도윤은 카메라 화면 너머로 똑똑히 보았는데, 그 모습이 무엇보다도 지금의 위험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도윤의 카메라는 이미 그 울음소리가 흘러나온 어둠 속을 향해 있었는데, 그 어둠 속에서 천천히,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저게··· 뭐지.'
도윤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카메라 렌즈에 비친 그 붉은 눈동자는 마치 이쪽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