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교실 안은 점심시간을 앞두고 부산스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책상을 밀어붙이는 소리와 누군가의 웃음소리,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봄바람 소리까지 뒤섞여 어수선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때, 박준서의 시선이 우연히 도윤 쪽으로 향했다.
"뭘 그렇게 쳐다봐?"
박준서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조롱기가 섞여 있었는데, 그 말투는 마치 상대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도윤은 재빨리 시선을 돌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늦었는지 박준서의 입가에는 비웃음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넌 어차피 뭐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몇 명이 낮게 웃음을 흘렸고, 도윤은 그 웃음소리가 마치 못이 되어 가슴에 하나씩 박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예전처럼 그저 조용히 참아 넘겼다.
'참자. 어차피 저 녀석이랑 부딪혀서 좋을 게 없어.'
도윤은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슬며시 문지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는데, 그런 동작 하나하나가 그가 얼마나 애써 평온을 유지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경쟁심이었다.
'두고 봐. 언젠가는 너도 놀라게 될 날이 올 거야.'
그런 다짐이 떠오르는 순간, 도윤은 스스로도 조금 놀랐는데, 예전의 자신이라면 그저 고개를 숙이고 넘어갈 상황에서 이제는 은근한 반발심이 고개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점심시간, 도윤이 도시락을 챙겨 조용히 구석 자리로 향할 때, 김서연이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저번에 던전튜브 얘기했었잖아. 요즘 좀 알아봤어?"
김서연은 도윤에게 유독 친절한 편이었는데, 항상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그녀의 태도는 도윤에게 있어 학교에서 느끼는 몇 안 되는 편안함 중 하나였다. 도윤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신이 난 듯 이런저런 정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박준서 채널 봤어? 걔 되게 잘 나가더라. 근데 사실 던전튜브가 규칙이 좀 까다롭대. 신고 누적되면 계정 정지되고, 심하면 던전 위치 추적당해서 국가에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던전 위치 추적이라니.'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도윤의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는데, 지금까지는 계정 정지 정도만 걱정하고 있었지만, 만약 정말로 위치까지 추적당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커지는 것이었다. 도윤은 젓가락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었는데,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그거 확실한 정보야?"
도윤이 다급하게 묻자, 김서연은 어깨를 살짝 으쓱하며 대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커뮤니티에 도는 소문이야. 근데 조회수 너무 급하게 튀거나, 신기한 몬스터 나오면 관리자들이 유심히 본다는 얘기는 좀 신빙성 있어 보이더라."
도윤은 그 말을 듣고서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는데, 아영의 등장 영상이 이미 조회수 급증을 보인 상태였으니, 만약 이것이 관리자의 시선을 끌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계정이 어떤 방식으로든 검토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조회수, 신기한 몬스터, 급격한 성장… 하나도 빠짐없이 다 걸리네.'
'조심해야 한다. 너무 눈에 띄는 성장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어.'
도윤은 도시락 뚜껑을 다시 덮으며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는데, 입맛이 뚝 떨어진 것도 그 불안 때문이었다. 김서연은 그런 그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이런저런 채널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도윤은 건성으로 대답을 이어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정 보안과 촬영 방식에 대한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IP 노출이 되는 부분이 있었나. 영상 배경에 특정 지형지물이 찍힌 게 있었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도윤은 오늘 집에 돌아가는 즉시 지금까지 올린 영상들을 다시 하나하나 살펴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
그날 방과 후, 도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해서 그 생각을 곱씹었는데, 발걸음은 평소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머릿속은 쉴 새 없이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오가고 있었다. 한소희와 구민아가 우연히 그의 곁을 지나며 가볍게 말을 걸어왔다.
"도윤아, 괜찮아? 아까 준서가 좀 심했잖아."
한소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도윤은 그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신경 안 써."
구민아가 옆에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너무 참지는 마. 우리는 네 편이야."
그 말이 진심인지 그저 지나가는 위로인지 도윤으로서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두 사람의 태도에서 만큼은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두 사람은 그 후로도 몇 마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갈림길에서 손을 흔들며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고, 도윤은 다시 홀로 남은 채 골목길을 걸어 내려갔다.
바람이 불어와 교복 재킷 자락을 흔들었는데, 그 서늘한 감촉이 오늘 하루 쌓인 긴장을 조금이나마 흩어놓는 듯했다.
***
집에 도착한 도윤은 곧바로 지하로 내려가 아영과 함께 그날의 촬영 계획을 다시 점검했는데, 이번에는 단순히 통로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던전의 구조를 좀 더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방향을 잡아나가기로 결정했다.
"아영아, 우리가 지금까지 찍은 영상들, 혹시 배경에 뭐 특이한 지형지물 같은 거 나온 거 있어?"
도윤이 묻자 아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음… 딱히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뭔가 걱정되는 거 있어?"
"아니, 그냥. 요즘 학교에서 들은 소문이 좀 마음에 걸려서."
도윤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말을 흐렸는데, 굳이 아영에게까지 그 불안을 그대로 전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점을 제대로 만들어야 해. 그래야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어.'
도윤은 던전 입구 근처의 구역을 촬영 전용 공간으로 정하고, 그 너머의 위험한 구역에는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기로 아영과 합의했는데, 이는 단순한 안전 문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콘텐츠의 신비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했다.
"이쪽 구역은 조명도 좋고, 발광 식물도 많아서 촬영하기 딱 좋아."
아영이 손끝으로 통로 한쪽을 가리키며 설명하자, 도윤은 그 구역을 중심으로 카메라 위치와 조명 배치를 세밀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단순한 즉흥 촬영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갖춘 제작 방식으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여기서 이 각도로 찍으면 통로 깊이감도 살고, 발광 이끼도 같이 잡히니까 훨씬 그림이 좋아질 거야."
도윤이 카메라를 이리저리 옮겨보며 중얼거리자, 아영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너, 요즘 되게 진지해졌다. 처음엔 그냥 재미로 시작한 거 아니었어?"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야.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어."
도윤의 대답에는 이전과는 다른 결기가 담겨 있었는데, 그 짧은 한마디 속에는 오늘 낮에 느낀 조롱과 경쟁심, 그리고 던전튜브를 향한 새로운 각오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스럽게 거점을 꾸려도, 학교에서의 시선은 점점 예민해지고 있었다.
***
다음 날 교실, 박준서가 도윤의 자리 근처를 지나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야, 이도윤. 요즘 던전튜브 하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도윤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는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어? 이상하네. 요즘 뜨는 채널 중에 하나가 딱 너희 동네 IP대역이라고 해서."
박준서의 눈빛에는 순수한 궁금증인지, 혹은 무언가를 캐내려는 계산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빛이 서려 있었고, 도윤은 그 시선을 피하며 그저 애매하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런 거 관심 없어."
짧게 대답을 끝내고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 도윤의 뒤에서, 박준서의 목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IP대역이라고 해도 뭐, 이 동네에 사는 애들이 한둘도 아니니까. 근데 왠지 자꾸 신경 쓰이네."
도윤은 그 말을 뒤로하고 서둘러 교실을 벗어났는데, 등 뒤로 느껴지는 박준서의 시선이 마치 무언가를 조준하고 있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복도로 나와 몇 걸음 걷던 도윤은 뒤를 슬쩍 돌아보았는데, 교실 문 안쪽에서 박준서가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냥꾼의 것처럼 집요하게 도윤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
'설마… 벌써 눈치챈 건가.'
도윤의 걸음이 무의식적으로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