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흔살 지하 사냥꾼

1화

10년 후. 이면서울 지하빌, 심층 구역.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쿵. 쿵. 일정한 박자로 이어지는 발소리였다. 남자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길게 늘어졌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공기가 뒤틀렸다. 쩌저적! 거대한 무언가가 통째로 갈라져 무너졌다. 굉음이 지하 통로를 타고 퍼져나가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사냥이 끝난 자리에는 정적만 남았다.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부서진 잔해를 밟는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얼굴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눈빛만은 지독하게 차가웠다. '여기까지 왔군.' 낮은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지금, 이 남자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다. 2024년. 서울. 하진우는 면접장을 나서며 넥타이를 풀었다. 5년 전 결혼식 때 산 넥타이였다. 색이 바래 있었다. 넥타이 끝을 만지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이걸 몇 번째 매는 거지.' 세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세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면접관의 말은 언제나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그는 휴대폰을 켰다. 잔액 조회 화면이 떴다. 숫자는 세 자리로 줄어 있었다. '이번 달 월세도 못 내겠네.' 그는 화면을 몇 초간 더 들여다보다가 꺼버렸다. 버스가 두 대나 지나갔지만 타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는 게 편했다. 마흔 살. 남들은 한창 자리를 잡을 나이라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그냥 입꼬리만 올라간 것이었다. 정류장 전광판에 뜬 버스 도착 시간을 보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매일 걷던 길인데도 유독 길게 느껴졌다. 편의점 앞을 지날 때, 안에서 나오는 밝은 조명이 눈을 찔렀다. 그는 잠시 눈을 찌푸리고 지나쳤다. 집에 돌아온 그는 좁은 방 안에 앉았다.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지 두 달이 넘었다. 전구값도 아까워서 미뤄둔 지 오래였다. 그는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잠시 문 앞에 서 있었다. 방 안 공기가 낮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연락처 목록을 열었다. 맨 위에 '김도현'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넉 달 전이었다. [형, 나 진짜 탐색자 됐어. 돈 진짜 되네.] 그 뒤로는 아무 답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바쁜가.' 하진우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겼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몰랐다. 메시지창을 몇 번 위아래로 넘겨보다가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밥을 대충 챙겨 먹고 그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밥이라고 해봐야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였다. 천장의 얼룩을 세다가 눈을 감았다. 그 얼룩은 작년 여름 장마 때 생긴 것이었다. 세 번째 얼룩까지 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도 똑같았다. 이력서를 넣고, 떨어지고, 또 넣었다. 하루에 세 번씩 반복되는 일이었다.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에서는 서류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물류센터에서는 나이 제한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동네 편의점 알바 면접에서도 떨어졌다. "저희는 좀 더 젊은 분을 찾고 있어서요." 스무 살짜리 점장이 그렇게 말했다. 하진우는 고개만 끄덕이고 나왔다. '젊은 분.' 그 말이 며칠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았다.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늙었나 싶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방 안은 더 조용해졌다. 창밖으로 자동차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가끔 옆집 개 짖는 소리도 섞여 들어왔다. 그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김도현의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사진 속 도현은 대학 시절 동아리 엠티에서 찍은 것이었다. 그때는 둘 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전화라도 한번 해볼까.'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에서 멈췄다. 몇 초간 그대로였다. '받으면 뭐라고 말하지.'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냥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지지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하진우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낯선 번호였다. 지역 번호도 없는, 처음 보는 형태의 숫자였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시간에 누가...' 혹시 도현인가 싶어 잠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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