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생명체가 다시 자세를 낮췄다.
으드득- 하는 소리가 그 턱에서 새어 나왔다.
하진우는 벽에 등을 붙인 채 주변을 살폈다.
손에 잡히는 건 부서진 채집기 조각뿐이었다.
날카로운 쪼가리 하나를 손으로 쥐어봤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저 턱뼈조차 뚫지 못할 것 같았다.
'무기가 없다.'
그때, 눈앞에 흐릿한 글자가 떠올랐다.
[경고: 등급 미분류 개체와의 교전이 감지되었습니다.]
[생존 확률: 산출 불가.]
하진우의 눈이 커졌다.
'이게 뭐야... 상태창?'
이런 게 눈앞에 뜬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김도현이 죽기 전 보냈던 메시지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지하빌은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흔한 경고문뿐이었다.
[대상: 이명(異名) 미확인.]
[탐색자 하진우, 잠재 계열 반응 감지 - 분류 불가.]
글자들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분류 불가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걸 읽을 여유가 없었다.
생명체가 다시 튀어 올랐다.
콱!
하진우는 옆으로 몸을 던졌다.
이번엔 어깨가 아니라 허벅지가 찢겼다.
"으윽!"
뜨거운 통증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바닥에 떨어진 피가 검은 벽을 타고 흘렀다.
'또... 그 힘이 필요해.'
가슴 속을 뒤져봤다.
아까 느꼈던 그 뜨거운 무언가를 다시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안 나와.'
'아까는 저절로 나왔잖아.'
손끝이 떨렸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갈비뼈 사이가 시큰거렸다.
생명체는 그의 다리에서 흐르는 피 냄새를 맡은 듯 더 흥분했다.
붉은 외눈이 번뜩였다.
턱에서 흐르는 침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가 났다.
하진우는 뒷걸음질 치다 벽 모서리에 부딪혔다.
등뼈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그제야 상황을 실감케 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끝인가.'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렸다.
무릎이 꺾이면서 몸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에서 쇳내가 났다.
그런데.
생명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거대한 몸뚱이가 그대로 굳은 듯 정지했다.
붉은 외눈이 하진우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돌아갔다.
어둠 속, 통로 안쪽에서 또 다른 형체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발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기가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종류였다.
하지만 몸집이 두 배는 컸다.
외눈도 두 개였다.
'저건... 뭐야.'
숨이 턱 막혔다.
먼저 있던 개체가 몸을 낮추며 뒤로 물러섰다.
마치 상급자를 알아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꼬리가 바짝 말려들어가는 것도 보였다.
큰 개체가 낮게 울었다.
크르르-
그 소리가 벽을 타고 지하빌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경고: 상위 개체 접근.]
[탐색자의 생존 확률이 급격히 하락합니다.]
글자가 붉게 물들며 떠올랐다.
'생존 확률이... 더 떨어진다고?'
이미 산출 불가였던 숫자가 어디까지 더 떨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진우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게 은폐되어 있던 거였구나.'
하진우는 이 지하빌이 단순한 채집장이 아님을 그제야 실감했다.
1층조차 이런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탐색자들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알았다면 아무도 여기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김도현조차 이런 걸 언급한 적 없었다.
큰 개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바닥을 짚는 발톱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느긋한 걸음이었다.
쫓길 이유가 없다는 걸 아는 자의 걸음이었다.
하진우는 손끝으로 바닥을 짚었다.
일어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가 손바닥까지 적셨다.
미끈거리는 감촉이 손가락 사이로 스몄다.
'여기서 죽는구나.'
온몸의 감각이 서서히 무뎌지는 것 같았다.
시야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었다.
'김도현... 너도 이렇게 죽었나.'
문득 그 생각이 스쳤다.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는 물음이었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그 뜨거운 감각이 꿈틀거렸다.
아까와는 달랐다.
이번엔 스스로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 근처에서 시작된 열기가 목덜미까지 타고 올랐다.
피부 아래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감촉이었다.
'이거...'
숨을 삼켰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큰 개체가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