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여보세요."
하진우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손가락은 이미 초록색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김도현 씨 지인분 맞으십니까."
낯선 남자의 음성이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였다.
전화기 너머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저는 지하빌 관리사무소 소속입니다."
'관리사무소?'
하진우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
그런 곳에서 연락이 올 이유가 없었다.
도현이는 그저 돈 벌러 간다고, 몇 달만 고생하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었다.
"김도현 탐색자님이 넉 달 전 3구역에서 실종되셨습니다."
"...네?"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오늘부로 사망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남자는 그 말을 마치 날씨 예보처럼 전했다.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비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듯, 지극히 평범한 어조였다.
하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이 턱 막혀왔다.
손에 쥔 휴대폰이 미끄러질 것처럼 축축해졌다.
"유가족 확인이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가족분 연락처 아십니까."
"...몰라요. 저는..."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도현이의 부모는 오래전에 연을 끊었다고 들었다.
그럼 누가 저 사망 판정이라는 종이 한 장을 받아야 하는지, 하진우는 알지 못했다.
"확인 감사합니다. 추가로 필요한 사항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긴 뒤에도 그는 한동안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화면이 꺼지고, 다시 밝아졌다가, 또 꺼졌다.
'죽었다고.'
'도현이가 죽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맞았다.
불과 넉 달 전까지만 해도 도현은 이 방에 앉아 라면을 나눠 먹으며 떠들었었다.
방 안의 형광등이 또 한 번 깜빡였다.
그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지지직, 하는 잡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하진우는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하진우는 넋이 나간 채로 거리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간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잔 탓에 눈두덩이 뜨겁게 부어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바빴다.
누구도 그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주 앞에 붙은 낡은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비바람에 젖었다 마른 자국이 얼룩덜룩했다.
[탐색자 모집. 이면서울 지하빌 1층 자원 채집. 등록 즉시 지급, 경력 무관.]
'탐색자.'
김도현이 죽은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넉 달 전, 도현은 저런 전단지를 보고 등록했을 것이다.
지급이 즉시라는 말에, 경력 무관이라는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발을 들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발이 그 앞에서 멈춰 섰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전단지를 들여다봤다.
글씨 하나하나를 눈으로 되짚었다.
'무섭지도 않냐.'
스스로에게 묻고도 답을 찾지 못했다.
무섭지 않은 게 아니었다.
무서워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통장을 다시 확인했다.
숫자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아니, 더 줄어 있었다.
편의점 알바 시급으로는 방세도 감당이 안 됐다.
다음 주가 월세 마감일이었다.
집주인은 벌써 두 번이나 문자를 보내왔다.
정중했지만, 정중함 아래 날카로운 재촉이 숨어 있는 문자였다.
'이대로 있어봐야 뭐가 달라지나.'
그는 전단지에 적힌 주소를 검색했다.
서울 외곽, 낡은 건물 지하였다.
지도 위의 그 좌표를 몇 번이고 확대해서 들여다봤다.
일주일 뒤.
하진우는 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간판도 없는 회색 문이었다.
주변 건물들과 비교해도 유난히 낡고 초라했다.
문 옆에는 작은 팻말 하나만 붙어 있었다.
[등록소]
글씨는 반쯽 벗겨져 있었다.
하진우는 그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 몇이 그를 힐끔거리다 지나쳤다.
'여기가 도현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손끝이 저릿해졌다.
그는 문고리를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쇠붙이의 냉기가 손바닥까지 스며들었다.
'김도현도 이 문을 열었겠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떨렸지만, 물러설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을 열자 좁은 계단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형광등 하나가 위태롭게 매달려 흔들렸다.
계단 벽에는 곰팡이 자국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발을 내려놓을 때마다 낡은 나무 계단이 삐걱거렸다.
그 소리가 지하 전체에 울리는 것처럼 크게 느껴졌다.
계단 끝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록하러 오셨습니까."
하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 그의 남은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돌아갈 곳도, 물러설 자리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눈앞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문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녹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오래된 느낌을 주는 철문이었다.
문 너머에서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쿠구구-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문이 울렸다.
바닥을 딛고 있는 발바닥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이 안에 뭐가 있는 거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철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쩌저적-
경첩이 갈리는 소리가 지하 전체를 채웠다.
그 틈으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하진우는 그 빛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저건... 뭐지.'
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