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이후의 이야기는, 서은아의 기억이다.
심장이 먼저 알았다.
문을 열기도 전에, 손끝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또 시작이네.'
능력이 반응할 때마다 나는 손가락 마디부터 차가워진다. 마치 몸 안에 얼음 조각이 하나씩 박히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냥 신호등 같은 거다. 빨간불이 켜지면 멈춰야 하는 것처럼, 손끝이 저리면 위험이 가까이 있다는 뜻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무거웠다.
한 걸음, 두 걸음.
나는 숨을 죽이고 문 옆에 등을 붙였다.
'수아 언니는 아직 안 왔나.'
수아 언니는 나보다 세 살 위였고,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나를 꺼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다들 내 손끝이 하얗게 얼어붙는 걸 보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는데, 언니는 오히려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차갑네. 근데 이상하게 안 무서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안겨서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문틈으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르륵.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
나는 손바닥을 펴서 문에 가까이 댔다. 얼음의 결정이 손끝에서 뻗어 나가는 게 보였다. 지지직, 얇은 서리가 문틀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 서 있던 건, 사람이 아니었다.
피부는 회색빛으로 죽어 있었고, 눈은 안구가 없는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썩은 물 같은, 비릿하고 축축한 냄새였다. 목 안쪽에서 웨에에엥, 하는 낮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도시엔 저런 것들이 흔했다.
사람들은 저것들을 '틈입자'라고 불렀다. 다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틈이 벌어지듯 나타났고, 사람의 형태를 흉내 내면서도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즉, 저것과 마주치면 도망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세 번째 선택지를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손을 뻗었다.
얼음이 팔을 따라 순식간에 자라났다.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얼어붙은 나무가 되는 것 같았다. 틈입자가 달려들려는 순간, 나는 손바닥을 그 가슴팍에 정확히 박아 넣었다.
쿠구구.
바닥이 흔들렸다.
틈입자의 몸이 안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회색 피부에 서리가 퍼지고, 그르륵거리던 울음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이내 뚝 끊겼다.
쩌적.
그리고 산산조각이 났다.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바닥에 부딪혔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숨이 가빠졌다. 매번 이럴 때마다 몸속의 무언가가 통째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좀 심했나.'
손을 내려다보니 손끝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감각이 없었다. 마치 남의 손 같았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은아!"
수아 언니였다.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언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괜찮아?! 다친 거 아니지?! 왜 혼자 있었어, 나 기다리라고 했잖아……!"
말이 숨 가쁘게 겹쳐졌다. 언니는 항상 이랬다. 걱정이 앞서면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손이 먼저 나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내 목소리는 스스로도 듣기에 힘이 없었다.
언니는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걸 알면서도 절대 놓지 않았다.
"차갑네."
언니가 늘 하던 말을 또 했다.
"근데 이상하게 안 무서워."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온다는 게 우스웠지만, 그래도 웃었다.
"저것 때문에 늦은 거예요?"
내가 부서진 얼음 조각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 아래층에도 두 마리 더 있었어. 처리하고 오는 길이었는데……."
언니의 말이 끊겼다.
'아래층에도?'
심장이 다시 내려앉았다.
틈입자가 한 건물에 세 마리씩 나타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한 마리, 많아야 두 마리였다. 세 마리,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연달아 나타났다는 건.
"이상해요."
내가 중얼거렸다.
"뭔가 몰려오고 있는 느낌이에요. 마치……"
언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마치?"
"벌어진 틈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순간, 건물 전체가 낮게 진동했다.
쿠구구구.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떨림이었다. 창문이 덜컹거렸고, 복도의 불빛이 지지직 흔들리며 깜빡였다.
언니가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뭐야, 이거……"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손끝의 저림이 이번엔 팔 전체로, 어깨까지 번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강도였다.
'이건, 하나가 아니야.'
'훨씬 많아.'
건물 아래쪽에서 그르륵, 그르륵거리는 소리가 겹겹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니었다. 열, 스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언니가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서은아."
"네."
"뛸 수 있겠어?"
나는 얼어붙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감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멈춰 서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뛰어야죠."
계단 아래에서, 회색빛 그림자들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