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카페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손님이 있었다.
작은 몸집의 할머니, 이름은 성복순.
키는 나보다 한참 작았고, 등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살짝 굽어 있었다.
그녀는 늘 창가 자리에 앉아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시켰다.
정확히 오후 세 시, 해가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올 무렵이었다.
"오늘도 도연이가 만들어준 거지?"
"네, 할머니. 오늘은 거품 좀 더 냈어요."
"아이고, 이쁜 것."
그녀는 매번 같은 말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단순한 단골 이상이다.'
나는 그녀의 손끝을 유심히 살폈다.
굳은살, 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남은 흉터.
손톱은 짧게 깎여 있었고, 손등의 피부는 얇고 건조했다.
젊었을 때 오랜 노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게 짐작됐다.
시장에서 좌판을 벌였거나, 공장에서 손을 많이 썼거나.
그런 흔적들이 손 하나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며칠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라떼를 마시는 속도도 평소보다 느렸고, 창밖을 보는 시간이 유난히 길어졌다.
"할머니,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별일 없어."
'거짓말이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빛에는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전생에서 수많은 이들의 표정을 읽어야 했던 나에게, 그 정도의 동요는 숨길 수 없는 신호였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자주 움직인다.
그리고 손은, 무언가를 감추려 할 때 반드시 티를 낸다.
나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그녀의 잔에 물을 더 채워주며 곁을 지켰다.
하늘이 뒤에서 다가와 조용히 귀띔했다.
"할머니 손자가 요즘 안 좋은 애들이랑 어울린다는 소문이 있어."
"어떻게 알았어?"
"옆집 아저씨가 말해줬어. 여기 단골이거든."
하늘의 표정은 평소의 장난스러움 대신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이 녀석도 제법 눈치가 빠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라떼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잔을 감싸는 손이 자꾸만 움찔거렸고, 온기를 느끼려는 듯 손가락을 꽉 붙이고 있었다.
그 손이 떨리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단순한 노화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할머니,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괜찮아, 이런 걸 젊은 사람들한테..."
"저희 생각보다 힘 좋아요."
하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 말에 나는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 말, 틀린 말은 아니지.'
전직 용사와 그 동료 앞에서 힘이 부족하다는 말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자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생인 손자가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
"공부한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어."
"돈은 왜 빌린 건지 아세요?"
"그 애 친구가 사업을 한다고 꼬셨다더라. 그런데 그게 다 사기였던 모양이야."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그 사람들이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온다고 했어."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끝이 잔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하늘과 눈을 맞췄다.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이미 결심을 읽어냈다.
'또 이런 일이구나.'
용사였던 시절의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약자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그건 전생에서도,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세계를 구하던 그날에도, 카페에서 라떼를 만드는 지금도.
결국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할머니, 저녁에 저희가 잠깐 들여다볼게요."
"그럼 안 돼, 위험한 사람들이야."
그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실렸다.
"괜찮아요. 저희 생각보다 든든해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더는 말릴 힘이 없어 보였다.
그저 우리의 손을 한 번씩 꼭 잡고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그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할머니의 집 근처 골목에서 기다렸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이어진 골목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전선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곧 낡은 승합차가 도착하고, 험상궂은 남자 셋이 내렸다.
그들의 걸음걸이, 어깨에 힘이 들어간 자세.
발끝이 아니라 발뒤꿈치부터 땅을 디디는 걸음.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는 습관.
'싸움에 익숙한 놈들은 아니다.'
관찰만으로도 대충 감이 잡혔다.
이런 부류는 몸보다 말과 분위기로 겁을 주는 데 익숙한 자들이다.
나는 태연하게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저기, 여기 무슨 일로 오셨어요?"
"넌 뭐야, 꺼져."
리더처럼 보이는 남자가 거칠게 말했다.
그의 눈은 이미 술기운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채무 관련이면, 정식 절차로 진행하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뭔 개소리야."
남자가 내 어깨를 밀치려 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아 방향을 틀었다.
그저 반사적인 움직임이었을 뿐이다.
전생의 검을 쥐던 손이, 지금은 라떼 머신을 돌리고 사람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우습게도 그 감각만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이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바닥에 부딪힌 소리가 골목을 짧게 울렸다.
"뭐, 뭐야 이거."
남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넘어진 남자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부류에게는 힘보다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더 무서운 법이다.
남자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결국 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차를 타고 사라졌다.
엔진 소리가 골목을 벗어날 때까지, 나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하늘이 뒤에서 박수를 치며 웃었다.
"역시 용사님, 손목 하나로 제압하네."
"조용히 해."
나는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숨을 길게 내쉬자, 긴장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적어도 오늘은, 지킬 수 있는 걸 지켰다.
할머니의 집 창문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을 보며, 오늘 하루만큼은 그녀가 편히 잠들 수 있길 바랐다.
하늘과 나는 골목을 나서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같은 안도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골목 어귀에 낯선 인영이 서 있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지 못했다.
담벼락 그늘 속에 몸을 반쯤 숨긴 채, 그 형체는 우리가 사라진 방향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