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창밖으로 스쳐 가는 낯선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퀴가 돌 틈을 밟을 때마다 몸이 들썩였고, 그 진동이 등뼈를 타고 올라와 목덜미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다.
청우국의 산세는 완만했지만, 대현국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산은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봉우리마다 바위가 이빨처럼 튀어나와 있어, 마치 산 전체가 이방인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익숙했던 풍경이 조금씩 낯선 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서늘한 일이었다.
하늬는 내 맞은편에 앉아 검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였다.
그 손끝은 검자루를 가볍게 쥐고 있었는데, 힘을 준 것도 아니면서 결코 놓지도 않는 모양새였다.
"긴장하셨습니까."
"조금."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잠긴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괜찮습니다. 제가 옆에 있으니까요."
하늬의 말투는 담백했지만, 그 안에 확신이 실려 있었다.
과장도 없고 위로하려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말하듯 건조하게 던진 한마디였는데, 그게 오히려 더 믿음이 갔다.
나는 그 확신에 기대어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마차 안의 공기는 청우국의 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건조하고 차가웠으며, 어딘가 흙냄새 대신 쇳내가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국경을 넘으면 공기의 냄새까지 바뀌는 걸까.'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냄새를 몇 번이나 다시 들이켰다.
국경의 검문소에 다다르자, 대현국 측 관리가 마차를 세웠다.
말발굽 소리가 멈추고, 창밖으로 갑옷을 걸친 병사들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병사들의 갑옷은 손질이 잘 되어 있었으나,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거나, 관리가 허술하다는 뜻이다.'
작은 흔적 하나에서도 나라의 사정이 비쳐 보였다.
"청우국의 왕녀시라지요."
관리는 형식적인 예를 갖추었으나 시선은 은근히 날카로웠다.
허리를 숙이는 각도가 딱 규정에 맞을 만큼만이었고, 그 이상의 예의는 없었다.
'우리를 여전히 적국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반목이 관리 한 사람의 허리 각도에도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그렇습니다. 도재헌 왕과의 혼약을 위해 왔습니다."
내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일부러 얹은 무게가 있었다.
혼약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관리는 고개를 숙였지만, 그 숙임 속에는 진심이 없었다.
형식뿐인 인사였고, 시선은 여전히 마차 안쪽을 훑고 있었다.
검문이 끝나고 다시 마차가 출발했다.
바퀴 소리가 다시 규칙적으로 울리기 시작하자, 나는 그제야 어깨의 힘을 조금 풀었다.
나는 옆에 앉은 시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대현국의 왕에 대해 들은 것이 있나?"
시녀는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그 눈빛에는 망설임과 함께, 말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소문이 하나 있사옵니다."
"말해 봐."
나는 짧게 명령했다.
"몇 달 전, 폐하께서 숲에서 사냥을 하시다가 정체불명의 여인을 구해 오셨다 합니다."
나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런데?"
"그 여인을 왕비의 침실이었던 곳에 머물게 하시고, 매일같이 찾아가신다고……. 온 왕궁이 그 이야기로 떠들썩합니다."
나는 순간 말이 없어졌다.
시녀의 말이 귓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울렸다.
'왕비의 침실이라면, 나를 위해 비워둔 자리가 아니었나.'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마차 안의 온도는 그대로였는데도,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분노라기보다는, 자존심이 긁히는 감각이었다.
"확실한 정보인가?"
"확실하다고까지는……. 다만 그 소문이 궁 안팎으로 자자합니다."
시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시녀들 사이에서도, 하급 관리들 사이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돌고 있사옵니다. 그것도 한두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말끝이 흐려졌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 능선 위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주홍빛 하늘이 마치 타오르는 불씨 같았다.
구름 몇 조각이 그 불씨 위에 검게 눌어붙은 재처럼 걸려 있었다.
'내가 혼약자의 마음까지 바라진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정치적 혼인이었고, 애초에 사랑을 기대할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왕비의 자리에 앉을 사람이 오기도 전에, 그 자리를 다른 여인에게 내주었다는 것은.'
그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결례였다.
두 나라의 평화를 짓기 위한 결혼이 시작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왕이 정말로 그 여인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면, 나는 단지 형식적인 왕비 자리에 앉을 뿐인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형식적인 존재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하늬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모르겠어."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소문일 뿐일 수도 있고, 진짜 문제일 수도 있어."
시녀들 사이의 소문이란 대개 부풀려지기 마련이었지만, 이 정도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도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하늬의 눈빛에 이미 답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마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야겠어. 정식으로 왕녀 대접을 받고 들어가면, 진실을 볼 수 없을 거야."
왕녀라는 신분으로 입궁하는 순간,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가면을 쓸 것이 분명했다.
관리들은 예를 갖추고, 시녀들은 입을 다물고, 왕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준비해 둘 것이다.
"무슨 뜻이십니까."
"위장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야."
하늬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평소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하늬였기에, 그 짧은 순간의 흔들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위험합니다. 만약 발각되면 두 나라의 관계가……"
"발각되지 않으면 그만이야."
나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 결혼이 정치적으로 안전한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혼인이 무너지면 두 나라 사이의 균형도 함께 무너진다.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전쟁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다시 국경을 넘어올 것이다.
'나는 지금 왕녀가 아니라, 두 나라의 안전을 확인하러 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되뇌어야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혼약자가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준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나를 더 크게 흔들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정략혼인이라 여기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마음 어딘가에, 실은 아주 작은 기대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유가 무엇이 됐든.'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진실을 알아야 했다.
거짓 위에 세워진 혼인이라면, 차라리 지금 무너뜨리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늬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대신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조금 더 실었을 뿐이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준비하겠습니다."
그 짧은 말 속에 담긴 각오가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위장할 신분과 방법을 하나씩 그려보기 시작했다.
시녀의 옷차림, 걸음걸이, 말투까지 모두 바꿔야 할 것이다.
왕녀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만큼, 그것을 지우는 일이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았다.
마차는 계속해서 대현국의 왕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바퀴 소리는 여전히 일정했지만, 내 심장 소리는 그보다 훨씬 빠르게 뛰고 있었다.
창밖으로 저 멀리 궁의 지붕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지붕의 검은 실루엣이 마치 웅크린 짐승의 등처럼 보였다.
그 지붕 아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마주하게 될 것이, 결코 순탄한 환영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