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어머니의 데뷔식 참석은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의사는 절대 안정을 권했다. 계단도 오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내 성년 사교 데뷔가 다가오자, 어머니는 그 말들을 전부 무시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서연이 첫 데뷔인데 엄마가 안 갈 수 있니.'
어머니는 병상에서도 화장대 앞에 앉았다. 손이 떨려 분첩을 자꾸 놓쳤다. 그럴 때마다 하녀가 대신 발라주었지만, 어머니는 굳이 자기 손으로 마무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제가 갈게요, 저 혼자.' 나는 몇 번이나 말했다. '어머니는 쉬셔야 해요.'
'쉬는 건 데뷔식 끝나고 하마.'
그 눈빛이 문제였다. 단호하다기보다는,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는 결국 말리지 못했다.
마차에 오를 때 어머니는 하녀 둘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그 짧은 몇 걸음에도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이 사람을 이기는 방법을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연회장은 예상보다 화려했다. 샹들리에 아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었고, 웃음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그 소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찾다가, 찾고 싶지 않았던 얼굴부터 먼저 발견했다.
오태현. 그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옆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화사하게 웃는 얼굴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옷차림이나 서 있는 각도, 그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이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익숙한 한 세트처럼 보였다.
한지은. 소문 속 그 이름이었다.
오태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재밌었다. 뭘 당황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그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니.' 어머니가 옆에서 낮게 물었다.
'응.'
'그 옆에 여자는.'
'모르겠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름은 알아도 저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으니까.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병색이 짙은 손인데도 힘은 여전했다.
'신경 쓰지 마.'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저런 애송이보다 훨씬 나은 사람 만날 거야.'
그 말이 그날 어머니가 나에게 해준 마지막 조언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데뷔식은 형식적인 순서로 흘러갔다. 인사를 나누고, 춤을 추고, 웃음을 지어 보이는 시간들. 낯모르는 귀족들이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고, 나는 그마다 적절한 미소와 적절한 대답을 골라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채권자 명단과 지출 항목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 상단은 이자를 언제까지 유예해줬는지, 저 가문에서 빌린 돈은 담보가 얼마나 잡혀 있는지. 춤을 추는 발동작보다 그 숫자들이 더 선명했다.
'서연.' 파트너가 웃으며 물었다. '오늘 좀 딴생각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이런 내가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어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왔고, 나는 그 곁에서 빚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계산은 계산이었고, 감정은 감정이었다. 둘을 섞으면 둘 다 망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몸살이 심하다며 일찍 잠들었다. 얼굴이 붉었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나는 밤새 그 곁을 지키다가 새벽에야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은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열이 조금 내렸다는 하녀의 보고에 나는 안심했다. 그 안심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이틀째 되던 날 아침, 하녀가 창백한 얼굴로 뛰어왔을 때 나는 그게 그렇게 큰일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가씨, 마님이… 마님이 숨을 안 쉬세요.'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숨을 안 쉰다는 말이 어떤 무게를 가진 말인지, 머릿속에서 곧바로 번역되지 않았다.
방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불을 걷어내는 내 손이 떨렸다. 이름을 불렀다. 두 번, 세 번. 아무 반응도 없었다.
주치의가 도착했지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오래 진찰하지 않았다. 몇 분 만에 도구를 내려놓았으니까.
'심장이 갑자기 멈춘 겁니다.' 주치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 앓고 있던 병 때문에… 무리를 하신 게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무리. 그 단어가 귀에 걸렸다. 데뷔식. 그 하루가 스쳤다.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아버지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는 서재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날이 이어졌다.
집안 전체가 슬픔에 잠긴 그 사이, 채권자들의 서신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소식이 벌써 퍼진 모양이었다. 안주인이 없는 집, 가주가 무너진 집은 빚을 갚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한 상단은 즉시 상환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유예 기간을 취소한다는 통보였다. 다른 곳은 담보로 잡은 영지 일부를 처분하겠다는 통보를 보냈다. 절차와 기한, 처분 방식까지 이미 정해진 채로.
세 번째 서신은 이자율을 재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기존보다 두 배 가까운 수치였다.
나는 그 서신들을 서재에서 하나씩 펼쳐 읽었다. 눈물이 마를 틈도 없이 계산을 해야 했다. 서명, 날짜, 금액, 기한.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이대로면 삼 년이 아니라 반 년이다.'
장부를 덮으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스스로도 낯설게 들렸다. 어머니가 죽은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이미 그 죽음을 하나의 변수로 계산에 넣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해야지, 안 그러면 다 무너지니까.'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창밖으로 어머니의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종 소리, 사람들의 낮은 웅얼거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면 무너질 것 같았고, 무너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서재 문이 벌컥 열렸다.
집사의 얼굴이 심각했다.
'아가씨, 오현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오태현 공자님이 직접 오셨다는데요.'
하필 지금.
나는 눈을 감고 짧게 숨을 골랐다. 어머니 장례 날, 오태현이 직접 찾아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조문이라면 이렇게 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건지, 나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