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죽은 성녀, 돌아왔습니다

4화

아이의 이름은 미소였다. 나이는 대략 예닐곱쯤 되어 보였다. "아파써……" 미소가 팔을 감싸 안으며 칭얼거렸다. 작은 얼굴이 잔뜩 찡그려져 있었는데, 그 표정이 어딘가 낯익어서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왕도에서 어린 시절, 나도 저런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손끝으로 상처 주변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 피부가 부어오른 정도로 보면, 상처가 난 지 사흘쯤 지난 듯했다. 가장자리는 붉게 짓물러 있었고, 중심부는 노랗게 곪아 있었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약초만으로는 감염을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정도 상처라면 왕도의 신관들은 손도 대지 않고 성수 한 방울로 끝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사치가 없었다. 나는 품에서 미리 챙겨온 마른 약초 몇 잎을 꺼내는 척했다. 사실 그 약초는 아무 효험도 없는 잡풀에 가까웠다. 그것을 상처 위에 올리며, 손바닥을 살짝 겹쳐 덮었다. 아주 미약한 온기를 흘려보냈다. 신성력이라기엔 너무 옅어서, 눈치채기 어려운 정도였다. "조금 뜨겁지?" "응…… 뜨거워써." 미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작은 눈동자 안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 순진한 시선이 마음 한구석을 콱 붙잡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부어오른 피부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곁에 서 있던 노인의 눈이 커졌다. "이런…… 약초에 이런 효험이 있었소?" 주름진 손이 미소의 팔을 조심스레 쓸어보았다. 붓기가 눈에 보일 만큼 빠져 있었다. "제가 조금 특이한 처방을 씁니다." 나는 능청스럽게 둘러댔다. 특이한 처방이라니, 신성력을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못할 말도 아니었다. 까마귀가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시선만큼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감시하는 걸까, 아니면 걱정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소의 상처를 다 살핀 뒤, 나는 마을을 돌며 다친 사람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다리를 절뚝이던 여인, 손목이 부러진 사냥꾼, 기침이 멈추지 않는 노파까지. 여인의 다리는 오래된 골절이 제대로 아물지 않은 채 굽어 있었고, 사냥꾼의 손목은 스스로 나무 조각을 덧대어 고정해 둔 상태였다. 노파는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서 쇳소리가 났다. 모두 마수의 습격이나 국경 지대의 열악한 환경 탓에 얻은 상처들이었다. 이곳은 치료사 하나 제대로 두지 못할 만큼 가난한 마을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매번 약초를 다루는 척하며, 아주 조금씩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너무 빨리 낫게 하면 의심받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힘을 최대한 아꼈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자연스러운 회복처럼 보이도록. 사냥꾼의 손목을 만질 때는 일부러 부목을 다시 감아주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여인의 다리를 살필 때는 마사지를 하는 척 손을 오래 문질러야 했다. 그렇게 해가 조금씩 기울었다. 해가 저물 무렵,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유하연 님, 정말 감사합니다." 한 아낙이 내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손등이 거칠고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평생 흙을 만지고 물을 긴 손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아이가 오늘 밤은 편히 잘 수 있겠어요." 그 말에 가슴 한쪽이 뭉근하게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왕도에서는 내가 아무리 힘을 쏟아도, 그 공은 언니의 것이 되곤 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신성력을 쏟아부어도, 사람들은 성녀의 이름만 기억했다. 내 이름은 그 뒤에 조용히 지워지곤 했다. 여기서는 적어도, 내가 한 일이 내 이름으로 남았다. 비록 그 이름이 진짜 내 이름이 아니라 할지라도. '유하연이라도 상관없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낯선 이름 아래에서라도, 누군가 내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이렇게 낯설고도 따뜻한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마을을 벗어나 은신처로 돌아가는 길, 까마귀가 처음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좀 위험했어."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어느 부분이 말입니까." 나는 걸음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되물었다. "마지막 노파. 회복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어."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걸 알아챘구나.' 역시 예사롭지 않은 눈이었다. 노파의 기침을 멈추게 할 때, 조금 힘을 더 많이 흘려보냈던 것은 사실이었다. 노파의 상태가 워낙 위중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숨소리가 점점 옅어지던 그 순간, 나는 계산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까마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날카로움이 섞였다. 그 날카로움이 오히려 낯설어서, 나는 잠시 그의 옆얼굴을 살폈다. 달빛 아래 그의 눈매가 평소보다 더 짙게 그늘져 있었다. "네가 죽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 그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걱정이 담긴 말인지, 단순한 계산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만약 후자라면, 나는 그에게 어떤 용도로 계산되고 있는 걸까. 만약 전자라면, 그는 왜 그런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고 드러낸 걸까. "당신에게 저는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더 조심스럽게 나왔다. 까마귀는 대답 대신 걸음을 재촉했다. 발소리가 어둠 속으로 빠르게 멀어졌다. 대답을 회피하는 그 뒷모습에서, 나는 또 다른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저 사람은 대체 뭘 감추고 있는 걸까.' 단순한 임무 때문이라면, 굳이 목숨을 걸지 말라는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을 어귀에서, 낯선 남자 셋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허리춤에 걸린 낡은 검, 해진 옷차림, 그러나 눈빛만큼은 날카로웠다. 칼자루를 감싼 가죽끈은 여러 번 덧대어 손질한 흔적이 있었다. 싸움에 익숙한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도적인가.' 그들의 시선이 유독 나에게 오래 머물러 있었다. 마치 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거두며 걸음을 옮겼지만, 등 뒤로 따라붙는 그 시선의 무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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