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쨍, 하고 은은하게 울리는 그 소리마저 신경을 긁는 밤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고, 어머니는 리아의 접시만 살폈고, 나는 그저 배를 채우는 사람처럼 조용히 식사를 마치는 게 최선이었다. 스무 해 가까이 반복된 풍경이라 이제는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아버지의 젓가락질 속도, 어머니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 그 사이에서 존재감을 지우고 앉아 있는 나 자신까지.
오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리아가 태오를 향해 웃는 방식이 이상했다.
원래도 리아는 잘 웃는 아이였다. 병약하고 여리다는 이유로 응석이 몸에 붙어버린 아이. 숨만 조금 가빠져도 온 집안이 뒤집히던 그 아이가, 웃는 것쯤이야 특별할 리 없었다. 밥투정을 부리며 웃고, 인형을 사달라며 웃고, 오빠라고 부르며 웃고. 그런 종류의 웃음에는 익숙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오늘은 좀 달랐다.
태오를 바라보는 시선에 뭔가 은근한 게 섞여 있었다.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았다가 다시 치켜뜨는 그 각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속도, 뭐 하나 예사롭지 않았다.
태오도 마찬가지였다.
내 약혼자라는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있으면서, 시선은 자꾸 리아 쪽으로 흘렀다. 처음엔 한두 번이길래 우연이라 여겼다. 국그릇을 놓다가, 물을 따르다가, 그 김에 시선이 돌아가는 정도. 그런데 그게 세 번, 네 번을 넘어가자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웠고, 무심하다 하기엔 너무 잦았다.
"태오 오라버니, 이거 좀 먹어보세요. 어머니가 특별히 준비하신 거예요."
리아가 접시를 밀어주며 배시시 웃었다. 목소리에도 꿀이 발린 것 같았다.
태오는 못 이기는 척 그것을 받아먹었다.
못 이기는 척.
딱 그런 표정이었다. 싫은데 억지로 받는 게 아니라, 좋으면서 아닌 척하는 그런 표정.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고, 눈은 리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그 얼굴을 삼 년째 마주하고 있었지만, 저런 표정은 나에게 한 번도 지어 보인 적 없었다.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왜 그러니, 서아."
어머니가 물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냥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그걸 이십 년 가까이 겪어 왔기 때문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저 억양, 저 눈빛의 온도. 아, 또 시작이구나.
"아니에요. 그냥 배가 좀 부른 것 같아서요."
"많이 먹어야지. 여자가 너무 마르면 안 좋다."
리아를 향해 하는 말이었을 텐데,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순서가 늘 이런 식이었다. 리아를 위한 말이, 나에게 던져지는 방식으로. 마치 내가 리아만큼 잘 먹지 못해서, 리아만큼 예쁘지 못해서 문제라는 듯한 그 어조.
이럴 때마다 나는 웃긴 생각을 했다. 이 집에서 나는 감정 배달부인가. 리아를 위한 걱정이 왜 항상 내 앞접시에 올라오는 걸까.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 그 이상하다는 감정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꺼내봤자 돌아오는 반응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니."
혹은.
"리아가 몸이 약해서 그런 거야, 이해해줘."
둘 중 하나. 언제나 그 두 가지 대답 사이를 오갔다. 마치 정해진 두 개의 카드 중 하나를 뽑는 게임 같았다. 몇 번을 해도 결과는 똑같은, 그런 재미없는 게임.
디저트가 나올 즈음엔 이미 대화가 다 끊긴 뒤였다. 아버지는 신문을 펼쳐 들었고, 어머니는 리아의 이마를 짚어보며 열이 없는지 확인했고, 태오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틈에서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앉아 오늘 저녁의 장면을 다시 곱씹었다. 태오의 시선, 리아의 웃음, 그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공기. 착각일 수도 있었다. 그냥 오누이처럼 친한 사이일 수도 있었다. 원래도 태오는 이 집에 자주 드나들며 리아를 귀여워했으니까.
근데 내가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약혼자인데 왜 아무 감정도 안 드는 거지. 배신감이든 질투든, 뭐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서 여주인공은 눈물을 쏟거나 접시를 깨거나, 뭐라도 하던데.
웃기게도 그런 감정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뭔가 어긋난 톱니바퀴를 발견한 것 같은, 불편한 관찰자의 시선만 남았다. 마치 남의 연애 소설을 읽다가 등장인물 이름표가 잘못 붙은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저건 내 이야기가 아닌데, 내 이름이 붙어 있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 그 장면을 되짚었다. 태오의 눈빛이 리아에게 닿을 때의 온도와, 나에게 닿을 때의 온도가 확실히 달랐다. 전자는 따뜻했고, 후자는 그냥 예의였다. 사람을 대할 때 온도 차가 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약혼자와 그 동생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이상한 게 맞았다.
창문 너머로 어두워진 정원이 보였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창틀을 타고 미약하게 들려왔다. 달빛이 정원 흙바닥을 비스듬히 훑고 지나갔다.
그 아래, 뜰 한쪽에 낡은 나무 상자가 하나 묻혀 있다는 걸 이 집안에서 아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더더욱 나 하나만 알고 있었다.
오늘 밤엔 오랜만에 그걸 꺼내볼까,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몰랐다. 그냥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 집에서 이십 년 가까이 살아오며 쌓은 감이라는 게, 슬슬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이런 감은 대체로 틀린 적이 없었다. 아니, 틀렸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서 문제였다.
창밖의 달이 유난히 밝았다.
너무 밝아서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다시 걷어냈다가, 창밖을 몇 번이나 내다봤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에 서서 그 나무 상자가 묻힌 자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 위치만큼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는 좌표였다.
나는 결심했다.
내일, 아무도 없는 시간에, 그 상자를 꺼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