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혼하시죠, 국토 절반 걸고

2화

대전 안의 침묵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국토의 절반이라니, 그게 무슨 망발이오!" 늙은 대신 하나가 소리를 높였고, 그 목소리를 신호탄으로 삼은 듯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관복 자락이 스치는 소리, 낮게 속닥이는 소리, 누군가 헛기침을 삼키는 소리가 뒤섞여 대전 전체가 낮게 웅웅거렸다. 마치 벌집을 건드린 것 같은 소란이었다. 이도현은 미간을 좁히며 강서윤을 노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분노보다 먼저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손에 쥔 옥패를 어찌할 바 모르고 만지작거리는 손끝이, 그가 얼마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였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강서윤은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그러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소매에서 얇은 서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종이는 오래되어 누렇게 바스라질 듯했지만, 그 안에 담긴 옥새의 붉은 자국만은 선명했다. 그녀는 그 서책을 두 손으로 받쳐 들어 대신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 올렸다. "혼인 당시 양가에서 작성한 혼인 조약서입니다. 여기에 명시되어 있지요. '정당한 사유 없이 왕비를 폐하고자 할 경우, 서부 삼도를 위시한 국토의 절반을 왕비의 본가인 강씨 가문에 귀속한다.' 폐하께서는 잊으셨습니까?" 그녀는 지난 삶에서 이 조약서의 존재조차 몰랐다. 궁에서 쫓겨나던 그날까지도, 자신을 지켜줄 종이 한 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맨몸으로 내던져졌으니까. 눈발이 흩날리던 그날의 궁문 밖, 얇은 홑겹 옷 하나로 떨며 걸었던 그 길이 지금도 손끝에 서늘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우연히 스쳐 지나간 관리의 한마디였다. "왕비마님, 그 조약서만 챙기셨어도……" 그 말을 듣던 순간의 허탈함이란. 이번 삶에서는 절대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녀는 몇 번이나 되새겼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몇 번의 되새김이 마침내 형체를 갖추어 이 대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도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배어나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그, 그것은 형식적인 조항일 뿐이다. 실제로 시행될 리 없어." "형식적이라니요." 강서윤이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은 슬픔도 조롱도 아닌, 그저 서늘한 확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치 이미 결과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여유처럼도 보였다. "국법에 따라 정식으로 작성되고 옥새까지 찍힌 문서입니다. 폐하께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만조백관 앞에서 선포하신 이혼 역시, 정식 절차이지요. 그렇다면 이 조약 역시 정식으로 이행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식 절차라는 말이 이도현의 귀에 유난히 크게 울렸는지, 그의 턱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신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국왕에게로 쏠렸다. 몇몇은 벌써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한 표정으로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국토의 절반. 그 말이 가진 무게는 단순히 땅의 크기만이 아니었다. 세곡과 병력, 그리고 조정 내 권력의 균형까지 모두 흔들릴 사안이었으니, 대신들의 계산이 빨라지는 것도 당연했다. 누군가는 벌써 강씨 가문의 편에 서는 것이 이득일지 셈을 하고 있을 터였다. 국토의 절반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가 서서히 대전 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유리는 처음의 여유로운 미소를 잃어버린 채, 부채를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곱게 그린 눈썹 아래로 당혹감이 스치는 것을, 강서윤은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저 여인이 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지난 삶에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광경이었다. "오늘 당장 결론을 내릴 사안이 아닙니다." 재상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려 애썼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 혼란을 어떻게든 봉합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이혼과 조약의 이행 문제는 별도로 논의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국사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니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몇 대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상의 말에 동조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저마다 다른 셈이 깔려 있었다. 누구는 강씨 가문의 위세를 두려워했고, 누구는 이 기회에 왕실의 약점을 잡으려는 눈치였다. 이도현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결국 이를 악문 채로 짧게 명했다. "……한 달의 유예를 두겠다. 그 안에 왕비는 조약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짐은 국사를 정리할 것이다." 한 달이라는 말이 대전 안에 낮게 퍼지자, 웅성거림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뒤의 정적처럼, 다들 숨을 죽이고 다음 상황을 기다리는 듯했다. 강서윤은 고개를 숙이며 순종하듯 예를 표했지만, 그 안에서는 전혀 다른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 달. 지난 삶에서는 단 하룻밤 만에 모든 것을 잃었는데, 이번 삶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충분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결코 맨몸으로 궁문 밖에 내던져지지 않을 것이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속눈썹 아래로, 조금 전까지 흘렸던 눈물의 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이미 다른 계산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슬픔과 계산이 한 얼굴 위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순간의 강서윤이 증명하고 있었다. 대전을 나서는 그녀의 뒤로,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다인이었다. 걸음이 조금 빠르다 싶었는지 다인은 강서윤과의 거리를 서둘러 좁혀왔고, 두 사람 사이로 스치는 궁궐의 서늘한 바람만이 이 소란한 대전과 대조를 이루며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강서윤은 품속에서 작은 장부 하나를 꺼내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지난 삶에서도 끝내 펼쳐 보지 못했던 장부였다. '이번에는 이걸 써야 할 때가 왔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