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황금빛 심판의 영애

2화

검이 내려왔다. 나는 눈을 감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은 감았다. 사람이란 게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프지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냥, 아주 편안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물속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느꼈던 감각이 뭐였는지 떠올려보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통증의 기억조차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내 몸이, 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방금 검이 내 목을 겨눴는데, 목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다만 눈을 감고 있는 내 얼굴은, 죽은 사람 특유의 정지된 표정이었다. 마치 밀랍으로 만든 인형 같았다. 저게 정말 나였나. 저렇게 생겼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아. 죽었구나. 나는 그 사실을 놀랍도록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예상했던 결말이었고, 이제 와서 발버둥 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신기했다.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마치 관찰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죽은 당사자가 그런 감상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저 도윤이라는 기사가 검을 든 채로 그 자리에서 굳어 있는 게 보이는 걸까. 한도윤. 왕실 소속 기사이자, 방금 나를 벤 사람. 처형장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대화를 나눈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저 왕실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검사라고만 생각했었다. 도윤은 검을 다시 검집에 꽂지도 못하고, 자신이 방금 벤 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뭔가 이상한 것이 스쳐 지나갔다. 후회인지, 의아함인지 구분이 안 되는 감정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도 보였다. 검을 그렇게 오래 든 사람이, 이 정도 처형에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게 좀 어색했다. "판결이 완료되었다." 관리가 외쳤다. "신의 심판대로, 죄인 이서윤은 죽음으로 그 벌을 받았노라!" 군중의 함성이 다시 터졌다. 승리를 만끽하는 소리였다. 누군가는 손뼉을 쳤고, 누군가는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정의가 실현됐다고 믿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저들 중 누구의 이름도 몰랐다. 그런데도 저들은 내 이름을 알고, 내 죄를 안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아니 어디서 듣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듣고 있었다. 몸이 없는데도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청각이랄 것도 없는데 소리가 들리고, 시야랄 것도 없는데 광경이 보였다. 이게 영혼이라는 건가. 죽으면 다들 이런 상태가 되는 건가. 아니면 나만 특별히 이런 애매한 처지가 된 건가.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이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 시체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곧바로 나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정하게.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방금 사람이 죽었는데. 방금 내가 죽었는데. 나는 그 웃음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화를 낼 힘조차 이제는 남아있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이미 감정이라는 게 몸과 함께 죽어 버린 걸까. 한때는 저 손을 내가 잡았었다. 저 웃음도 나를 향한 것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기억이 남의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이헌과 나영.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처형대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였다는 것.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했었다. 아니, 몰랐던 척하는 게 더 편했었다. "수고했다, 한도윤 경." 이헌이 도윤에게 말했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성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신에는 아직 옅은 금빛이 감돌고 있었는데, 그건 원래 성검이 가진 빛이 아니라— 뭔가 다른, 낯선 빛이었다. 그는 그 빛을 이상하다는 듯 응시했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헌도, 나영도, 관리들도, 심지어 군중조차도. 모두가 판결이 끝났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있었다. 나만 눈치챘다. 아니, 눈치챈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나는 몸이 없으니 시야도 없을 텐데, 그런데도 뭔가가 보였다. 그 빛이 마치 나를 향해 뭔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관리들이 내 시신을 천으로 덮었다. "가문에는 통보하였는가?" "예, 하오나…… 가주께서는 참석하지 않으시겠다고 전하셨습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렇겠지. 우리 가문은 이미 나를 버렸다. 처형이 확정된 순간부터, 아버지도, 오라비도 나를 향한 어떤 변호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이미 가문에 먹칠을 한 오점이었을 뿐이었다. 재판 내내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오라비는 그보다 더했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나와의 관계를 부정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고 들었다. 연모했던 이헌도, 핏줄인 가족도, 아무도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웃기게도 그 사실이 슬프기보다는 그냥, 허탈했다. 마치 오랫동안 믹서기에 갇혀 있다가 겨우 꺼내진 기분이었다. 이제는 갈릴 일도 없으니 차라리 편해진 걸까. 이십몇 년을 살면서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이 그거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처량했다. "시신은 성전 뒤편에 안치하도록." 관리의 명령이 떨어졌다. 왕가의 죄인이라도 최소한의 격식은 갖춰야 한다는 이유였다. 사실 그 격식이란 것도 그저 왕실의 체면을 위한 절차일 뿐, 나를 위한 배려는 아니었다. 죄인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방치했다는 소문이 돌면 곤란한 건 왕실이었으니까. 내 몸이 들려 옮겨지는 동안, 나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정확히는, 내 몸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실에 묶인 것처럼. 아무리 멀어지려 해도 자연스럽게 몸 쪽으로 끌려가는 감각. 발이 없는데 걷고 있는 것 같았고, 눈이 없는데 계속 뭔가를 보고 있었다. 병사들이 나를 들고 성전 쪽으로 향하는 동안, 처형장 주변에 남은 사람들의 대화가 간간이 들려왔다. "저 여자, 원래 후작 영애였다지." "그러니까 더 무섭지. 그런 신분이었는데도 저런 죄를 짓다니." 죄. 다들 그렇게 부르는 그것의 실체가 뭔지, 나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재판 내내 반박할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증거라는 것도 애매했고, 증인이라는 사람들의 진술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판결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마치 누군가 미리 결론을 정해놓은 것처럼. 도윤이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자책인지, 의문인지, 혹은 둘 다인지. 검을 쥔 손을 다시 내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검신에 남은 그 낯선 금빛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도, 몸도 없었으니까. 소리쳐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정작 그 말을 낼 도구가 없다는 게 이렇게 답답할 줄은 몰랐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관찰자가 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죽었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세상의 가장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성전으로 향하는 길에는 낡은 석등이 몇 개 세워져 있었고, 그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병사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나는 그 그림자들 사이를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성전으로 옮겨지던 도중, 내 몸을 들고 가던 병사 하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어……?" 그의 눈이 커졌다. "손이……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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