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아침 알람이 세 번 울리고서야 눈을 떴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방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먼지 알갱이들이 그 빛줄기 속에서 느릿하게 떠다녔다.
나는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렸다.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오른쪽 눈두덩을 가로지르는 흉터, 그 위로 감긴 듯 뜨이지 않는 우안.
어릴 적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로 십 년 가까이 그 눈은 그냥 감긴 것과 다름없이 살아왔다.
매일 아침 같은 얼굴, 같은 흉터, 같은 무표정.
(오늘도 똑같은 하루겠지.)
나는 흉터를 손끝으로 가볍게 문지르고 옷을 챙겨 입었다.
교복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채우는 동안 창밖에서 참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마저 어제와 똑같았다.
학교로 가는 길은 늘 조용했다.
가방을 메고 골목을 나설 때마다 발밑에서 자갈 밟히는 소리가 났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의 시선이 스치듯 지나갔다.
누군가는 눈을 피했고,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저 새끼 또 저러고 다니네."
뒤에서 낮게 들리는 목소리에 걸음이 느려졌다.
"눈 저런 거 무섭지 않냐."
누군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말들이 등 뒤에 쌓이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일진 보스라니, 나는 그냥... 흉터가 있을 뿐인데.)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을 해봤자 오해는 더 단단해질 뿐이라는 걸 이미 여러 번 배웠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몇 명이 슬쩍 자리를 옮겼다.
빈자리가 넓어졌다.
나는 그 넓은 공간에 익숙하게 몸을 밀어넣었다.
점심시간에는 늘 그렇듯 구석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급식실 소음이 멀리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잦아들었다.
요즘 읽고 있는 웹소설의 새 화가 올라와 있었다.
제목 옆에 붙은 숫자를 확인하고 곧바로 눌렀다.
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을 읽으며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문장 하나하나가 화면을 스치듯 넘어갔다.
(나도 저런 순간이 있으면 좋겠는데.)
괜히 그런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휴대폰 화면 속 세상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훨씬 가까웠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가방끈을 고쳐 메고 골목을 돌아 작은 공원 쪽으로 걸었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공원 입구의 낡은 철제 표지판이 삐걱거리며 바람에 흔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공원 구석, 낡은 벤치 아래에는 내가 만든 작은 상자 집이 있었다.
합판 조각과 방수 천으로 얼기설기 만든, 볼품없지만 튼튼한 집이었다.
그 안에서 먹돌과 누리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왔다.
먹돌은 온몸이 검은 털로 덮인 녀석이었고, 누리는 그보다 작고 갈색 털이 부숭한 녀석이었다.
둘 다 몇 달 전 이 공원에서 버려진 채 떨고 있던 걸 내가 주워 왔다.
그때 먹돌은 갈비뼈가 다 드러날 만큼 말라 있었고, 누리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지금은 둘 다 제법 살이 오르고 걸음도 안정적이었다.
"오늘도 잘 있었어?"
나는 쭈그려 앉아 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먹돌이 내 손등을 핥았다.
축축하고 따뜻한 감촉이 손등 전체로 퍼졌다.
누리는 옆에서 낑낑거리며 몸을 비볐다.
작은 몸이 다리에 부딪히는 느낌이 좋았다.
이 순간만큼은 학교에서의 시선 따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가방을 벤치 위에 던지고 나는 완전히 주저앉았다.
사료를 부어주고 물통을 채우는 동안 바람이 살짝 방향을 바꿨다.
나뭇잎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크게 들렸다.
(그냥 바람이 세진 거겠지.)
그렇게 넘기며 나는 벤치에 앉아 다리를 뻗었다.
먹돌과 누리는 그릇 앞에서 나란히 고개를 파묻고 먹기 시작했다.
쩝쩝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공원에 소소하게 울렸다.
휴대폰을 다시 꺼내려던 손을 멈추고, 나는 그냥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평범한 오후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공원에는 붉은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무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며 벤치 위로 드리워졌다.
그림자가 긴 나무 아래, 오래된 돌무더기 근처에서 먹돌이 갑자기 코를 킁킁거렸다.
밥그릇에서 얼굴을 든 채로 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누리도 그쪽으로 다가가더니 귀를 세웠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을 사소한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뭔가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뭐야, 거기 뭐 있어?"
나는 몸을 일으켜 다가갔다.
운동화 밑창에 흙이 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돌무더기 사이 흙바닥이 유난히 색이 짙어 보였다.
젖은 흙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그늘 때문일 수도 있었다.
(별거 아니겠지.)
손끝으로 흙을 살짝 눌러보았다.
차가운 습기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그 서늘한 감각이 손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흙이 젖어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 순간, 먹돌이 낮게 울었다.
으르릉.
짧지만 분명한 경계의 소리였다.
공원의 고요를 가르는 그 소리에 나는 손을 그대로 멈췄다.
누리도 몸을 낮추며 털을 곤두세웠다.
등줄기의 털까지 삐죽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나무와 그림자, 그리고 저녁의 고요뿐이었다.
멀리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람도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뭐지... 갑자기 왜 이래.)
먹돌의 시선은 여전히 돌무더기 너머 어둠 속을 향해 있었다.
그 눈빛이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다.
장난기도, 경계심도 아닌, 뭔가 본능적인 두려움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누리는 이제 아예 내 다리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작은 몸이 떨리는 게 다리에 그대로 전해졌다.
나는 천천히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돌무더기 너머, 그림자가 유난히 진하게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그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