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강은호는 사흘째 되는 날, 박요한 신부의 손에 팔을 맡겼다.
방 안에는 마른 약초 냄새가 배어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오전의 빛이 신부의 손등을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신부는 상처 위에 손바닥을 가만히 얹었다. 손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따뜻한 빛이었다. 살갗 아래로 스며드는 감각이 이상하게 낯익었다.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벌어졌던 살이 조금씩 맞물리고, 붉은 자국만 옅게 남았다.
"들개가 아니라 큰이빨늑대였군요."
박요한 신부가 말했다.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이빨 자국의 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들개는 이렇게 깊게 박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세 마리를 혼자 상대했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죠."
강은호는 웃으며 말했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이 아니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팔이 창을 쥐듯 자세를 잡았고, 다리가 먼저 물러섰다. 생각보다 몸이 앞서 나갔다. 그건 분명 노집사가 말한 '보상' 때문이었다.
신부는 붕대를 새로 감으며 나직하게 물었다.
"어디서 만난 겁니까."
"강가 근처였습니다. 물을 뜨러 갔다가."
"혼자 가지 마십시오. 이 마을 사람들도 강가 근처는 해가 진 뒤엔 잘 가지 않습니다."
"왜죠?"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붕대 끝을 매듭짓는 손끝만 조금 느려졌다.
그날 밤, 강은호는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불 밖으로 나온 팔이 시원했다. 벽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리다 멈췄다. 눈을 감자마자 익숙한 진동이 시작됐다.
웅—
바닥이 울렸다. 아니, 울린다는 느낌만 있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다.
노집사가 문 너머에서 걸어 나왔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느리고 규칙적이었다. 마치 오래된 시계추처럼.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강은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노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록 마지막 줄에 있던 이름, 그거 사람 이름 아닙니까."
노집사는 잠시 침묵했다. 창백한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강은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말씀하시는군요."
"'아직은'이 아니라 앞으로도 안 합니다."
노집사는 처음으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안타까움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당신은 지금 짐승을 사냥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그 짐승들도 원래는 그저 살아 있던 것들입니다. 당신이 그은 도덕의 선은, 결국 당신 마음이 편한 지점에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강은호는 이를 악물었다.
"짐승이랑 사람은 다릅니다."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흥미롭군요. 저는 그 경계가 늘 흐릿하다고 배웠습니다만."
강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노집사의 말투에는 도발이 없었다.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듯한 냉정함뿐이었다. 그게 오히려 더 화가 났다. 화를 낼 대상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게 더 답답했다.
"그 목록에 있는 이름, 누굽니까."
"지금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왜요."
"조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건이요."
"당신이 좀 더 강해져야 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그 목록에 손도 대지 못합니다."
"손도 대지 못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글자 그대로입니다. 목록은 지금 당신에게 잠겨 있습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름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강은호는 숨을 몰아쉬었다.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그 목록 자체를 지우고 싶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시스템은 제 마음대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규칙을 따를 뿐입니다."
"당신을 만든 게 누굽니까."
노집사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주 미세하게, 눈썹이 움찔했다.
"그건... 저도 완전히 알지 못합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강은호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모른다고요? 당신이 시스템인데?"
"저는 관리자입니다. 설계자가 아닙니다."
"관리자와 설계자가 다르다는 겁니까."
"다릅니다. 저는 규칙을 집행합니다. 규칙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럼 규칙을 만든 게 누굽니까. 그 사람도 목록에 있습니까."
노집사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시선이 잠깐 허공에 머물렀다가 다시 강은호를 향했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훈련이요?"
"짐승 사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기를 다루는 법,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허공에 반투명한 그림이 떠올랐다. 사람의 자세를 그린 도해였다. 창을 쥔 손의 위치, 무릎의 각도, 시선의 방향이 세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선들이 은은하게 빛나며 관절 마디마디를 표시했다.
"내일부터 매일 밤, 이 시간에 훈련을 진행합니다. 낮에는 마을에서 생활하시고, 밤에는 여기서 몸을 다지십시오."
"잠은 언제 잡니까."
"이건 꿈속에서 진행됩니다. 당신의 육체는 쉬고 있습니다."
강은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몸은 안 힘든 겁니까?"
"정신적으로는 힘듭니다. 근육은 실제로 자라지 않습니다. 다만 반응 속도와 감각은 이 훈련을 통해 실제로 향상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이미 지난 사흘간 당신 몸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이 말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강은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저 목록에 있는 사람 이름, 절대 지우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노집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약속은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선택을 할 시점이 오면, 최소한 이유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완전한 약속은 아니었다. 그래도 강은호는 그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훈련은 가혹했다. 창을 쥐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노집사는 사소한 자세 하나까지 지적했다.
"손목이 꺾였습니다. 다시."
강은호는 창을 다시 들었다. 팔꿈치를 곧게 펴고, 손목을 일직선으로 맞췄다.
"무릎이 너무 높습니다. 다시."
무릎을 낮췄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시선이 흔들렸습니다. 다시."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노집사의 도해가 눈앞에서 겹쳐 보였다. 선 하나가 틀어질 때마다 도해의 붉은 표시가 깜빡였다.
"찌르는 순서가 틀렸습니다. 어깨, 팔꿈치, 손목. 순서대로."
"찌르는 각도가 낮습니다. 상대의 목이 아니라 가슴을 노리는 겁니다. 다시."
"호흡이 빠릅니다. 숨을 내쉬며 찌르십시오."
"다시"라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 꿈속에서 창을 만 번쯔 내지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손바닥에 감각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노집사는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한 번 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습니까."
"자세가 몸에 새겨질 때까지는 안 됩니다."
새벽, 강은호는 실제 육체로 눈을 떴다. 몸은 멀쩡했다. 그런데 팔이 미세하게 저릿했다. 마치 정말로 밤새 창을 휘두른 것 같았다.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관절이 조금 뻣뻣했다.
창밖으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벽닭이 울었다. 우물가에서 물 긷는 소리가 들렸다. 강은호는 몸을 일으켰다. 어제와 다른 감각이었다. 손끝이 조금 더 예민해진 느낌이었다. 창문 틀의 나뭇결이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날 낮, 강은호는 밭일을 도우며 마을 사람들과 조금씩 어울렸다. 흙을 뒤집는 삽질도, 씨앗을 심는 손놀림도 어제보다 수월했다. 옆에서 밭을 갈던 노인이 곁눈질로 그를 살폈다.
"자네, 손이 빠르네."
"그렇습니까? 그냥 하는 대로 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그의 팔뚝 상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늑대랑 싸운 거예요?"
"어, 뭐, 그렇게 됐네."
"멋있다!"
"세 마리랑 싸웠대!"
아이 하나가 옆의 아이에게 자랑하듯 떠들었다. 강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몸의 변화는 미세했고, 그마저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흐려졌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을 외곽, 강가 근처에서 개 짖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강은호는 침상에 누워 있다가 그 정적을 느꼈다. 뭔가 이상했다. 벌레 소리도, 바람 소리도,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방 안의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았다.
창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 마을 담장 너머에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사람의 형체였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너무 조용했고, 너무 빨랐다. 발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강은호는 숨을 죽였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림자는 잠깐 멈췄다. 마치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강은호는 몸을 창문에서 뒤로 물렸다. 심장이 귓가에서 뛰는 것처럼 크게 울렸다.
다시 창문 틈으로 눈을 가져갔을 때, 그림자는 이미 나무 사이로 사라진 뒤였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노집사의 훈련도 그날은 열리지 않았다. 진동도, 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어둠과 정적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강은호는 그 이야기를 박요한 신부에게 조심스럽게 전했다. 신부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손을 멈췄다.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림자를 봤다고요?"
"네. 아주 조용하게 움직였습니다. 발소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방향이었습니까."
"강가 쪽에서 나와서 숲 쪽으로 갔습니다."
박요한 신부는 잠시 말을 잃었다. 손에 쥐고 있던 그릇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이야기, 이 마을에서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왜요?"
신부는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표정에 그림자가 지나갔다. 눈빛이 순간 멀어진 곳을 보는 듯했다.
"돌샘마을에는... 오래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소문이었습니까."
신부는 그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창밖을 향한 시선을 오래 거두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강은호는 그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안개가 강가를 향해 낮게 깔려 있었다. 안개 속 어딘가에, 지난밤 보았던 그 조용한 그림자가 아직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