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죽었더니 암살자 되랍니다

4화

훈련은 사흘 밤낮으로 이어졌다. 잠도 온전히 잔 게 아니었다. 눈을 감으면 꿈속에서 창을 쥐고, 눈을 뜨면 몸이 그 창을 기억했다. 창 다루는 법에 이어, 노집사는 강은호에게 도구 제작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돌을 깨서 날을 세우는 법입니다." 허공에 도해가 떠올랐다. 선이 그어지고, 점이 찍히고, 각도가 표시되었다. 강은호는 그 선을 눈으로 따라가며 손을 움직였다. 손목의 각도. 힘을 넣는 순서. 돌과 돌이 부딪치는 순간의 방향. 꿈속에서 돌덩이를 수백 번 깼다. 손바닥에 상처가 나는 느낌까지 생생했다. 돌가루가 손톱 밑에 박히는 감각, 조각이 튀어 이마를 스치는 얼얼함, 그 모든 것이 실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실제 육체로는 아무 상처도 없었다. 손을 들어 살펴봐도 흔적 하나 없었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뜨면 손끝의 감각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도구를 다루는 방식이 몸에 배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해온 일처럼, 손가락이 저절로 각도를 잡았다. 낮에는 실습이었다. 강은호는 강가에서 돌을 주워다 두드렸다. 처음에는 손을 찧었다. 돌조각이 얼굴로 튀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아이고, 그렇게 하면 백날 해도 안 돼." 김 노인이 옆에서 혀를 찼다. 강은호가 만든 조잡한 돌칼을 들어보고는 픽 웃었다. "이건 무기가 아니라 애들 장난감이구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각도. 각도가 문제야. 자네는 힘만 잔뜩 넣지, 각도는 생각을 안 해." 김 노인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목을 가볍게 튕기듯 움직였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반으로 쪼개졌다. 단면이 유리처럼 매끈했다. "이렇게. 한 번에. 여러 번 두드리는 게 아니야." 강은호는 뻘쭘하게 웃었다. 다시 돌을 집어 들었다. 손목의 힘을 빼고, 각도를 맞췄다. 처음 몇 번은 여전히 어긋났다. 돌은 엉뚱한 방향으로 쪼개지거나, 아예 부서지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나아졌다. 강가에 앉아 돌을 고르는 시간도 늘었다. 어떤 돌은 겉만 봐도 안이 무른지 단단한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손에 쥐었을 때의 무게감, 표면의 결, 그런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제법 날카로운 돌칼 하나를 완성했다. 손잡이 부분은 둥글게 다듬었고, 날 끝은 얇게 갈아 세웠다. 김 노인이 그것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손끝으로 날을 훑고, 손잡이의 균형을 가늠하고, 마지막엔 허공에 한 번 휘둘러 보았다. "어, 이건 쓸만하네." 작은 인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게 뿌듯했다. 강은호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펴고 있었다. 강에서 물고기 한 마리 잡아본 적 없던 손이, 이제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고 있었다. 이게 정말 자기 손인가 싶었다. "내일부터는 화살촉이다. 이건 이거보다 더 정교해야 해." 김 노인이 던진 말에 강은호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날 밤, 노집사가 새로운 것을 꺼냈다. "오늘은 감각 훈련입니다." "감각이요?" "기척을 느끼는 법입니다. 어제 마을 밖에서 본 그림자, 기억하십니까." 강은호는 순간 몸이 굳었다.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것이 지나갔다. "당신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까." "저는 당신의 감각을 공유합니다. 당신이 본 것은 저도 봅니다." "그게 뭐였습니까." 노집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게 늘어졌다. 강은호는 대답을 기다리며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기척은... 당신과 비슷한 종류였습니다." "저와 비슷하다니요." "당신처럼, 원래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던 존재라는 뜻입니다." 강은호는 숨을 멈췄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았다.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겁니까."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흔적이 있었습니다." "흔적이라니, 구체적으로 뭡니까." "냄새와 결이 다릅니다. 이 세계의 존재들은 저마다 고유한 결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결이 없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강은호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도 그런 겁니까? 결이 없는 존재?" "당신은 결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그 그림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노집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훈련 도해를 다시 띄웠다. "지금은 이걸 익히는 게 우선입니다. 기척을 느끼지 못하면, 다음에 그런 존재와 마주쳤을 때 대응조차 못 합니다." 훈련은 밤새 이어졌다.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 냄새, 진동을 구별하는 연습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 앉아 있으면 그저 귀가 먹먹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반복할수록 미세한 차이가 잡히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와 발소리의 차이. 짐승의 숨결과 사람의 숨결의 차이.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와 옷깃이 스치는 소리의 차이. 처음엔 전부 하나로 뭉쳐 들리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갈라져 나왔다. 마치 뒤엉킨 실타래에서 한 가닥씩 뽑아내는 기분이었다. "멀리서 짐승이 지나갔습니다. 방금." 강은호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여우입니다. 어느 방향인지도 느껴집니까." 강은호는 잠시 집중했다. 소리의 결을 따라갔다. "저쪽... 동쪽입니다." "정확합니다." 작은 성취였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뿌듯했다. 자신이 이 낯선 세계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새벽, 눈을 떴을 때 강은호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몸이 조금씩, 정말로 달라지고 있었다. 손끝의 감각, 발밑의 진동을 읽는 법, 냄새를 구별하는 능력. 이 모든 게 원래 자신에게 없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있었다. 거울이 없어 자기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을 들어 살펴보면, 예전보다 손끝이 거칠어져 있었다. 굳은살이 잡히고 있었다. 도구를 다루는 손, 창을 쥐는 손. 강가에서 물고기 한 번 만져본 적 없던 손이, 이제는 그런 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 오후, 강은호는 박요한 신부의 예배당 근처를 지나다가 낮은 대화 소리를 들었다. 신부와 마을 원로 한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은호는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목소리의 낮은 떨림이 발을 붙잡았다. 예배당 벽 뒤에 몸을 숨겼다. 벽은 차가운 돌로 쌓여 있었다. 등에 닿는 그 서늘함이 오히려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었다. "...정말 그때처럼 될까요." 원로의 목소리였다. 낮고 떨렸다. "모릅니다. 하지만 대비는 해둬야 합니다." 박요한 신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 밑에 뭔가 무거운 것이 깔려 있었다. 강은호는 걸음을 멈췄다. 엿듣는 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그 사람, 강에서 온 그 청년 말입니다. 혹시 그것과 관련이..." 강은호의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자기 이야기였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낌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신부님, 십 년 전 그 일을 기억하십니까." 순간 대화가 멈췄다. 침묵이 흘렀다. 벽 너머로도 그 침묵의 무게가 전해졌다. 박요한 신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억합니다. 잊을 수가 없죠." "그때도 강에서 낯선 이가 나타났고, 마을 사람 셋이 사라졌습니다." 강은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벽에 짚은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걱정입니다." 원로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기도할 뿐입니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하나는 예배당 안쪽으로, 하나는 마을 쪽으로. 강은호는 벽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손끝이 차가워져 있었다. 심장은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십 년 전, 낯선 이가 나타나고 마을 사람 셋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나타났다. 우연일까. 강은호는 마을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초가지붕들이 평화롭게 늘어서 있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아낙들이 우물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 뭔가 묻혀 있었다. 십 년 전에 사라진 세 사람의 흔적이. 강은호는 그날 밤, 노집사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낮아졌다. "십 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노집사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아주 미묘한 변화였지만, 강은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저는 당신이 이 세계에 도착한 순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의 일은 알지 못합니다." "그럼 저 같은 사람이 이전에도 있었다는 뜻이겠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 사람들, 지금 어디 있는 겁니까." 노집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돌렸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강은호는 이를 악물었다.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당신, 뭔가 알고 있으면서 말 안 하는 거죠." "저는 제가 아는 것만 말합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의 범위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좁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저는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가 없다고 해서 거짓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죠." 노집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정적 속에서 강은호는 자신의 숨소리만 들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또 다른 회피인지 알 수 없었다. 강은호는 답답함에 가슴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가슴을 눌러보았지만, 그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하나만 대답해 주십시오. 그 그림자, 그리고 십 년 전 사라진 사람들. 연관이 있습니까." "모릅니다. 정말로 모릅니다." 노집사의 목소리에는 거짓의 낌새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더 불안했다. 모른다는 것 자체가, 뭔가 거대한 것이 그들 뒤에 숨어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강은호는 마을을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초가지붕, 평범해 보이는 주민들. 우물가에서 웃는 아낙들,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밭을 가는 농부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 어딘가에 십 년 전의 비밀이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강은호는 우물가를 지날 때마다, 밭두렁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눈빛을 살폈다.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밤이 되자, 강은호는 다시 훈련장으로 향했다. 노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해가 허공에 떠올랐다. 하지만 강은호의 눈은 그 도해가 아니라, 어둠 속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오늘은 어떤 훈련입니까." "기척을 좀 더 멀리 느끼는 연습입니다." 강은호는 눈을 감았다. 마을의 소리를 하나씩 구별하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 아이 우는 소리, 바람에 문이 덜컹이는 소리. 그런데 그 사이에, 아주 미세하게, 낯선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숨을 죽였다. 그것은 결이 없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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