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며칠이 지나면서 강은호의 훈련은 점점 실전에 가까워졌다. 노집사는 이제 창뿐 아니라 짧은 칼, 밧줄, 그리고 은신 기술까지 가르치기 시작했다.
"오늘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동하는 법입니다."
"이게 왜 필요합니까. 저는 사냥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사냥감이 항상 짐승일 거라고 누가 말했습니까."
강은호는 입을 다물었다. 저 흐릿한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노집사는 발밑의 젖은 흙을 가리켰다.
"발자국은 무게로 남습니다. 발끝을 먼저 딛고, 뒤에 뒤꿈치를 천천히 내리십시오."
강은호는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걸음마다 흙이 조금씩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발자국이 남는 듯 마는 듯했다.
"다시."
"방금 그거 아닙니까."
"다시 하십시오."
같은 동작을 열 번쯤 되풀이한 뒤에야 노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는 표정이 거의 없었지만, 강은호는 이제 그것이 인정의 표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낮, 강은호는 강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물살에 씻겨 드러난 바위 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처음에는 물고기 비늘인가 싶었다. 강물은 낮에는 유리처럼 맑아서, 바닥의 작은 조약돌 하나까지 다 비쳐 보였다. 그런데 그 반짝임은 비늘의 것과는 달랐다. 흔들림 없이, 한 자리에서 계속 빛나고 있었다.
강은호는 그물을 내려놓고 물속으로 손을 뻗었다.
차가웠다. 강물은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손끝이 바위 틈을 더듬었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걸렸다.
꺼내 보았다.
작은 금속 조각이었다. 동전 같기도 했고, 열쇠의 일부 같기도 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니 크기는 엄지손톱만 했다. 가벼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저릿했다.
표면에는 낯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점. 선. 물결. 탑.
강은호는 숨을 멈췄다. 그 문양들, 처음 노집사가 보여준 창에 떠 있던 것과 똑같았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문양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안의 온기에 반응하듯, 아주 옅게 빛을 냈다가 사라졌다.
"이게 뭐지."
중얼거리는 순간, 머릿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웅—
낮인데도 노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밤이 아닌 시간에 나타난 건 처음이었다. 강은호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 갈대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거, 어디서 났습니까."
노집사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항상 한 박자 늦게, 여유를 두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강바닥에서요. 왜, 뭔데요."
"당장 그걸 내려놓으십시오."
강은호는 어리둥절했다. 손안의 조각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허공을 향해 물었다.
"왜요?"
"그건 제가 아는 물건입니다. 다만...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노집사는 처음으로 명확한 동요를 보였다. 항상 냉정하던 표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목소리에도 미세한 떨림이 섞였다. 강은호는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며칠간의 훈련이 그에게 남긴 것 중 하나였다. 상대의 숨소리 하나까지 읽어내는 습관.
"그 문양은 제가 태어난 근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십 년 전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이 마을의 소문. 아마 전부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강은호는 손에 든 금속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조각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그럼 이걸로 뭘 알 수 있는 겁니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합니다."
노집사가 강은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시선에는 평소의 거리감이 없었다. 처음으로, 노집사가 진짜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이 이걸 주웠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알려졌을 겁니다."
강은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누구한테요."
"이 조각의 근원을 쫓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저도 아직 완전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조각의 위치를 항상 감지합니다."
"그럼 저는 지금..."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은호는 숨이 턱 막혔다. 방금까지 그저 강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평범한 오후였다. 손등에 남은 물비린내, 발밑에서 흔들리던 잔돌, 멀리서 들려오던 아이들 웃음소리. 그런데 순식간에 상황이 뒤집혔다. 세상이 갑자기 얇은 유리판처럼 느껴졌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숨기십시오. 그리고 오늘 밤 훈련은 취소합니다. 대신 실전 대응을 준비해야 합니다."
노집사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실전 대응이라니, 뭘 준비해야 하는 겁니까."
"당신이 가진 모든 것. 창, 돌칼, 몸. 그리고 무엇보다, 겁먹지 않는 마음."
강은호는 금속 조각을 옷 속 깊이 밀어 넣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옷섶 안쪽에서 조각이 살갗에 닿았다. 차가웠던 것이 어느새 체온을 닮아가고 있었다.
"노집사님."
"말하십시오."
"이게, 그 사라진 사람들과 진짜 관련이 있는 겁니까."
노집사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강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갈대숲이 한 번 크게 몸을 흔들었다가 잠잠해졌다.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이런 조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강은호는 그 말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처음이 아니라는 말. 그럼 이전에도 누군가 이런 것을 주웠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을까.
물음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노집사의 형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을 조심하십시오. 저는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노집사는 사라졌다. 강가에는 다시 강은호 혼자였다. 강물 소리, 갈대 소리, 그리고 옷 속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무게만 남았다.
그날 저녁, 마을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저녁밥 짓는 냄새가 골목마다 퍼졌다. 된장 끓는 냄새, 나무 태우는 냄새, 누군가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생선 굽는 냄새. 박요한 신부의 종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강은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평범한 풍경 속에 숨겨진 위협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골목을 지나다가 낯익은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은호 총각, 오늘은 왜 그렇게 굳은 얼굴이야."
"아, 아닙니다. 그냥 좀 피곤해서요."
강은호는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며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아주머니는 이미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강은호는 몇 번이나 창밖을 흘깃거렸다. 밥그릇을 든 손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옷 속의 조각이 자꾸 신경 쓰였다. 마치 그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옷 위로 은근한 무게를 전해왔다.
밤이 깊어지자, 강은호는 침상에 누워 창밖을 주시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의 나뭇결을 눈으로 따라갔다. 옆방에서 나는 낮은 숨소리, 저 멀리서 개 한 마리가 짧게 짖는 소리, 바람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소리.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소리들이 오늘은 하나하나 또렷하게 들려왔다.
강은호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가, 다시 똑바로 누웠다. 옷 속 조각의 위치를 손으로 한 번 확인했다.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달빛이 창호지를 통해 방 안에 옅게 스며들었다.
그때, 마을 어귀에서 개들이 일제히 짖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른 울음이었다. 경계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소리였다.
강은호는 벌떡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마을 어귀 나무 사이에서 여러 개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 셋 이상이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숲 사이로 스며드는 그 형체들은, 걸음에 소리가 없었다. 나뭇가지 하나 부러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그저 어둠이 조금씩 짙어지는 것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머릿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웅—
노집사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강은호. 지금 즉시 무기를 챙기십시오."
"저것들, 뭡니까."
"확인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저들이 지금 이 마을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은호는 침상 옆에 놓아둔 돌칼을 움켜쥐었다. 손이 떨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속 깊은 곳에서는 며칠간의 훈련이 만들어낸 낮은 침착함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발끝을 먼저 딛고, 뒤꿈치를 천천히. 소리 없이 방을 가로질렀다.
문 앞에 서서, 강은호는 다시 창밖을 확인했다. 그림자들은 여전히 나무 사이에 있었다. 아직 담장을 넘지는 않았다.
"저게 지난번에 왔던 것들과 같은 겁니까."
"모릅니다. 다만 지난번보다 숫자가 많고, 움직임이 훨씬 정교합니다."
"정교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사냥감을 아는 사냥꾼처럼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강은호는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사냥감. 자신이 그 단어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실감했다.
"당신은 이제부터 선택해야 합니다."
노집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맞설 것인지."
강은호는 옷 속의 금속 조각에 다시 손을 얹었다. 차갑던 것이 이제는 뜨거운 것처럼 느껴졌다.
창밖의 그림자들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마을 담장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하나둘 끊기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짖음이 끊길 때마다 마을은 조금씩 더 조용해졌다. 그 침묵은 평화가 아니었다. 침묵은 언제나,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강은호는 문고리를 잡은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손끝의 냉기가 손목까지 번져 올라왔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손끝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그 밤, 돌샘마을의 평화는 처음으로 진짜 위협 앞에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