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언니, 3년 뒤 죽는대요

1화

지하 결계실의 공기는 늘 서늘했다. 돌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온도가 한 칸씩 떨어졌다. 이서린은 그 냉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와 무릎 뒤까지 스며드는 걸 느꼈다. 습기 먹은 돌벽에서는 곰팡내가 진하게 올라왔다. 여름 장마철에 벗어둔 신발 안쪽 같은, 그런 냄새였다. 계단 마지막 칸에 서서 이서린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안쪽, 마법진이 새겨진 석판 위에 윤태석이 앉아 있었다. 청연학원의 결계 담당 교사.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학생들 앞에 섰던 사람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칠판 앞에서 같은 톤으로 같은 설명을 반복하던, 특별할 것 없는 인물. 오늘은 그 표정이 이상했다. "쟤 왜 저래." 한도연이 뒤에서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짧은 진남색 머리카락이 지하 특유의 습기에 축 처져 있었다. 초록색 눈이 아래를 향해 가늘어졌다. 도연은 원래도 표정이 잘 안 드러나는 편인데, 지금은 그 무표정 위로 미세한 경계심이 얹혀 있었다. "수업 준비하는 거 아니야?" 이서린이 되물었다. 목소리가 자기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저게 준비야?" 도연이 손끝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윤태석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처음엔 어깨였다. 그다음엔 목. 그리고 턱. 마지막으로 눈동자까지, 진동이 위로 위로 번져갔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깨어나 몸의 각 부위를 하나씩 점거해가는 것 같았다. 마법진 안쪽 문양이 붉게 달아올랐다. 위이이잉. 낮은 진동음이 벽을 타고 올라왔다. 이서린은 그 소리가 이빨 사이를 파고드는 걸 느꼈다. 어금니가 저릿했다. "저거 결계 발동 소리 아니야." 도연이 낮게 말했다. "그럼 뭔데." 이서린이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서린의 코끝이 씰룩였다. 피 냄새. 미량이지만 분명했다. 사람의 피가 아니었다. 더 오래된, 더 무거운 무언가였다. 오래 방치된 지하실, 그 안에서 몇 년이나 굳어 있던 피딱지가 다시 데워질 때 나는 냄새 같았다. '저건 사람 냄새가 아니야.'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발뒤꿈치가 계단 모서리에 걸렸다. 도연의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내려가지 마." 짧은 명령이었다. "안 내려가려던 참이었어." 이서린이 낮게 대꾸했다. 도연은 대답 없이 손을 놓지 않았다. 아래쪽에서 윤태석의 입술이 벌어졌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입 안쪽이 어두웠다. 너무 어두웠다. 사람의 구강 구조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이였다. "저거 봐." 도연이 숨을 삼켰다. "입 안이 왜 저래." 이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목구멍이 이미 말라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쾅! 마법진이 폭발하듯 빛을 뿜었다. 붉은 섬광이 지하 통로 전체를 삼켰다. 이서린은 팔로 눈을 가렸다. 눈꺼풀 안쪽까지 빛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손등 틈으로 새어드는 빛 사이에서, 윤태석의 몸이 허공으로 들썩였다. 퍽. 무언가 부딪는 소리가 났다. 몸이 석판 위로 떨어지는 소리인지, 다른 무언가가 몸 안에서 터지는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고객님, 청연학원 긴급 봉쇄 프로토콜이 발동되었습니다.】 【모든 출입구가 물리적·마법적으로 차단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알림창이 시야 한복판에 뜬 것은 그 직후였다. 글씨체는 여느 안내문처럼 단정했다. 마치 학원 매점에서 할인 행사를 알리는 문구 같은 톤이었다. "뭐야, 이건." 도연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그녀도 같은 문구를 보고 있었다. 학원 전체 방송이었다. 이서린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봉쇄. 그 단어가 갈비뼈 안쪽을 조였다. 손끝의 감각이 점점 무뎌졌다. 【남은 대피 가능 시간: 계산 불가.】 두 번째 알림이 이어 떴다. 계산 불가라는 문구가 눈앞에서 두 번 세 번 깜빡였다. "계산 불가가 뭐야." 이서린이 헛웃음처럼 내뱉었다. "모른다는 소리지." 도연이 짧게 잘랐다. 위층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에서 터져 나왔다. 유리 깨지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위로 가야 해." 이서린이 몸을 돌렸다.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발밑이 흔들렸다. 쿵. 지하 전체가 진동했다. 벽을 짚은 손바닥에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쿵. 쿵. 두 번째, 세 번째 진동이 연달아 밀려왔다. 벽에 붙은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이서린의 어깨 위로도 돌가루 몇 점이 떨어졌다. 차가웠다. 도연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손톱이 살갗에 파고들 정도로 세게. "뛰어." 둘은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랐다. 종아리 근육이 당장 비명을 질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걱, 하는 것도 아니고 우드득, 하는 것도 아닌, 뼈와 돌이 동시에 부서지는 듯한 소리였다. 이서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다리가 멈출 것 같았다. 계단 끝에 도달했을 때, 복도는 이미 혼란에 잠겨 있었다. 학생들이 서로를 밀치며 출입구 쪽으로 몰려갔다. 누군가의 가방이 바닥에 떨어져 짓밟혔다. 책이 흩어지고 종이가 발밑에서 구겨졌다. 마법사 몇몇이 지팡이를 들고 결계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미동조차 없었다. "안 열려! 씨발, 안 열린다고!" 누군가 소리쳤다. 지팡이 끝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다른 쪽에서는 한 학생이 벽에 등을 붙이고 주저앉아 있었다. 눈이 풀려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어깨를 흔들며 뭐라고 소리쳤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서린은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다. 마치 유리 너머로 세상을 보는 듯한 왜곡. 나무의 윤곽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구름의 형태가 한 자리에서 늘어지고 줄어들었다. 학원 전체가 무언가에 갇혔다는 실감이 그제야 몸으로 전해졌다. '이건 단순한 오류가 아니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그 떨림이 팔목까지, 다시 어깨까지 올라왔다. 도연이 그녀 옆에 붙어 섰다. 크림빛 피부에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숨소리가 평소보다 짧고 빨랐다. "저 밑에, 뭔가 있었어." 도연이 낮게 말했다. "윤태석 선생님 몸에서." "봤어. 나도." 이서린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게 뭔지는 알아?" 도연이 물었다. 이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지하로 통하는 계단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심장 박동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했다. 깜빡. 깜빡. 멈추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학생들도 하나둘 그 빛을 발견하고 있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대신 낮은 침묵이 복도를 채웠다. 지팡이를 든 마법사 하나가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다 멈춰 섰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굳어 있었다. "저기 누구 있어?" 누군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이서린의 갈비뼈가 조여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도연의 손이 다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번엔 조용히. "움직이지 마." 도연이 속삭였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돌계단을 밟는 소리였다. 무겁고, 느리고, 규칙적이었다. 사람의 걸음과는 어딘가 다른 박자였다. 무언가가,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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