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언니, 3년 뒤 죽는대요

2화

발소리는 규칙적이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느긋했다.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 여유가 오히려 더 불길했다. 이서린은 등을 벽에 붙였다. 차가운 콘크리트가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복도의 학생들이 하나둘 그 발소리를 알아채고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는 이미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벽을 붙잡은 채 뒷걸음질을 치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혀 함께 쓰러졌다. "뭐야, 저거…" 낮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이서린은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계단 어둠 속에서 실루엣이 드러났다. 윤태석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걸음걸이가 달랐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자세도, 눈빛도, 전부 달랐다. 목덜미에서 검은 핏줄이 뿜어져 나온 듯 뻗어 있었고, 눈동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색으로 어지럽게 떠올랐다가 다시 잠겼다. 붉은색, 초록색, 그리고 아무 색도 아닌 무언가.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인간의 미소가 아니었다. 입꼬리만 억지로 잡아당긴 듯한, 근육의 배열이 어색한 웃음이었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이서린의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갈증이 아니었다. 공포였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서, 억눌러온 무언가가 함께 꿈틀거렸다. 윤태석이었던 것이 입을 열었다. "작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세 겹의 음성이 동시에 겹쳐 흘러나왔다. 낮은음과 높은음,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 있는 갈라진 음이 서로 어긋난 채 울렸다. "이렇게, 작아." 그 말과 동시에 손끝에서 붉은 빛이 뻗어 나왔다. 가장 가까이 있던 학생을 향해서였다. 빛은 창처럼 좁고 날카로웠다. 도연이 먼저 반응했다. "물러나!" 그녀의 손등에 검은 문양이 떠올랐다. 흑문. 지면에서 그림자가 솟구쳐 학생을 감싸며 붉은 빛을 대신 받아냈다. 퍼억! 그림자가 산산이 흩어졌다. 검은 조각들이 허공에서 재처럼 부서져 내렸다. 도연이 무릎을 꿇으며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손등에서 새어 나온 문양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한 방에 뭉개졌어." 그녀의 목소리에 떨림이 섞였다. 이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이서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몸 안 깊은 곳에서 무언가 눈을 뜨는 감각이 들었다. 배꼽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고객님, '악마의 추적'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었습니다.】 【발동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나, 강제 활성화를 진행합니다.】 알림창이 시야를 갈랐다. 이서린은 그것을 읽을 틈도 없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졌다.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감각이 확장됐다. 복도, 학원 전체, 담장 밖의 거리, 강 건너 마을까지. 수십, 수백 개의 심장 박동이 동시에 그녀 안으로 밀려들었다. 사람들의 위치, 체온, 숨소리,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지도처럼 그려졌다. 두근. 두근두근. 두근. 서로 다른 박동들이 겹쳐지며 하나의 거대한 소음이 되었다. 이서린의 고막 안쪽에서 그 모든 소리가 동시에 재생되는 듯했다. '너무 많아.'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귀밑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보의 홍수가 뇌를 짓눌렀다. 학원 3층 화장실에 숨은 학생의 딸꾹질, 운동장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흐느낌, 담장 너머 골목을 뛰어가는 누군가의 발소리까지, 전부 한꺼번에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감각은 계속 뻗어나갔다. 결계의 벽을 넘어, 더 멀리, 더 깊이. 관자놀이에서 뭔가 툭, 터지는 감각이 들었다. 코끝에서 미끈한 것이 흘렀다. 코피였다. 순간 어떤 존재를 느꼈다. 먼 곳, 이 도시 어딘가에서, 그녀의 존재를 정확히 마주 보고 있는 듯한 시선. 인간도 흡혈귀도 아닌,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눈이 없었다. 그런데도 정확히 이서린을 향해 고개를 돌린 듯한 감각이 있었다. '뭐야, 저건.' 서릿빛 같은 감각이 그녀의 등줄기를 스치고 사라졌다. 손끝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얼어붙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 목이 타올랐다. 피 냄새가 밀려들었다. 학생들의 피, 학원 곳곳에 흐르는 상처들, 그 모든 냄새가 한꺼번에 이서린의 코를 찔렀다. 도연의 무릎에서 흐르는 작은 상처, 저 멀리 쓰러진 학생의 팔에서 배어 나오는 핏방울까지. 각각의 냄새가 전부 다른 온도와 농도로 구분되어 밀려들었다. 이성이 흐트러졌다. 손끝이 저절로 가장 가까운 학생 쪽으로 뻗었다. 손가락 마디가 우두둑, 늘어나는 감각이 들었다. 송곳니 끝이 잇몸을 긁었다. "서린아." 도연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손톱이 팔뚝에 박힐 정도로 세게. "안 돼." 짧은 두 마디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이서린을 붙잡아 세웠다. 손끝에서 뻗어나가던 힘이 멈칫, 멈췄다. 감각이 급격히 수축했다. 확장됐던 세계가 한순간에 좁아졌다. 지도처럼 펼쳐졌던 심장 박동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복도의 좁은 공간만이 남았다. 이서린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닿는 타일이 서늘했다. 숨이 가빴다. 갈비뼈가 눌리는 듯 아팠다. 폐 안쪽이 텅 빈 것처럼 헐떡였다. 【고객님, 능력 사용 대가가 청구됩니다.】 【비강혈증 지수: 12% → 47%.】 【경고: 지수 100% 도달 시 자아 통제 불가.】 숫자를 본 순간, 손끝이 떨렸다. 47퍼센트. 하룻밤 사이 이 정도라니. '이게 다야?' 헛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튀어나온, 억지스럽고 마른 웃음이었다. 도연이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얼굴이 창백했다. "방금, 뭐 한 거야." 묻는 말투가 아니었다. 다그치는 말투였다. 이서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무언가 다른 것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윤태석이었던 것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이 부러진 인형처럼 각도가 이상하게 꺾였다. 세 겹의 목소리가 낮게 웅웅거렸다. "찾았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서린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만이 확실했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얼음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주변의 학생들이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누군가는 이미 복도 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벽에 부딪치는 소리, 넘어지는 소리, 비명을 억누른 낮은 신음이 뒤따랐다. 도연은 이서린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 "일어나. 여기 있으면 안 돼." "몸이…" 이서린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학원 전체에 학원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객님, 모든 학생 여러분께 안내드립니다. 즉시 가장 가까운 안전실로 대피해 주십시오.】 무미건조한 안내 방송이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태연한 어조였다. 그 뒤로,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드득. 복도 천장의 조명이 하나둘 깨져나갔다. 유리 파편이 후두두 쏟아졌다. 학생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서걱- 윤태석이었던 것의 손끝에서 무언가 다시 자라나고 있었다. 검은 것이었다. 손가락 끝에서 뻗어 나온 그것은 처음엔 실처럼 얇았다가, 순식간에 손목을 감싸고 팔뚝을 따라 위로 뻗어 올라갔다. 마치 나무의 뿌리가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검은 줄기가 그의 팔을 뒤덮어갔다. 이서린은 그것을 보며 숨을 삼켰다. '저게 대체….' 목구멍이 다시 타올랐다. 도연의 손이 여전히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 손의 온도만이 지금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다. 윤태석이었던 것의 팔이, 검은 줄기와 함께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그 끝이 이서린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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