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안전실 벽은 차가웠다.
채린은 그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어깨뼈가 콘크리트에 눌려 저릿했다. 안경 너머로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꺼풀이 몇 번이나 깜빡였다가 멈췄다.
천장의 비상등이 깜빡였다.
지지직.
전선이 타는 냄새가 옅게 났다. 그 아래 곰팡내와 먼지 냄새가 뒤섞였다. 방 안에 몰려 있던 학생들의 숨소리가 서로 겹쳤다. 누군가는 이를 딱딱 부딪히고 있었다.
채린이 입을 열었다.
"제 어머니 이름은 해모예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대양의 어머니. 오래된 신들 중 하나예요."
도연이 미간을 좁혔다. 눈썹 사이 주름이 깊어졌다.
"신이라니."
"고대 전쟁 때 죽었다고 알려진 삼모신 중 하나요. 천모, 지모, 해모."
채린의 손가락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아버지는 몰랐어요. 자기 몸에 봉인된 게 뭔지도. 저도 최근에야 알았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거든요."
"일주일 전부터."
학원장이 조용히 되짚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네."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처음엔 그냥 꿈인 줄 알았어요. 자다가 깨면 물속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숨이 안 쉬어졌어요. 그런데 점점, 목소리가 선명해졌어요.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오늘, 결계실에서 봉인이 풀린 거예요."
이서린의 심장이 다시 조여왔다.
쿵.
심장이 갈비뼈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세 갈래."
학원장이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천모, 지모, 해모. 셋 다 지금 윤태석의 몸에 있다는 거야?"
채린은 대답 대신 눈을 내리깔았다. 안경알에 비상등 불빛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확실해요. 어머니는 지금 그 안에서, 다른 둘한테 억압당하고 있어요."
"억압?"
도연이 물었다. 팔짱을 낀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혼자는 안 됐어요. 저를 위해서 봉인을 지켰던 것 같은데, 천모와 지모가 그걸 강제로 열었어요. 지금은 셋이 동시에 아버지 몸을 나눠 쓰고 있어요."
채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이 팔을 타고 올라와 어깨까지 번졌다.
"제가 왜 정체를 숨겨왔는지 아세요?"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버지가 은폐 주문을 걸어놨어요. 학원 안에서, 저를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보이게. 어머니의 존재가 알려지면 제가 위험해질 거라고요. 십몇 년 동안 그렇게 살았어요."
방 안의 학생들이 그녀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채린은 그 시선을 견디며 계속 말을 이었다. 등이 벽에 더 세게 눌렸다.
"그런데 이제 소용없어졌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신호를 보낸다는 걸, 다른 둘이 눈치챈 것 같아요."
학원장이 팔을 들어 방 안 전체를 조용히 시켰다. 손바닥 하나로 술렁이던 공기가 가라앉았다.
"지금 상황을 정리하지."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관자놀이의 핏줄이 미세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윤태석의 몸에 세 신성이 빙의됐다. 그중 하나는 자기 딸을 통해 신호를 보내려 했다. 나머지 둘은 그걸 억압하고 있고."
"맞아요."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목적이 뭐야?"
이서린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입술이 말라 있었다.
채린은 잠시 망설였다.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고대 삼모신 재현 의식. 세 신성이 완전히 부활하려면,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제물로 필요해요."
그녀의 시선이 도연을 향했다.
느리게.
도연의 얼굴이 굳었다. 눈동자에 비상등 불빛이 반사되어 흔들렸다.
"왜 나를 봐."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어머니가 신호로 보낸 말 중에, 이름이 있었어요."
채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숨을 한 번 크게 삼켰다.
"한도연. 3년 안에 그 이름을 가진 죽음술사가 제물로 지목될 거라고."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학생들의 숨소리마저 멈춘 듯했다. 비상등만 지지직거리며 깜빡였다.
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관절이 하얗게 변했다.
이서린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땀이 손바닥을 적셨지만,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거짓말이지."
도연이 낮게 물었다. 채린을 향한 것이었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저도 이게 사실이 아니길 바라요."
채린이 눈을 마주치며 답했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낸 신호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어요."
"그럼 넌 왜 우리한테 이걸 말해."
도연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이서린의 팔을 잡은 손이 더 세게 조여왔다.
"네가 우리 편이라는 증거가 뭔데. 네 엄마가 저 안에 있고, 넌 그 엄마랑 연락하고 있었잖아."
채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증거는 없어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믿든 안 믿든, 그건 두 사람 선택이에요."
이서린은 채린의 표정을 살폈다. 거짓을 말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얼굴도 아니었다. 안경 너머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강철문 밖에서 다시 굉음이 들려왔다.
쾅! 쾅!
연속된 진동이었다. 벽이 흔들렸다.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학생들 몇 명이 짧게 비명을 삼켰다.
학원장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을 긁는 소리를 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마무리하지."
그녀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눈빛에 이미 다음 판단이 서 있었다.
"지금은 여기서 나가야 해."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명령을 내렸다. 발소리가 짧고 단호했다.
"학생들은 후방 비상로로. 서린, 도연, 채린은 나를 따라와."
세 사람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 불신이 여전히 눈빛 사이에 남아 있었다. 이서린은 도연의 손을 놓지 않았다. 도연은 채린을 향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채린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철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났다.
철컥.
무거운 문이 옆으로 밀려났다. 경첩이 갈리는 소리가 귀를 긁었다.
복도 저편에서 윤태석이었던 것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발걸음이 일정하지 않았다. 왼쪽 다리를 끌듯이 디디다가, 갑자기 오른쪽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몸 안에서 세 개의 무언가가 동시에 움직이려는 것처럼.
복도의 형광등이 그 형체 위로 지나갈 때마다, 얼굴의 윤곽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가까워질수록, 그 변화가 더 선명해졌다.
이번엔 세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열려 있었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