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잔월에 잠든 백 년의 검

2화

쇠사슬 소리가 옥사의 돌벽에 부딪혀 낮게 울렸다. 챙, 챙― 발목을 죄어오는 쇳덩이의 무게가 낯설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것을 몸에 지니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강도진은 무릎을 꿇린 채 대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이마에 닿았다. 그 냉기가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어젯밤의 기억이 흐릿하게 이어졌다 끊겼다. 후원 별당인 줄 알았던 방, 병사들의 함성, 그리고 자신을 등지고 걸어간 서채림의 뒷모습. 그 사이사이 빈틈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채워지지 않는 어둠이 있었다. "강도진." 황제 이광조의 목소리가 대전 위에서 떨어졌다. 용상에 앉은 그의 눈빛에는 이미 결론이 서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강도진은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일곱째 공주 소원의 처소에서 발견되었다지. 그것도 야심한 시각에." 강도진은 고개를 들었다. 목이 타는 듯했다. 입안이 바짝 말라 혀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신은… 그런 곳에 간 적이 없습니다. 서채림의 서신을 받고 후원 별당으로…" 말을 끝맺기도 전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증거가 있는가?" 이헌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마치 이 판이 오래전부터 짜여 있었던 것처럼,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조급함이 없었다. "공주의 시녀들이 모두 목격했습니다. 강도진이 술에 취해 침소에 난입했다고. 그리고 이것이," 이헌이 손짓하자 병사 하나가 나서서 목갑을 들어 올렸다. 잔월옥이 담긴 목갑이었다. 뚜껑이 열리자, 옥빛이 대전의 침침한 공기 속에서도 서늘하게 빛났다. "공주의 처소에서 발견된 물건입니다. 서가에서 헌상 받은 것이라 들었으나, 원래는 강씨 가문의 전승 보물이라지요." 강도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것이 어떻게 저 자리에 있단 말인가. 그의 손이 저절로 품속을 더듬었다. 텅 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손끝이 옷깃 안쪽을 몇 번이나 훑고 지나갔지만, 익숙했던 무게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채림…"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대전 문이 열리며 서채림이 걸어 들어왔다. 흰 상복을 입은 그녀는 강도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의 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다만 그 발끝이 바닥을 딛는 소리만이 대전 안의 정적을 갈랐다. "서채림, 그대는 이 자와 혼약을 맺은 사이라 들었다. 할 말이 있는가?" 황제의 물음에 서채림이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어깨가 순간 흠칫했으나, 곧 무언가를 억누르듯 굳어졌다. "…폐하. 저는 강 공자의 진면목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품에서 비단으로 싼 종이를 꺼냈다. 강도진과의 혼서였다. 그 순간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곧 힘을 주었다. 손끝의 핏기가 하얗게 빠져나갔다. 서걱― 혼서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전 안이 조용해졌다. 강도진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귓속이 멍하게 울렸다. 방금 들린 그 소리가 정말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였는지, 아니면 자신의 가슴 어딘가가 갈라지는 소리였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저는 이 자와의 혼약을 파기하겠습니다. 이런 자와 백년을 약속할 수 없습니다." "…채림아." 강도진의 목소리는 이제 신음에 가까웠다. 서채림은 끝까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황제의 발치, 그 아래 놓인 대전의 문양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강도진의 죄는 명백합니다. 능욕죄에, 황실의 보물을 사칭해 반출한 죄까지 더해지니, 사형에 처함이 마땅하다 사료됩니다." 서경택이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음성은 낭랑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냉정한 계산뿐이었다. "게다가 이는 강철웅 대장군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진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 힘을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대전 전체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황제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순간이었으나, 대전 위 그 자리에 앉은 자에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때, 대전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소리 내어 알리지 않았다. 그저 대전 안의 모든 이들이 동시에 숨을 멈췄을 뿐이었다. 문지방을 넘는 발소리만이 유독 크게 들렸다. 갑주를 입은 거구의 사내가 성큼 걸어 들어왔다. 강철웅이었다. 갑주 위로 걸어온 흔적인 듯, 어깨에 아직 마르지 않은 눈발이 묻어 있었다. "폐하. 신의 아들이 그런 죄를 지었을 리 없습니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그 목소리에는 백만 대군을 이끄는 자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대전의 기둥까지 그 울림에 잠시 떨리는 듯했다. "대장군, 이는 조정의 일이오. 함부로 나설 자리가 아니오." 서경택이 맞섰지만, 강철웅의 시선이 그에게 닿는 순간 그의 말은 목구멍 안으로 삼켜졌다. 서경택의 입술이 몇 번 벙긋거렸으나, 끝내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내 아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함부로 나설 자리가 아니라면, 어디가 내가 나서야 할 자리인가." 황제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강철웅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대전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긴장되어 있었다. 누구도 먼저 그 실을 끊을 수 없었다. "…사형은 유보하겠소. 다만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옥에 가둘 것이오." 강도진은 병사들에게 끌려나가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든 채로,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다. 병사들의 손이 양팔을 붙잡아 끄는 대로, 그의 몸은 힘없이 이끌려 갔다. 옥사로 향하는 길, 상처 입은 어깨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어젯밤 병사들과의 충돌에서 입은 상처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야가 흐려졌다. 눈앞이 부옇게 번지고, 발밑 돌바닥의 감각조차 아득해졌다. 몸속 깊은 곳, 육중의 진기가 요동치며 상처를 다스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힘에 부쳤다. 옥사의 좁은 통로를 지날 때마다 습한 냉기가 뺨을 스쳤다.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뚝, 뚝,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그의 남은 시간을 세는 듯했다. "…채림아." 그 이름을 마지막으로 되뇌며, 강도진의 무릎이 꺾였다. 옥사의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뺨에 닿는 바닥의 냉기조차 이제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 순간, 아득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낯선 목소리였다. 오래된, 그러나 익숙한 핏줄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에,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있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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