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달빛이 마당에 하얗게 깔린 밤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그 정적을 깨듯, 세 개의 그림자가 동시에 짓쳐 들었다.
강도진은 몸을 낮췄다. 발끝이 흙을 밀어내는 소리조차 죽인 채였다. 첫 번째 단검이 그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챙―
검신이 부딪히는 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예전이었다면 팔이 저릴 만한 충격이었지만, 지금 그의 몸속에서는 새로운 기운이 뼈마디까지 단단히 받쳐주고 있었다. 손목을 타고 흐르는 그 뜨거운 감각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두 번째 그림자가 뒤에서 파고들었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나, 강도진의 감각은 이미 그 기척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검을 역수로 틀어 막았다. 챙, 그리고 상대의 손목이 꺾이는 소리.
"…!"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서명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알던 강도진의 실력이 아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검을 쥔 손이 떨리던 사내였다. 지금 눈앞의 이 자는, 마치 다른 사람인 듯했다.
"어떻게…"
세 번째 자객이 그 틈을 노려 강도진의 다리를 노렸다. 강도진은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자객의 옷깃이 갈라지며 그가 뒤로 튕겨 나갔다. 옷자락이 반쯤 잘려나간 채, 자객은 바닥을 나동그라지듯 굴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세 번의 교전, 세 명의 자객이 모두 물러섰다. 그들의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서로의 얼굴을 살피는 눈빛에는, 승리를 확신하고 왔던 자들의 당혹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거냐."
서명후가 낮게 물었다. 목소리에는 억누른 분노와, 그보다 더 짙은 의문이 섞여 있었다. 강도진은 검을 늘어뜨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대답 대신 그의 눈빛이 서명후를 꿰뚫듯 응시했다.
"돌아가라, 서명후. 오늘은 여기까지다."
"…쉽게 끝날 거라 생각하나."
서명후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강도진의 검끝에서 얼굴로, 다시 어깨너머 저택의 불빛으로 옮겨갔다. 잠시의 침묵. 그리고 그는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세 사람의 그림자가 담장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발소리는 금세 밤공기 속에 흩어져 지워졌다.
강도진은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검을 쥔 손끝이 저릿하게 울렸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확신이 자리했다. 이 힘, 이 진기를 다스릴 수만 있다면, 잔월옥을 되찾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여전히 차가운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
계절이 몇 차례 바뀌었다.
눈이 내리고 녹기를 두 번 거듭하는 사이, 강도진은 백이십 년의 순양진기를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저택 뒤뜰에는 그가 밤낮으로 수련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나무 기둥에는 검이 스친 자리마다 하얀 상흔이 새겨졌고, 흙바닥은 발자국이 겹겹이 다져져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새벽마다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 새어 나갔다. 처음에는 몸이 진기를 견디지 못해 몇 번이고 피를 토하듯 기침을 쏟아내던 그였으나, 이제는 새벽 공기 속에서 검을 뽑아 드는 손끝이 흔들리지 않았다.
"공자님! 오늘도 새벽부터 검을 드셨다구요? 몸이 축나실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진짜로요!"
새로 저택에 들어온 시종 하나가 재잘거리며 다가왔다.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는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뛰어와서는, 강도진의 소맷자락을 붙잡을 듯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걱정 말거라. 이제는 몸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으니."
강도진이 검을 거두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예전보다 여유가 배어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래도요! 부장님이 그러셨는데, 요즘 저택 경비가 갑자기 두 배로 늘었대요! 문지기 아저씨들도 밤에 잠도 못 자고 서 있어야 한다구요! 뭔가 큰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구요!"
"…무슨 일이냐."
강도진의 눈빛이 미묘하게 가늘어졌다.
"저도 잘 모르는데요, 이번에 폐하께서 큰 잔치를 여신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공주님이랑 공자님이…"
그때 저택 부장이 헐레벌떡 뛰어와 아이의 말을 끊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어깨가 크게 오르내렸다.
"이놈아,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 공자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아직 궁 안 소식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괜찮다. 무슨 일이냐, 정확히 말해보아라."
부장이 헛기침을 하며 정색했다. 옷매를 고쳐 잡고,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옵서, 일곱째 공주님과 공자님의 정식 가례를 도성 전역에 공표하시겠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두 달 뒤, 황궁 대전에서 대례를 치른다 하십니다."
강도진의 표정이 굳었다. 대례. 그것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었다. 황실이 공식적으로 자신과 공주의 결합을 천하에 알리겠다는 의미였다. 손끝에서 검자루를 쥔 힘이 문득 세졌다.
"…아버지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는가."
"이미 대장군님께는 전서가 전달되었습니다."
강도진은 검을 고쳐 잡았다. 두 달 뒤의 대례가 단순한 경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서명후와의 일전, 서채림의 배신, 강태산이 남긴 왕릉의 비밀.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얽혀들고 있었다.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부장."
"예, 공자님."
"그날, 이헌 왕자도 참석하는가."
부장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시선이 잠시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예. 황실의 형제로서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강도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명후가 던지고 간 마지막 말이, 그리고 밤마다 저택을 감시하듯 오가는 낯선 그림자들의 존재가, 이 대례를 그저 축제로 끝내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는 부장을 물리고, 다시 검을 늘어뜨린 채 마당 한복판에 홀로 섰다.
뒤뜰의 매화나무 가지 끝에서, 겨울을 이겨낸 봉오리 하나가 조용히 벌어지고 있었다. 그 붉은 꽃잎 위로, 강도진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두 달. 그 짧은 시간 안에, 준비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두 달이 지나기 전에, 서명후의 다음 수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