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길드장의 오년공백

2화

회의실에 모인 것은 흑익 길드의 핵심 인원 다섯이었다. 강서윤, 윤채아, 한소이, 미류, 그리고 장하영. 창문으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탁자 위에는 서류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도훈은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지도 위에는 붉은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왕도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한 달만 다녀오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회의실 공기는 그 순간부터 얼어붙었다. 누구 하나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창밖에서 마차 지나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안 됩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강서윤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당신이 왕도를 떠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강서윤이 탁자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탁,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회의실 안을 채웠다. 그녀가 화를 억누를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삼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은 사람입니다. 한 달은 필요합니다." 이도훈이 담담히 답했다. "필요한 건 당신 몸이 아니라 이 자리예요." 강서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걱정보다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 더 가까웠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당신이 없는 흑익을... 저는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그 말에는 길드 이상의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윤채아가 그 사이로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끼어들었다. "저도 서윤 님 말씀에 동의해요." 윤채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미소는 언제나처럼 우아했지만, 시선은 강서윤을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저 둘 사이엔 늘 미묘한 게 있단 말이지.' 이도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윤채아는 강서윤의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묘하게 그녀와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늘 이랬다. 겉으로는 매끄러웠지만, 그 아래에는 팽팽한 실이 하나 놓여 있었다. "마스터님이 안 계시면 길드는 어떻게 되나요." 윤채아가 다시 물었다.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부길드마스터가 있습니다." 이도훈이 짧게 답했다. "부길드마스터가 감당할 수 있는 일과, 마스터의 이름이 필요한 일은 다릅니다." 윤채아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판단을 유예하는 듯한 태도였다. 한소이는 팔짱을 낀 채 가장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감정이 먼저 오가는 자리에서는 침묵을 지키다가, 논리로 정리할 시점에만 입을 열었다. "통계적으로 말하죠." 그녀의 어조는 냉정했다. "당신이 자리를 비운 지난 삼 년간의 유일한 순간은 부상으로 입원했던 사흘뿐이었어요. 그때도 길드는 흔들렸죠." 한소이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거래 세 건이 취소됐고, 하급 지부 두 곳에서 이탈자가 나왔습니다. 사흘 만에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엔 한 달입니다. 삼십 배의 위험이라는 뜻이에요." 그녀는 계산이라도 하듯 담담하게 결론을 내렸다. "단순 산술로 계산해도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클 수도 있고요." 이도훈은 그 논리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숫자로는 맞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가야 한다.' 그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미류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긴 건 그때였다. "주인님, 저도 데려가요." 미류의 눈이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도훈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다른 이들이 말로 그를 붙잡으려 할 때, 미류는 몸으로 붙잡으려 했다. "이번엔 혼자 가야 해요." 이도훈이 부드럽게 미류의 손을 떼어냈다. "싫어요. 저 없으면 위험해요." 미류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제가 없으면 누가 주인님을 지켜요. 서윤 님도 못 가고, 채아 님도 못 가는데." 그녀의 애정은 순수했지만, 동시에 놓아주지 않으려는 집착이기도 했다. "미류." 이도훈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맞추었다. "믿어줘요." 그 한마디에 미류는 입술을 깨물며 물러섰다. 그러나 눈물은 여전히 그녀의 눈가에 맺혀 있었다. 장하영은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녀는 다섯 중 가장 늦게까지 서류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다음 주에 왕실 감사가 있습니다." 장하영이 서류를 펼쳐 보였다. 서류에는 왕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붉은 도장이 유독 선명했다. "마스터가 자리를 비운 상태로 감사를 받으면, 길드 등급 심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엔 사무적인 냉정함이 있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죠. 마스터가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이등급에서 삼등급으로 떨어진 길드가 있었습니다." "그건 부길드마스터께서 대응해 주시면 됩니다." 이도훈이 답했다.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일과, 마스터의 존재가 필요한 일은 다릅니다." 장하영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왕실 관료들은 서류가 아니라 사람을 봅니다. 마스터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흑익을 다르게 볼 거예요." 다섯 명 모두가 반대했다. 창설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도훈은 그 사실이 더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평소라면 다섯의 의견이 갈리는 게 흑익의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찬성하고, 누군가는 반대하고, 그 균형 속에서 결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균열조차 없었다. 다섯 명 전원이 하나의 벽처럼 그를 막고 있었다. '다들 나를 위해 하는 말이란 걸 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도를 다시 접었다. 지도를 접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결정은 제가 합니다." 그가 말했다. 짧고 단정한 어미였다. 회의실을 나서는 그의 등 뒤로, 강서윤의 목소리가 낮게 따라붙었다. "정말 갈 겁니까." 그녀가 물었다. "네." 이도훈은 뒤돌지 않고 답했다. "그렇다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강서윤이 말했다. 그녀의 발소리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게 들렸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 됩니다. 이번엔 혼자입니다." 그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강서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더 무거웠다. 복도의 불빛 아래,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그가 본 강서윤의 모습이었다. +++ 그날 밤, 이도훈은 집무실 창가에 서서 왕도의 밤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등불이 하나둘 꺼져가는 거리였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다섯 명 모두가 반대했다는 사실이 그의 결심을 흔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을 갈아 넣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 하나로 이 길드를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저들이 먼저 알아챈 거겠지.' 그는 창틀에 손을 얹은 채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걱정하는 이유는 안다. 하지만 이대로는 나부터 무너진다.' 그는 그렇게 되뇌었다. 스승은 언제나 말했다. 무너지기 전에 물러나는 것이 용기라고. 버티는 것과 무너지는 것 사이엔 아무 경계도 없다고. 이도훈은 그 말을 지금처럼 절실하게 떠올린 적이 없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송이슬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따뜻한 차가 담긴 잔을 들고 있었다. "마스터님, 다들 걱정이 많아요." 송이슬이 조심스레 말했다. "알아요." 이도훈이 짧게 답했다. "서윤 님은 아직도 회의실에 계세요. 채아 님도, 소이 님도요." "그래도... 가시는 거죠?" 송이슬의 눈빛엔 걱정이 가득했다. 이도훈은 대답 대신 웃었다. 그것이 답이었다. 송이슬은 잔을 조용히 탁자 위에 내려놓고 물러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는 그날 밤, 정면으로 알리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반대가 격렬할수록,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진다는 걸 그는 깨달았다. '다섯 모두가 벽이 되었다면, 벽을 부수려 하지 말고 넘어가야 한다.' 그는 그렇게 정리했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는 것. 창밖의 등불이 하나 더 꺼졌다. 왕도는 점점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 그때의 그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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