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천장이 낯설다는 사실이었다.
나무 서까래에 누런 종이가 발려 있었고, 그 틈새로 희미한 곰팡내와 약초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낡은 흙벽 특유의 눅눅한 냄새까지 섞여 들어오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진한지 머릿속이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분명히 어제까지 나는 서울 어느 골목의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트럭 헤드라이트가 시야를 가득 채우던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끊겼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 빛, 그 굉음, 그리고 그 뒤로 아무것도 없던 암전.
나 죽은 거 아니었나?
분명 그랬을 텐데. 트럭 범퍼가 코앞까지 다가오던 그 순간의 공포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나는 이렇게 눈을 뜨고 누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손을 들어보려 했는데, 팔이 움직이질 않았다. 아니, 움직이긴 하는데 너무 가벼웠다. 종이 인형처럼 팔랑거리는 느낌이랄까. 근육이랄 게 거의 없는, 뼈에 얇은 살가죽만 겨우 씌워놓은 듯한 팔뚝이었다. 손등을 눈앞에 갖다 대자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년의 손이 나타났다. 손톱 밑이 시퍼랬고,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내 손이 아니었다.
······씨발, 진짜!!
비명을 지르려 했는데 목소리마저 얇고 갈라져 나왔다. 성대까지 남의 것이라니. 이건 뭐 완전히 통째로 바뀐 거 아닌가. 열다섯이나 열여섯쯤 되었을까 싶은 소년의 몸, 그것도 병색이 완연한 몸에 내 정신이 통째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이게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려 했지만, 눈꺼풀이 감기고 뜨일 때마다 똑같은 낡은 천장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방 안을 둘러보니 낡은 침상 하나, 깨진 창호지 문, 벽에 걸린 붓글씨 몇 장이 전부인 초라한 공간이었다. 침상 옆에는 다 마른 약탕기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바닥에 눌어붙은 갈색 자국을 보니 얼마나 오래 방치됐는지 짐작이 갔다. 벽에 걸린 족보 비슷한 문서에 큼지막하게 쓰인 이름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임백(林白).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기 전 내 이름도 임백이었다. 임씨 성이 흔치 않아 학창 시절 내내 놀림을 받았던 그 이름이, 여기 낡은 종이 위에 똑같이 적혀 있었다. 우연이라 치기엔 너무 정확했다.
혹시 이것도 무슨 우주적인 장난인가? 죽은 놈 이름으로 죽은 놈 몸에 넣어주는, 뭐 그런 시스템이라도 있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현실만이 명백했다. 나는 지금 임백이라는 이름의, 병색이 완연한 소년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자는 척을 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시비인지 하인인지 모를 여자 목소리 두 개가 소곤거리며 지나갔다.
"저 도련님 진짜 딱하지 않아? 원양이 다 말라버렸다는데."
"쉿, 큰 도련님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도 자기 동생인데 저렇게까지 만들 줄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어쩐지 저번 달부터 낯빛이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시던데."
"의원 나리도 이번엔 손 놓으실 거란 소문이 있어. 근기가 아예 무너졌다고."
두 여자의 목소리는 발소리와 함께 점점 멀어졌지만, 마지막 문장만큼은 귓속에 박힌 듯 사라지지 않았다. 근기가 무너졌다. 원양이 말라버렸다. 도대체 뭔 소리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원양이라는 단어가 낯설면서도 묘하게 몸속 깊은 곳에서 반응했다. 마치 텅 빈 우물의 밑바닥을 긁는 것 같은 공허한 감각이 배꼽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배 속 어딘가, 원래라면 뭔가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자리가 텅텅 비어 있다는 느낌. 몸이 몸인데도 자기 몸 같지가 않은, 껍데기만 남은 듯한 이질감이 계속해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심장 박동 소리가 유난히 크게 귓속에서 울렸다.
일어나 앉으려 했지만 팔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상체를 반쯤 세운 채 벽에 등을 기댔는데, 그 짧은 동작만으로도 온몸이 땀에 젖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팔뚝이 후들거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혔다. 스무 살 넘게 헬스장 좀 다녔던 몸이었건만, 지금 이 몸뚱이는 계단 세 칸도 못 오를 만큼 부실했다.
숨을 몰아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눈앞이 핑 돌았다. 이대로 앉아만 있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으니, 이게 대체 얼마나 망가진 몸인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장례식장 상주 얼굴이 따로 없었다. 거울이 없어 확인은 못 했지만, 분명 지금 내 표정이 그럴 것이었다. 눈은 퀭하고, 입술은 하얗게 말라 있고, 광대뼈는 툭 튀어나와 있을 게 뻔했다.
나는 이 세계가 어디인지, 언제인지, 왜 내가 이 소년의 몸에 들어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창호지 문 틈으로 스며드는 빛은 분명 형광등 불빛이 아니었고, 벽에 걸린 붓글씨는 분명 한자였는데 내가 알던 한자와는 또 미묘하게 다른 필체였다. 여기가 조선인지, 조선을 닮은 어느 다른 세계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 몸의 주인은 원래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그리고 지금은 원양이라는 무언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라는 점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였을까, 문이 벌컥 열리며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손에는 낡은 진맥 주머니를 들고 있었고, 등에는 큼지막한 약재 보따리를 지고 있었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방 안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맥을 보겠소."
노인은 대뜩없이 내 손목을 잡았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는데도 맥을 짚는 감각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 손가락 세 개가 손목 안쪽 서로 다른 지점을 정확하게 누르는데, 그 손길에서 오랜 세월 쌓인 노련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노인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럴 수가."
그가 짧게 내뱉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짧은 탄식 하나에 방 안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노인은 손목을 놓지 않은 채 한참을 더 맥을 짚었다. 미간이 점점 좁아지고, 이내 고개를 몇 번이고 가로저었다. 마치 믿을 수 없는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세어보는 사람처럼.
"원양이 씨알만큼도 남지 않았소. 근기는 이미 파괴됐고. 이대로면 일 년을 넘기지 못할 게요."
노인의 진단은 담담했지만, 그 말이 내 귀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손끝이 저릿저릿했고, 목구멍이 바짝 조여왔다.
아, 조졌다.
죽어서 다른 세계에 왔는데, 그 세계에서도 죽을 운명이라니. 인과율이 억까를 부린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맞을 수는 없었다. 트럭에 치여 죽고, 눈을 뜨자마자 시한부 인생이라니. 이게 무슨 개같은 시나리오인가 싶었다. 하늘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나한테만 이러는 건지, 따지고 싶어도 따질 대상조차 없었다.
"의원 나리,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이 집의 하인쯤 되는 사람인 듯했다.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근본을 되살릴 영약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 있는 약재로는 명을 며칠 늘리는 게 고작이오. 큰 도련님께 그리 전하시오."
큰 도련님. 그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금 시비들이 소곤거리던 그 큰 도련님, 이 몸의 형이라는 존재가 이 모든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자기 동생을 저렇게까지 만들 줄이야, 라던 그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노인은 내 상태를 몇 가지 더 확인하고는 무거운 얼굴로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일 년. 남은 시간이 일 년.
방금 전까지는 이 몸에 들어온 게 억울하고 황당했는데, 이제는 그 감정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살아야 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두 번째 삶이 겨우 일 년짜리 시한부라는 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몰랐다. 이 진단을 내린 노인이 훗날 내 목숨줄을 쥐게 될 인물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병약한 몸속에 형과 약혼자가 짜놓은 음모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