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형님, 아직 안 죽었는데요

5화

그림자는 곧 사라졌다. 발소리도, 인기척도 없이 밤공기 속으로 스며들듯 지워졌는데, 나는 한동안 숨죽인 채 어둠을 노려보다가 그것이 산짐승이거나 바람에 흔들린 나무 그림자였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조상묘 구역이라는 곳이 원래 이렇게 서늘한 곳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방금 뭔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밤 조상묘 구역을 오가며 진혼석에 손을 대는 일을 반복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림자가 다시 나타날까 봐 첫 며칠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운 채 움직였다. 발끝으로 걷고, 숨소리조차 죄스러워 입을 다물었으며, 나뭇가지 하나 부러지는 소리에도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그 그림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점차 그날의 기억을 별채의 헛것 정도로 치부하며 진혼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첫날 손끝에 스치던 씨앗만 한 온기는, 열흘이 지나자 손바닥 전체를 감싸는 온기로 변했다. 스무날이 지나자 그 온기는 팔을 타고 흘러 단전까지 내려갔다. 밤마다 반복된 그 접촉은 마치 방전된 배터리에 조금씩 충전기를 물려주는 느낌이었고, 나는 그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온기가 오는 순서도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손끝에서 시작해 손목까지, 어떤 날은 팔꿈치를 건너뛰고 곧장 어깨까지 밀려들었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 있던 수로가 조금씩 뚫리는 것 같았고, 그 수로가 완전히 이어지는 순간이 오면 뭔가 큰 게 터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효과는 재현되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이건 우연이 아니다. 확실했다. 나는 밤마다 진혼석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바닥을 밀착시키며, 이게 대체 무슨 원리인지 나름대로 추측해보곤 했다. 조상의 원혼이 후손에게 힘을 나눠주는 거라면 왜 하필 나여야 하는지, 근기가 파괴됐다는 판정까지 받은 몸에 이런 게 통한다는 게 이치에 맞는 소린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팠다. 그래도 답이 없다고 손을 떼지는 않았다. 지금 나에게 확실한 건 딱 하나, 이 돌에서 뭔가가 흘러들어온다는 사실뿐이었다. 낮에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지냈다. 곽복이 하루 한 번씩 순찰이랍시고 초옥에 들이닥쳐 트집을 잡았는데, 반찬이 부실하다고 시비를 걸거나, 이부자리를 헤집어 뭘 감춘 게 있나 확인하는 식이었다. 어느 날은 밥그릇의 개수를 세더니 하나가 없다고 소란을 피웠고, 어느 날은 마당에 떨어진 낙엽 개수까지 트집 잡을 기세였다. 임강의 총애를 받는 이 뚱뚱한 사내는, 임백이라는 이름이 붙은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다. 곽복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 인간이 언젠가 눈치챌 거라는 예감은 있었다. 다만 그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한 달째 되던 날, 곽복이 유난히 살벌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평소보다 걸음이 무거웠고, 눈빛에는 확신에 찬 살기가 담겨 있었다. 뭔가 결정을 내리고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너, 요즘 밤마다 어디 나가지."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안면 근육이 굳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답했다. "잠이 안 와서 마당을 좀 걸었습니다." "거짓말." 곽복이 코웃음을 쳤다. "근기가 파괴된 놈이 걸음이나 제대로 걸을 수 있겠냐. 뭐 하고 다니는지 다 알아. 조상묘 쪽에서 얼쩡거린다며." 누가 봤구나. 그 그림자, 사람이었어.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날 밤 그 그림자가 곽복의 눈이었는지, 아니면 곽복에게 고한 다른 누군가의 눈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이 스쳐 지나갔다. 산책을 좋아한다, 잠버릇이 있다, 조상묘를 청소하고 싶었다. 어느 것도 그럴싸하지 않았고, 곽복의 표정을 보면 이미 변명 따위는 안 통할 거라는 게 뻔했다. "큰 도련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조상묘 근처를 계속 배회하면, 다리 하나쯤 부러뜨려서 확실히 못 움직이게 하라고." 그가 품에서 청석 하나를 꺼내 손바닥에 얹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매끈한 돌이었다.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는데, 그게 한두 번 써서 생긴 흔적이 아니라는 걸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내가 삼 년 전에 이거로 당했다. 알지?" 알지. 잘 알지. 니 다리 그거로 부러졌잖아. 임가에서 종살이하는 사람이라면 곽복의 절뚝거리는 걸음을 모를 리 없었다. 삼 년 전, 큰 도련님의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다리뼈가 저 청석에 으스러졌다는 소문. 지금은 다 나아 걸어 다니지만, 비 오는 날이면 여전히 절뚝거린다는 그 다리. 온몸의 근육이 긴장했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앙상한 다리로 이 뚱뚱하지만 절도 있는 사내를 상대할 방법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고, 근기 파괴 판정을 받은 몸으로 저항이라니 우스운 소리였다. 초옥은 좁았고 문은 곽복의 등 뒤에 있었다. 도망칠 방향조차 계산이 서지 않았다. 이대로 다리가 부러지면 끝이다. 지금까지 채워온 온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매일 밤 조상묘까지 갈 수도 없을 텐데.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이상하게 단전 쪽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 한 달간, 매일 밤 조상묘에서 뭔가를 조금씩 채워왔다. 곽복이 청석을 들어올렸다. 그의 팔이 크게 휘둘리려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팔을 뻗었다. 채워진 그 미세한 원양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과 함께 단전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손바닥이 곽복의 손목을 붙잡았다. 예상 밖의 저항에 곽복의 눈이 커졌다. 그가 힘을 주려 했지만, 나는 그보다 더 강한 힘으로 그의 팔을 밀어붙였다. 청석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쿵, 둔탁한 소리가 초옥 바닥을 울렸다. "이, 이게..." 곽복이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쳤다. "너 이 새끼, 근기가..." 됐어. 이거 진짜 됐어!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실감이 났다. 한 달간의 은밀한 수련이, 진혼석의 그 알 수 없는 힘이, 정말로 나를 조금씩 되살리고 있었다. 곽복의 손목을 붙잡은 내 손가락에는 분명히 힘이 실려 있었다. 근기가 파괴된 몸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그런 힘. 곽복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걸 보면서, 나는 잠깐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 이 새끼야. 나도 이제 뭐 좀 있다고.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단전 안쪽에서 방금 폭발했던 그 힘이 다시 텅 비어버린 것이었다. 마치 잠깐 빌려 쓴 것을 반납하는 것처럼, 방금 전까지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아, 씨발. 다리가 후들거렸다.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방금까지 곽복의 손목을 짓누르던 그 완력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손가락 하나 제대로 펴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게 뭐야. 왜 갑자기 이래. 곽복이 그런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뭐냐, 방금 그거! 너 뭘 한 거야!" 나는 답하지 못했다. 답할 힘조차 없었다. 그저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방금 자신이 무엇을 목격했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곽복의 얼빠진 얼굴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곽복의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떨어뜨린 청석을 주울 생각도 못 한 채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정적이 초옥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곽복의 숨소리와 내 숨소리만이 그 정적을 채웠다. 첫 반격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 힘이 이렇게 순식간에 소모되어버린다는 사실은, 앞으로 내가 넘어야 할 산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곽복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저 청석을 다시 주워들지 아니면 도망치듯 뛰쳐나가 큰 도련님에게 고할지, 나는 그것조차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그저 바닥에 널브러진 채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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