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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빛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내가 교실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야간자율학습 중이었다. 정확히는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감금이었고, 나는 문제집 여백에 낙서를 하다가 갑자기 발밑이 사라지는 감각을 느꼈다. 추락이 아니라 삼켜지는 느낌이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훅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지나가고, 눈을 떴을 때는 돌바닥이었다. 차가웠다. 교실 바닥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차가운 돌바닥이었고, 그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순간 나는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먼저 알았다. 돌바닥 위에 나 말고도 서른 명 남짓이 주저앉아 있었다. 다들 교복을 입고 있었고 다들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율학습 감독 선생 눈치를 보던 낯짝들이, 지금은 하나같이 이게 무슨 몰래카메라냐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는 자기 뺨을 때려보고, 누구는 옆자리 애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꿈이면 좀 아파야 정상이라는 논리였는데, 다들 멀쩡히 아파하는 걸 보고서야 표정이 더 하얘졌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이게 진짜라면, 이제부터 뭘 해야 이득인가. 주변을 살폈다. 돌벽에는 이끼가 껴 있었고 천장에는 횃불이 아니라 파랗게 빛나는 구슬 같은 게 둥둥 떠 있었다. 조명 하나만 봐도 물리 법칙이 여기서는 다르게 굴러간다는 게 보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통하는 건 여기 법칙이지, 내가 알던 상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정면의 단상 위로 화려한 로브를 걸친 여자가 걸어 나왔다. 로브 자락에 자수로 새겨진 문양이 은은하게 빛을 냈다. 목소리에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환영한다, 용사들이여. 그대들은 청명 왕국의 부름을 받아 이곳에 소환되었다." 용사.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옆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곧바로 사색이 됐다. 마도사의 눈이 그쪽을 스쳤을 뿐인데. 눈빛 하나로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재주가 있다면, 저건 그냥 말뿐인 협박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마왕의 그림자가 대륙을 뒤덮고 있다. 그대들에게는 이를 물리칠 힘이 잠재되어 있으며, 왕실은 그 힘을 각성시켜 활용할 것이다." 설명은 짧고 사무적이었다. 마왕이 있고, 우리가 그걸 잡아야 하고, 왕실이 도와준다는 것. 도와준다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나는 저 여자의 말투에서 시혜가 아니라 사용이라는 단어를 읽었다. 학교에서 담임이 "이건 다 너희를 위한 거야"라고 말할 때랑 정확히 같은 어조였다. 저런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지갑을 확인하게 되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엔 지갑이 아니라 목숨을 확인해야 할 판이었다. 뒷줄에서 한 남학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돌려보내 달라고,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목청이 갈라질 정도로 악을 썼다. 마도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손짓 한 번 했다. 그러자 단상 옆에 서 있던 기사 셋이 그 애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창끝이 목에 닿기 직전에야 그 애는 조용해졌다. 그 기사들의 움직임이 너무 매끄러워서,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저항하는 인간을 다루는 게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걸 확인했을 뿐이지, 안전하다는 확신은 전혀 얻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였다. 여기는 반항하면 창이 목에 닿는 곳이고, 순종하면 어떤 식으로든 쓰이는 곳이었다. 둘 중 뭐가 나은지는 아직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 "자, 이제부터 마정석 감별식을 진행하겠다. 그대들 각자에게 잠재된 속성을 판별하여, 그에 맞는 훈련과 지원을 배정할 것이다." 감별식이라는 건 별거 없었다. 손바닥만 한 돌덩이 위에 손을 올리면 그 돌이 색을 낸다고 했다. 붉으면 화속성, 푸르면 수속성, 이런 식으로. 색이 진할수록 재능이 뛰어나다고도 했다. 옆에 있던 기사가 순서대로 이름을 부르며 한 명씩 앞으로 끌어냈다. 부르는 목소리에 억양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출석부를 읽는 것 같았는데, 그 무미건조함이 오히려 소름 끼쳤다. 순서가 진행될수록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어떤 애는 손을 올리자마자 돌이 새파랗게 타올랐고, 어떤 애는 은은한 금빛을 냈다. 그 색깔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부러움과 안도와 실망이 교대로 스쳤다. 화속성이 나온 애 하나는 대뜬 주먹을 불끈 쥐며 웃었고, 옆에서 옅은 회색을 낸 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재능 등급이 즉석에서 매겨지는 살아있는 성적표였다. 저게 진짜 능력의 척도라면, 이 세계는 인간을 자원으로 취급하는 데 아주 능숙한 곳이라는 뜻이었다. 내 차례가 됐다. 손을 올렸다. 돌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마도사가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 표정 변화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옆에 있던 애들 얼굴을 보고 알았다. 다시 손을 올려보라는 말에 나는 순순히 따랐다. 여전히 무반응. 돌은 그냥 돌이었다. "판정 불가." 짧은 두 마디였다. 그 말이 낙인처럼 들렸다. 뒤에서 몇몇이 나를 힐끔거렸다. 그 시선엔 동정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닌, 그냥 '쟤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무관심이 섞여 있었다. 재능이 없다는 낙인. 이 세계에서는 그게 곧 쓸모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딱히 억울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세계에 오고 싶었던 적도 없었으니까. 억울해할 감정을 소모할 여유도 없었다. 다만 계산은 해야 했다. 판정 불가는 즉 왕실의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었고, 그건 곧 내가 알아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밥, 잠자리, 안전. 세 가지 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계산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줄을 섰다. 감별식이 끝나자 우리는 각자 배정된 숙소로 흩어졌다. 판정받은 애들은 화려한 기숙사 건물로, 나 같은 판정 불가는 성 외곽의 낡은 창고 비슷한 곳으로. 안내하는 병사는 그쪽 방향을 손가락으로 대충 가리키고는 더 설명도 없이 돌아섰다. 걸어가는 길에 본 기숙사 건물 창문에서는 벌써 불빛이 새어 나왔고, 창고로 가는 길목은 가로등 하나 없이 캄캄했다. 딱 그 정도 차이가 이 세계에서 내 위치를 요약해주고 있었다. 창고 방에 짐을 풀며 나는 생각했다. 이건 그냥 불운이 아니라 기회일 수도 있다고.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고 짚더미로 된 침대는 눕는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적어도 감시하는 눈은 없었다. 왕실이 나를 안 본다는 건 왕실이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나쁘게 보면 버려진 거고, 좋게 보면 자유로운 거였다. 어느 쪽으로 해석할지는 순전히 내 몫이었다. 그날 밤, 창고 뒤편에서 도둑고양이 같은 것과 마주쳤다. 정확히는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이빨이 세 줄로 난 뭔가였다. 저지대 마물이라고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는 그냥 죽는 줄 알았다. 눈이 어둠 속에서 노랗게 빛나고 있었고, 그 눈이 나를 정확히 조준하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 도망치려 했는데 다리가 꼬여서 넘어졌고, 그 마물이 덤벼드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쩌엉.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마물이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내 팔이 부러졌어야 정상인데, 부러지지 않았다. 대신 팔에서 뭔가 뜨거운 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혈관 속에 인두를 갖다 댄 것 같은, 순간적이지만 선명한 열감이었다. 근육이 평소보다 두 배는 단단해진 것 같았다. 팔을 만져보니 실제로 딱딱했다. 사람 팔이 이렇게 굳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마물은 비틀거리며 도망쳤고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내 팔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아직도 저릿저릿했다. 판정 불가라던 마정석이 순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알게 됐다. 나는 마력 반응이 없는 게 아니라, 마력을 그대로 몸에 때려 박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속성 없는 신체강화.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는 힘. 색깔로도, 이름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종류의 능력. 이걸 어디다 팔면 얼마 받을 수 있을까.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는 게 스스로도 좀 어이없었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을 넘기고서 처음 든 생각이 시세 조사였다는 게, 나조차도 나를 좀 한심하게 보게 만들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왕실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판정 불가라는 낙인은 순식간에 다른 낙인으로 바뀔 것이다. 실험체, 혹은 도구. 마도사의 그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리면, 저 여자가 이런 힘을 알게 됐을 때 나를 어떻게 취급할지 그림이 너무 쉽게 그려졌다. 반항하는 학생 목에 창을 겨눴던 손짓 하나로 충분히 짐작이 갔다. 나는 그 밤 결심했다. 이 힘은 절대 왕실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고. 낡은 창고 천장 틈으로 달빛이 새어들었다. 나는 그 아래서 오래도록 팔을 쥐었다 폈다 하며 생각했다. 살아야 한다면, 이 세계의 방식대로 말고 내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 결심을 미처 다 굳히기도 전에, 창고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까 마물이 도망친 소리를 누가 들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발소리는 분명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판정 불가 딱지를 받은 나 같은 걸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없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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