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성문 앞에 선 마도사는 나를 정확히 쳐다보고 있었다.
착각이길 바랐다. 사람 많은 성문 앞에서 우연히 시선이 겹쳤을 뿐이라고, 세 번쯤 되뇌었다. 그런데 마도사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다시 나를 정확히 겨눴다. 세 번째 확인까지 마치자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
몸속에서 뭔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등에 소름이 쫙 돋는 게 실제로 느껴질 정도였다. 감별식에서 무반응이었던 그 돌을 다시 떠올렸다. 접수원이 무심하게 찍어준 판정 불가 낙인, 그게 그냥 서류철에 처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순간 그 낙인이 아주 위험한 표찰로 바뀌고 있었다.
"저기 서 있는 것들, 왜 저래요?"
작게 물었더니 서준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목소리를 낮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궁정 마도사야. 저 여자가 여기까지 나올 일은 없는데."
없는데, 라는 말이 제일 무서운 말이었다. 원래 없어야 할 일이 벌어졌다는 건, 그 일의 원인이 상당히 특별하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 원인이 나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마도사가 손을 들었다. 그 손끝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와 성문 앞 공기를 훑었다. 그 빛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피부가 따끔거렸다. 마력 탐지였다.
"방금 이 지역에서 강한 신체강화 반응이 감지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낭독하듯 무미건조한 어조였는데, 그 사무적인 목소리가 정확히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게 시야 가장자리로 보였다. 나만 빼고 다들 눈치가 빨랐다.
"판정 불가로 등록된 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강도윤, 맞나?"
내 이름을 아는 것도 처음이었다. 등록할 때 접수원에게 이름을 준 게 전부였는데, 그게 이렇게 빨리 왕실 쪽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서류 한 장이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나라라면, 세금 고지서도 이 속도로 날아올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가 곧바로 지워졌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네, 맞는데요."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서 나왔다. 태연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조금 전 폐광 안에서 신체강화 마법을 사용했나?"
부인해야 할지 말지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미 탐지된 상태에서 거짓말은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발각되면 더 나쁜 인상을 남길 뿐이었다. 거짓말쟁이에 위험 인자라는 조합보다는, 솔직한 위험 인자가 그나마 낫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셈이었다.
"살려고 그랬어요. 마물이 덤벼드는데 어쩔 수가 없어서."
"판정 불가인 자가 신체강화를 구사한다. 이는 매우 드문 사례다."
드문 사례라는 말이 좋게 들릴 리 없었다. 드문 것은 곧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건 곧 자유가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실험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급하게 지워졌다.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단어였다.
"동행하도록. 왕실에서 정밀 검사를 원한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목덜미부터 허리까지 한 줄로 축축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순간부터 도망치는 건 명백한 반항이 되고, 반항한 순간부터는 아까 그 학생처럼 창끝을 목에 대는 취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금 저항하면 즉시 제압. 지금 따라가면 나중에 실험체 신세. 도망치면 전국에 지명수배.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계산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셋 다 나쁜 선택이었고, 그중 뭐가 제일 덜 나쁜지 판단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때 서준혁이 앞으로 나섰다.
"저, 마도사님. 이 친구는 오늘 처음 일 나온 초짜입니다. 그냥 우연히 튀어나온 반응 아닐까요?"
능글맞은 웃음까지 붙여서 말하는 걸 보니, 이 남자는 이런 상황에 익숙한 게 분명했다. 처음 보는 상관 앞에서도 저렇게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근거 있는 의견인가?"
"예, 판정 불가는 원래 마력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상황이 워낙 급박했으니까, 뭔가 다른 원인이 있었을 수도 있죠. 폭발성 물질이 근처에 있었다거나, 마물 쪽에서 발산한 마력 잔재가 반사됐다거나요."
그럴듯한 소리를 술술 늘어놓는 게 신기했다. 즉석에서 지어낸 건지 원래 알던 지식인지 구분이 안 됐다. 어느 쪽이든 지금은 고마울 뿐이었다.
마도사의 눈이 서준혁을 향했다. 잠깐이지만 그 시선에 뭔가 알아본다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낯선 사람을 처음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D급 모험가 서준혁. 그대의 의견은 참고하겠다."
이름을 안다는 게 걸렸다. 마도사가 이 남자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건, 이 남자가 그냥 노동 출신 모험가라는 설명보다 더 복잡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D급이라는 등급도 이상했다. 아까 핵 위치를 감으로 맞추던 실력이 D급짜리 솜씨는 아니었는데.
"검사는 미루도록 하지. 다만."
마도사가 나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눈빛이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물건의 재고를 확인하는 눈이었다.
"다음번 마력 반응이 다시 감지되면 그때는 미루지 않는다."
그 말을 끝으로 마도사와 로브 무리는 성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여기서 주저앉으면 더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억지로 버텼다.
"준혁 씨, 방금 뭐예요? 왜 저 여자가 준혁 씨 이름을 알아요?"
목소리가 그제야 제대로 나왔다. 아까는 목이 완전히 막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준혁은 대답하지 않고 성문 안쪽을 계속 바라봤다. 그 옆모습이 평소의 능글맞은 얼굴과는 좀 달랐다.
"일단 걸으면서 얘기하자."
골목으로 접어들자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한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 이 힘 숨기고 있었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확인하면서도 딱히 놀라지도 않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럼 준혁 씨는 뭘 숨기고 있었는데요? 핵 위치를 감으로 맞춘다는 것도, 마도사가 이름을 아는 것도, 다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아요."
말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방금 죽다 살아난 사람 특유의 흥분이었다. 화가 나서라기보다는, 이 남자가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나보다 많다는 데서 오는 억울함 같은 감정이었다.
그가 잠깐 나를 쳐다봤다. 웃는 것도 아니고 화난 것도 아닌 얼굴이었다. 뭔가를 재는 눈이었다.
"...나도 판정 불가였어. 삼 년 전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딸깍, 하고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좋은 쪽으로 맞물린 건지 나쁜 쪽으로 맞물린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이 남자가 처음부터 나를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럼 준혁 씨도..."
"얘기는 안전한 데서 하자. 여기서 더 말하면 저 여자가 다시 돌아볼 거야."
그가 걸음을 서둘렀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방금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이 남자가 나를 도와준 건지 이용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둘 중 하나만 골라도 벅찬데, 둘 다 함께 오니까 머리가 아팠다.
골목을 두 번 꺾었을 때, 어깨 위로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느낌, 감별식에서 마력 탐지 빛이 지나갈 때 느꼈던 감촉과 비슷했다.
"저기 봐."
그가 가리킨 곳에는 아까 그 로브 무리 중 하나가 서 있었다. 후드를 눌러쓴 채로 우리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시선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 우리를 따라온 게 분명했다.
숨이 턱 막혔다. 아까 마도사가 사라진 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