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적성검사장 대기실은 아침 일곱 시부터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접수처 앞에 늘어선 줄이 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고, 다들 얼굴에 긴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누군가는 손에 든 종이컵을 달달 떨었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를 중얼거렸고, 또 누군가는 아예 화장실을 세 번째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만 유독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 타일 개수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백열등 아래 얼룩진 타일까지 정확히 백열두 개였다.
오늘 여기서 무슨 등급을 받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던전에서 죽은 게 열두 해 전이었고, 그날 이후로 우리 집에서 '모험가'라는 단어는 저녁 밥상에 올라온 적이 없었으니까. 어머니는 그 단어를 입 밖에 낼 때마다 목소리가 반음쯤 낮아졌고, 나는 그 낮아진 목소리가 무슨 뜻인지 굳이 물어본 적이 없었다.
"이거 먹어." 옆자리에서 불쑥 영양바 하나가 내 손에 얹혔다. 윤서아였다.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이 녀석은 이미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험가 등록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오늘은 상급 재평가 시험이라던가 뭐라던가 하는 이유로 같은 시험장에 배정됐다고 했다. 등급이 높은 헌터들은 일정 기간마다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던가, 그런 규정이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넌 또 아침 안 먹었지." 그녀가 팔짱을 낀 채 나를 흘겨봤다. 눈매가 매서웠다. "어제 늦게까지 뭐 했는데."
"그냥, 잠이 안 왔어."
나는 영양바 포장을 뜯으며 대충 웃어 보였다. 사실은 밤새 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등급표를 몇 번이나 새로고침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F등급 헌터가 실제로 뭘 할 수 있는지, 아니 뭘 못 하는지 검색하다가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새벽 네 시쯤 눈을 감았다는 얘기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긴장돼?" 서아가 물었다.
"별로." 거짓말이었다. 손끝이 이미 미세하게 차가워지고 있었다.
번호가 불렸다. 6113번, 이도윤.
측정실 안은 예상보다 훨씬 삭막했다. 하얀 벽, 하얀 바닥, 그 가운데 놓인 낡은 측정 장치 하나. 담당 직원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손바닥을 올리라고 지시했고, 나는 시키는 대로 손을 얹었다. 기계가 웅— 하는 소리를 내며 뭔가를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그 몇 초가 마치 몇 년처럼 느려졌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귀에 그대로 울렸다. 손바닥에 닿은 장치 표면은 서늘했는데, 그 서늘함이 등줄기까지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기계 화면에 초록색 불빛이 세 번 깜빡이고 나서야 측정이 끝났다. 직원은 "삼십 분 후 태블릿으로 결과가 통보됩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그게 다였다. 삼십 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결과지는 정확히 삼십 분 뒤에 태블릿으로 통보됐다.
전투 적성 — F.
딱 그 글자를 본 순간 등줄기로 소름이 쫙 끼쳤다. 예상했던 결과였는데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과 그냥 짐작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F등급이라니. 이건 그냥 낮은 게 아니라 협회 등급표 맨 밑바닥, 사실상 '모험가 자격 없음'과 동의어였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버지도 이 바닥에서 사고로 죽었는데, 아들은 시작도 못 해보고 F등급이라니, 이런 걸 두고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인과율이 억까를 부린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 아래 줄을 본 순간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채취 적성 — S.
요리 적성 — S.
뭐야 이거.
나는 태블릿을 두 번, 세 번 다시 눌러봤다. 화면이 깨진 것도 아니고 오타도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까지 해봤지만 글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전투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내려갔는데 채취랑 요리는 최상위권. 이런 극단적인 조합이 통계적으로 가능한 수치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백과사전 한 권이 나올 정도로 희귀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도윤 님, 잠시 상담실로 와주시겠어요?"
담당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명찰에는 '한서연'이라고 쓰여 있었고, 나이는 이십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는데 눈빛이 유독 날카로웠다. 상담실에 앉자마자 그녀는 내 결과지를 화면에 띄워놓고 한동안 말없이 들여다보기만 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런 편차는 흔치 않은데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채취랑 요리가 동시에 S인 사례는 협회 데이터베이스에서도 몇 년째 못 봤어요."
"그럼 좋은 거예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글쎄요." 그녀는 애매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묘하게 위로도 안 되고 걱정도 안 되는, 딱 중간 어디쯤의 표정이었다. "등급은 좋은데, 문제는 F등급 신입 헌터한테는 활동 제한이 걸린다는 거예요."
활동 제한. 그 단어가 귀에 걸리는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어떤 제한이요?" 나는 되물었다.
"자세한 건 결과지 하단에 명시되어 있을 거예요." 한서연은 태블릿을 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다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크게 기대하지는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잠깐 나를 응시하다가, "채취랑 요리 쪽 재능은 정말 드문 거라서 아깝긴 하네요"라고 덧붙였다. 그 말이 위로인지 그냥 사실 전달인지 구분이 안 됐다.
상담실을 나서자 대기실 앞에서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내 결과지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탈색한 머리에 눈빛이 삐딱한 남자애였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이름이 박도현이었다.
"전투 F에 채취 S?" 그가 피식 웃었다. 태블릿 화면을 아예 대놓고 넘겨다보고 있었다. "이거 완전 밸런스 붕괴네."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기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어차피 F등급이면 최하층밖에 못 갈 텐데, 거기 채취물 값나가는 거 하나도 없잖아."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S등급이든 아니든 의미 없는 거지. 좋은 재료를 시궁창에서 캐봐야 시궁창 재료인 거 아니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말이 너무 정확하게 맞아서였다. 목구멍 어디쯤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가 그냥 삼켜졌다.
"뭐야, 저 자식은." 뒤에서 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느새 상급 재평가실에서 나와 있었고, 박도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이 벌써부터 곱지 않았다.
"전투 A 이상." 그녀가 자기 결과지를 대충 흔들며 말했다. "뭐 예상대로긴 한데."
그러다 내 표정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왜, 안 좋아?"
"F등급." 나는 짧게 대답했다. "채취랑 요리는 S래."
"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말이 돼? 그 조합 진짜 처음 들어."
"몰라, 나도 지금 실감이 안 나."
서아는 잠깐 뭔가 말하려다가 멈추고, 대신 내 어깨를 툭 쳤다. "일단 나가자. 여기서 더 있으면 저런 놈이랑 더 마주칠 것 같으니까." 박도현은 이미 저 멀리 자기 결과지를 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떠벌리고 있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대기실 저편에서 계속 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결과지를 몇 번이나 다시 열어봤다. 전투 F. 채취 S. 요리 S. 이 세 줄이 나란히 있는 게 이상하게도 웃겼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간판들, 편의점, 정류장 표지판을 하나씩 세어보다가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도 이런 버스를 타고 던전으로 출근했을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본 창밖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순서 없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웃기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창밖만 계속 쳐다봤다. 서아는 옆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슬쩍 머리를 기댔다가, 다시 떼고, 또 슬쩍 기댔다. 그게 그녀 나름의 위로 방식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신발장 옆에 놓인 낡은 등산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던전에 들어갈 때 메고 갔던 그 배낭이었다. 어머니는 그걸 십이 년째 저기서 치우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 색바랜 천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어깨끈은 다 삭아서 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지퍼 손잡이도 반쯤 부서진 상태였다. 나는 배낭을 만지지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 조용한 집 안에서 나는 결과지를 다시 열어봤다. 맨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안내 문구가 하나 붙어 있었다. 전투 등급 F 신입은 최하층(B1~B3) 외 던전 출입이 일체 제한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쯤 읽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내 앞날을 통째로 가로막는 벽이라는 걸 깨달았다.
최하층.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곳. 도현이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값나가는 채취물 하나도 없다는 그 최하층에서, S등급짜리 채취 재능이랑 요리 재능을 가지고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나조차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결과지 화면을 다시 한번 켰다. 전투 F. 채취 S. 요리 S. 세 개의 등급이 여전히 그대로 떠 있었다. 이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구분도 안 되는 채로, 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나는 아직 몰랐다, 그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곳에서 내 인생 전체가 뒤집힐 거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