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연습실 유리벽에 비친 내 얼굴은 딱 봐도 별로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 벌겋게 달아오른 손끝, 그리고 무엇보다 흔들리는 눈빛. 누가 보면 아이돌 연습생이 아니라 격투기 링에서 방금 열두 라운드 뛴 사람인 줄 알 거다. 근데 나는 춤을 췄다. 그냥 춤을.
다섯 번째 리테이크였다.
"이소원, 다시."
강 코치님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건조했다. 감정이 하나도 안 들어간 목소리로 사람 자존심을 갈아버리는 재주가 있는 분이었다.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무표정으로 사람 마음을 후벼 파실 수 있는 건지. 나중에 은퇴하시면 그 재주로 뭐 하나 차리셔도 될 것 같은데.
"네."
대답은 짧게 했다. 짧게 할 수밖에 없었다. 길게 대답하면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다섯 명이 서는 포메이션인데, 나는 언제나 맨 끝, 카메라에 반쪽만 잡히는 자리였다. 그 자리마저 위태로웠다. 왜냐면.. 내 마력이 문제였다.
우리 그룹, 이클립스는 노바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마법소녀 아이돌 그룹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게 다가 아니다. 우리가 무대에서 뿜어내는 감정과 리듬이 결계 방어청의 결계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공급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잘하면 세상이 좀 더 안전해진다는 거다. 웃기지도 않는 얘기지만 진짜다. 누가 처음에 이 시스템을 짰는지 몰라도, 아이돌 산업이랑 국가 방위를 엮어놓은 그 발상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물론 나한테는 재앙이지만.
문제는 내 마력이 그 시스템에 얹히질 않는다는 거였다. 다른 애들은 각자 색깔이 있다. 파란 물결처럼 잔잔하게 퍼지는 마력, 노란 볕처럼 은은하게 스며드는 마력. 리더 언니는 파란색인데, 그 언니가 무대에서 팔을 뻗으면 진짜로 무슨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 서 있는 애는 노란색이라 웃을 때마다 주변이 살짝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다들 그렇게 자기 색을 자연스럽게 다룬다.
내 건 빨갰다. 붉은 번개. 근데 이게 제어가 안 됐다. 순간적으로 확 튀어 오르고, 아무 때나 방전되고, 정작 필요한 순간엔 숨어버렸다. 말을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저 혼자 딴 세상 사는 애 같았다. 마치 주인을 무시하는 강아지처럼. 부르면 안 오고, 안 부르면 갑자기 달려드는.
"소원아, 어깨 힘 좀 빼."
동료 하나가 지나가면서 툭 던졌다. 위로인지 지적인지 구분이 안 되는 말투였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인 것도 같고, 걱정이 섞인 것도 같고. 나는 그냥 웃었다. 웃는 거 말고 뭘 하겠어. 반박할 힘도 없었다.
다시 음악이 나왔다.
전주가 흐르고, 우리는 각자 위치로 흩어졌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팔을 들었다. 이번엔 진짜 잘해야 한다. 다섯 번째면 이제 여섯 번째는 없어야 한다.
뜨윽-!
스텝이 엉켰다. 발끝이 다른 애 발을 밟았다.
옆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들렸다. 그 소리가 음악보다 더 크게 들렸다면 믿을까. 강 코치님은 아무 말 없이 손목시계를 봤다. 그 무표정이 제일 무서웠다. 화를 내는 것보다 백배는 더 무서웠다. 저 침묵 뒤에 뭐가 준비되어 있을지 상상하는 게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
'..죄송합니다.'
속으로만 사과했다. 입 밖으로 꺼내면 또 뭐라고 하실지 아니까. "죄송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들었으면 좋겠는데"라고 하실 게 뻔했다. 그 말을 또 들을 자신이 없어서 그냥 삼켰다.
"오늘은 여기까지."
강 코치님이 손목시계를 다시 보시고는 짧게 말씀하셨다.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나만 빼고.
연습이 끝나고 다들 우르르 빠져나갔다. 가방을 챙기면서 서로 오늘 저녁은 뭘 먹을지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남았다. 늘 그랬다. 남아서 혼자 스텝을 밟는 게 습관이 됐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안 하면 오늘 하루를 버릴 수 없을 것 같아서.
연습실 형광등이 절반쯤 꺼지고, 유리벽에 비친 내 모습은 아까보다 더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 시간만큼은 아무도 나를 안 보니까. 강 코치님도 없고, 동료들도 없고, 그 무표정한 손목시계도 없고.
연습실에 혼자 남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딱히 신경 안 쓰고 그냥 몸을 흔들었다. 정확한 동작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리듬에 몸을 맡겼다. 팔을 아무렇게나 흔들고, 발을 아무렇게나 옮기고. 누가 본다면 저게 무슨 아이돌 연습이냐고 웃을 만한 몸짓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손끝이 뜨거워졌다.
평소랑 다른 뜨거움이었다. 폭발하듯 튀어오르는 게 아니라, 뭔가... 잔잔하게 퍼지는 느낌. 마치 붉은 번개가 처음으로 제 갈 길을 아는 것처럼. 늘 제멋대로 튀던 그 성질머리가, 이번엔 얌전히 리듬을 따라가고 있었다.
휘익-!
손끝에서 옅은 붉은 빛이 리듬을 따라 흘러나왔다. 나는 숨을 멈췄다. 이게 뭐지.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는데, 무서워서가 아니라 뭔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흥분이었다. 붉은 빛이 손끝에서 팔목을 타고 올라가는 그 느낌이,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마치 오랫동안 삐뚤어져 있던 뭔가가 딱 맞아 들어가는 느낌.
음악이 끝나고 빛도 사라졌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내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아직도 미세하게 저릿저릿했다.
이게 뭐였을까.
다시 해보려고 음악을 처음부터 틀었다.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리듬으로 몸을 움직였다. 근데 안 됐다. 아무리 리듬을 타도, 아무리 몸에 힘을 빼도 그 느낌이 다시 오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반복했는데도 손끝은 그냥 손끝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재능은 무슨. 방금 그것도 사고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짐을 챙겼다. 가방 지퍼를 올리다가 문득, 아까 그 짧은 순간이 진짜였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이럴 때 누가 옆에 있어서 확인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없었다. 늘 그랬듯이.
짐을 다 챙기고 연습실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문에 달린 작은 유리창 너머로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직원인가 했다. 그런데 발걸음이 멈춰 있었다. 너무 오래.
처음 보는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딱 봐도 회사 관계자 느낌은 아니었다. 노바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데, 그 남자한테는 그런 게 없었다. 대신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는데, 화면 불빛이 어두운 복도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그 남자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뭔가를 손에 든 태블릿에 적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발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원래 거기 없었던 사람처럼.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누구지.
결계 방어청 쪽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기획사에서 온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방금 그 붉은 빛을 본 건가.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좋은 예감은 절대 아니었다. 손끝에 남아 있던 저릿한 감각이, 갑자기 소름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