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메인 무대팀 연습실은 우리 팀 연습실보다 세 배는 넓었다. 아니, 세 배가 아니라 다섯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문을 열자마자 확 트인 공간에 압도돼서 순간적으로 숫자 감각이 사라졌다.
벽 한 면이 전부 거울이었고, 그 거울마다 익숙한 얼굴들이 비쳤다. TV에서만 보던 얼굴들. 화면 속에서나 존재하던 사람들이 지금 내 눈앞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물병을 나눠 마시고,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게 실화냐.
나는 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들어가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 몰랐다. 학교 다닐 때 전학 첫날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때는 최소한 담임이 손을 잡고 데려가 주기라도 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들어가야 하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나보다 몇 배는 오래 이 바닥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냥 어제 사고 치듯 마력을 튄 신인이었다.
'..그냥 들어가자. 안 들어가면 더 이상해.'
억지로 발을 뗐다.
"어, 왔네."
누군가 먼저 알아채고 말을 걸었다. 이클립스 메인 보컬, 유리안 언니였다. 웃는 얼굴이 카메라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친절했다. 화면에서는 살짝 도도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실제로는 눈웃음이 짙었다.
"안, 안녕하세요. 이소원입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너무 각 잡힌 인사였는지 몇몇이 웃음을 참았다. 아, 이거 너무 신입 사원 같았나. 그냥 고개만 살짝 숙여도 됐을 걸.
"편하게 해도 돼. 우리 이제 같이 무대 서는 사이인데."
그렇게 말해줘서 조금 숨통이 트였다. 진짜였다. 몸에 들어갔던 긴장이 살짝 풀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편안함은 딱 삼 초를 못 갔다.
연습실 안쪽, 창가에 기대 서 있던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걸음걸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구나. 한유나였다.
TV에서 보던 것보다 실제가 훨씬 압도적이었다. 화면은 저 사람의 절반도 못 담아내고 있었던 거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몸이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걸어오는 것만으로 공간을 다 잡아먹는 느낌이었다. 저게 소위 말하는 '아우라'인가. 아니면 그냥 내가 쫄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
"네가 이소원이야?"
존댓말이 아니었다. 나보다 다섯 살 위인데,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다 조사해왔을 테니까.
"네, 맞습니다."
또박또박,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갈라지면 그것도 우스운 그림이었을 거다.
"방어청에서 너 지목했다는 거, 진짜야?"
"..네."
한유나는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마치 신인 오디션 채점표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천천히. 그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몸이 굳었다. 여기서 자세를 바꾸면 더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솔직히 말해봐.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방어청이 왜 너한테 관심을 가져."
말이 안 나왔다. 어제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냥 리듬에 몸을 맡겼는데 마력이 튀었다고, 그렇게 말하면 누가 믿어줄까. 나조차도 아직 못 믿고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냥 연습하다가."
"연습하다가 뭐."
한유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눈빛, 카메라에도 몇 번 잡혔던 적이 있었다. '한유나 무표정 레전드' 같은 제목으로. 실제로 보니까 그 무표정이 훨씬 더 서늘했다.
"..감이 왔어요. 순간적으로."
한유나가 피식 웃었다. 비웃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갔다. 웃는 건 웃는 건데,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도통 모르겠는 웃음이었다.
"감이라. 재밌네."
그렇게 말하고는 그냥 돌아섰다. 대화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뭐야, 저 사람.'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겉으로 뱉었으면 큰일 났을 거다. 여긴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신인이 메인 무대팀 연습실에 처음 온 날, 메인 댄서한테 저런 취급을 받는 게 정상인지 아닌지도 판단이 안 됐다. 그냥 얼어 있었다.
유리안 언니가 옆으로 슬쩍 다가와서 작게 속삭였다.
"저 애 원래 저래. 신경 쓰지 마."
"..아, 네."
원래 저렇다는 말이 위로가 되는 건지 아닌 건지도 헷갈렸다. 그래도 나쁜 의도는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 그러면 오늘 하루를 못 버틸 것 같았으니까.
그때 연습실 문이 다시 열리며 방어청 담당자가 들어왔다.
"예정되어 있던 마력 적합성 재검사는 최근 발생한 이상 현상으로 인해 잠정 연기합니다. 추후 일정은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짧은 안내를 끝낸 담당자는 곧바로 연습실을 나갔다.
연습이 시작됐다. 포메이션도 다르고, 합도 다르고, 무엇보다 이 사람들이 뿜어내는 마력의 밀도가 달랐다. 우리 팀 연습실에서 느꼈던 그 긴장감이 여기서는 배로 뛰었다. 다들 동작 하나하나에 마력을 얹는 게 익숙해 보였다. 나만 자꾸 박자를 놓쳤다.
하나, 둘, 셋에 손을 뻗어야 하는데 나는 넷에 뻗었다.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오른쪽으로 발이 나갔다. 옆 사람과 부딪힐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입 밖으로는 못 냈다. 안무 중간에 그런 소리 내면 흐름이 더 끊기니까.
퍼어억-!
손끝에서 튄 붉은 번개가 아무 데도 못 가고 그냥 바닥에 처박혔다. 몇몇이 흠칫 놀랐다.
바닥에 자그마한 자국이 남았다. 다행히 아무도 안 다쳤다. 근데 그 순간, 연습실 전체의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가 다시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게 더 무서웠다. 대놓고 뭐라 하는 것보다, 저렇게 슬쩍 눈치 보고 다시 딴짓하는 게.
"쟤 좀 위험한 거 아니야?"
누군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안 들리는 척했다.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척하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어였다.
'..위험한 거 저도 알아요. 그래서 방어청에서 부른 거잖아요.'
속으로만 대답했다. 겉으로 뱉으면 그건 또 다른 사고를 치는 거였다.
동작을 다시 처음부터 맞췄다. 이번엔 조금 나았다. 아니, 나아진 것 같았는데 사실은 그냥 힘을 아예 빼고 흐름만 따라간 거였다. 마력을 안 쓰면 안전하니까. 근데 그렇게 하면 또 안무 자체가 흐트러졌다. 이클립스 무대는 화려한 마력 이펙트가 핵심인데, 나만 그 이펙트가 빠진 채로 몸만 움직이고 있으니 전체 그림이 이상해졌다.
거울로 그 모습을 봤다. 다른 사람들은 팔을 뻗을 때마다 빛이 따라 붙고, 발을 구를 때마다 잔상이 남는데, 나는 그냥 맨몸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게 유독 눈에 띄었다. 있어야 할 게 없는 자리는, 있는 것보다 더 티가 나는 법이다.
연습이 끝나고 다들 빠져나갈 때, 나는 구석에서 물병을 정리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다. 다들 먼저 나가고 나서 나가고 싶었다. 그 편이 덜 부끄러웠으니까.
그런데 한유나가 다시 다가왔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와."
"..네?"
갑자기 훅 들어온 말에 물병을 놓칠 뻔했다.
"연습 더 필요하잖아, 너."
그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명령인지 제안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어조. 근데 그 말 자체는, 이상하게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나를 아예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니까.
"네. 오겠습니다."
한유나는 대답도 안 하고 그냥 나가버렸다. 뒷모습마저도 뭔가 결론을 이미 내린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 나를 도와주려는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순수하게 팀 성적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내가 못하는 게 짜증 나서 눈에 밟히는 걸 수도 있고. 근데 뭔가 확실한 건, 저 사람이 나를 그냥 지나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는 거다.
연습실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거울을 봤다. 내 표정이 낯설었다. 평소보다 창백했고, 눈 밑에는 오늘 하루의 피로가 그대로 얹혀 있었다. 이게 하루 새 얼굴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날 밤, 방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근육이 아픈 게 아니라 신경이 아픈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움직였더니 그런 식으로 지치는구나 싶었다.
핸드폰을 켰다가 또 그 기사를 봤다. 이번엔 내 이름이 박혀 있었다.
[단독] '이클립스' 신규 센터, 신인 이소원으로 확정. 이례적인 발탁에 팬덤 반응 '갈려'
갈려. 딱 맞는 표현이었다. 벌써부터 갈리는 기분이었으니까.
기사 아래 댓글창을 열어볼까 하다가 관뒀다. 안 봐도 뻔했다. 누구는 응원할 거고, 누구는 왜 갑자기 저런 애가 센터냐고 할 거고. 굳이 그걸 눈으로 확인해서 오늘 하루 쌓인 피로 위에 더 얹을 필요는 없었다.
핸드폰 화면을 끄고 천장을 바라봤다. 내일 이 시간에 또 그 연습실에 가야 한다. 한유나 앞에서, 또 그 시선들 속에서, 또 그 붉은 번개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도 모른 채 서 있어야 한다.
'..잘할 수 있을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눈을 감았다. 내일이 오는 게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기대가 됐다. 그 이상한 감정이 뭔지도 모른 채로, 나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