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번개가 멈춘 무대

4화

다음 날, 약속한 시간보다 십 분 일찍 연습실에 도착했다. 십 분이나 일찍.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평소라면 오 분 전에 뛰어들어와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헐떡거리는 게 내 스타일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눈이 일찍 떠졌다. 어제 한유나가 했던 말이 밤새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마력 컨트롤이 진짜 개판이더라.' ..그거, 틀린 말은 아닌데요. 그래도 좀 살살 말해줄 수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발걸음은 이미 연습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웃긴 일이었다. 혼나는 게 두려우면서도, 그 사람 앞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문을 열자 한유나가 이미 와 있었다. 혼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대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보였다. 조명 아래 화려하게 서 있던 그 사람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바닥에 다리를 뻗고 앞으로 몸을 숙이는 지금의 저 사람이 같은 인물이라는 게 잘 안 믿길 정도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는 손짓 하나가, 어제 무대 위에서 마력을 다루던 그 손과 같은 손이라니. "일찍 왔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던진 말이었다. 등 뒤에 눈이 달렸나. 아니면 발소리로 안 건가. "네..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라니.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나온 존댓말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한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걸어왔다. 스트레칭을 마친 몸에서 나는 가벼운 열기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느껴졌다. "어제 봤는데, 너 마력 컨트롤이 진짜 개판이더라." 직설적이었다. 너무 직설적이라서 아무 대꾸도 못 했다. 어제도 같은 말을 들었는데, 오늘 또 들으니 신기하게도 데미지가 두 배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아니라, 원인을 알아야지. 앉아봐." 바닥에 마주 앉았다. 차가운 마루 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엉덩이로 전해졌다. 한유나는 팔짱을 끼고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꼭 엑스레이 같아서, 나는 애먼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너 마력, 감정에 반응하는 타입이지?" "..네? 그걸 어떻게." "딱 봐도 알아. 긴장하면 튀고, 편해지면 숨고. 감정 파형이 마력이랑 같이 요동치는 거야." 그 말이 정확했다. 정말 정확했다. 나조차 정리 못 했던 걸 저 사람은 한 문장으로 딱 짚어냈다. 몇 년을 훈련받아도 아무도 저렇게 명쾌하게 설명해준 적이 없는데. 이 사람, 뭐야. 진짜 뭐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관찰력이지. 그리고.." 말을 하다가 잠깐 멈췄다. "..겪어봐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그때는 몰랐다. 그냥 넘어갔다. "방법이 있어요?" "있지. 근데 쉽진 않아." 한유나가 손을 내밀었다. "손 줘봐."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면서 순순히 손을 뻗는 내 자신이 좀 웃기긴 했다. 평소 같으면 낯선 사람 손도 안 잡는데, 이상하게 저 사람 앞에서는 거절이라는 옵션이 안 떠올랐다. 손끝이 맞닿는 순간,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저 사람의 마력은 정말 안정적이었다. 파도처럼 잔잔하게, 어떤 요동도 없이. 마치 오래된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 어떤 급류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잔잔하게, 그러면서도 분명한 힘을 가지고 흐르는 느낌이었다. "느껴져? 이게 안정된 마력이야.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감정을 리듬에 태우는 거야." "리듬에.. 태운다고요?" "어. 숨을 쉬는 것처럼. 4박에 들이쉬고, 4박에 내쉬어. 그 사이에 마력을 얹어. 감정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두는 거야." 말은 쉬웠다. 근데 하는 건 전혀 쉽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사이에 마력을 얹으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밥 먹을 때 반찬 얹으라는 소리도 아니고. 몇 번을 시도해도 손끝에서 붉은 빛이 제멋대로 튀었다. 예전 야구부에서 투수로 공을 던질 때 감각을 떠올려 봤지만, 마력은 공과는 전혀 달랐다. 뜨윽-! "어.. 미안해요." 한유나 손등에 작은 스파크가 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괜찮아. 처음부터 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처음 보는 다정함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부드럽게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언니는 어떻게 배웠어요?" 한유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봤다. 그 흔들림 속에 뭔가 있었다. 오래된 상처 같은 것. "나도 처음엔 개판이었어. 지금 너보다 더." "진짜요?" 믿기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서 파도처럼 잔잔한 마력을 뽐내고 있는 이 사람이, 나보다 더 개판이었다니. "믿기 싫으면 말고." 피식 웃는 그 얼굴이 처음으로 편하게 느껴졌다. 그 웃음이 뭔가, 지금까지 봤던 어떤 웃음보다도 진짜 같았다. "그때는 누가 가르쳐줬어요?" "..아무도. 혼자 깨달았어." 그 대답에 뭔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한유나 표정이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며칠간 연습이 이어졌다. 아침에 만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손을 맞대고 호흡을 맞추고, 마력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매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손끝의 붉은 번개가 리듬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뭔가 달라지고 있었다. 한번은 마력이 튀지 않고 정확히 4박에 맞춰 흘러나간 순간이 있었다. 그때 한유나가 씩 웃으며 "어, 그거야"라고 짧게 말해줬는데, 그 짧은 한마디가 며칠간의 노력을 다 보상해주는 것 같았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단한 거였나.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그런 순간은 드물었다. 열 번 시도해서 한 번 정도. 나머지 아홉 번은 계속 손끝에서 붉은 빛이 제멋대로 뛰쳐나갔다. 그럴 때마다 한유나는 짜증 한 번 안 내고 "다시"라고만 말했다. 그 무심한 듯한 반복이, 오히려 더 믿음직스러웠다. "이번 주 토요일 라이브, 규모가 커. 관객만 오만 명 넘게 들어와." 한유나가 연습이 끝날 무렵 말했다. 수건으로 목덜미의 땀을 닦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투로. "오만 명이요?" 숫자가 실감이 안 났다. 오만 명이라니. 내가 살던 동네 인구보다 많을 것 같은데. "어. 방어청 결계 시스템도 그 규모에 맞춰 재조정됐어. 우리가 실수하면.. 그냥 무대 실수로 끝나는 게 아니야." 그 말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무대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건, 그러니까 실제로 뭔가가 터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마력이 폭주하고, 결계가 흔들리고. 상상만으로도 손끝이 떨렸다. "저 잘할 수 있을까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몰라. 근데 하나는 확실해." "뭔데요?" "네가 도망가면, 나머지 넷이 다 흔들려. 그러니까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그 말이 무섭게도, 위로가 됐다. 도망가지 말라는 말이 왜 위로가 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어쩌면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알겠어요. 도망 안 가요." "그래야지." 한유나가 짐을 챙기며 자리를 정리했다. 나도 따라 일어나서 연습실 불을 끄고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하늘엔 별 하나 없이 도시의 불빛만 가득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뉴스 알림이 하나 떴다. [결계 방어청] 최근 일주일간 소규모 게이트 발생 빈도 평년 대비 300% 급증. 당국, 원인 파악 중.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화면을 끄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서도, 방금 본 숫자가 계속 눈앞에 떠다녔다. 300%라니. 평소보다 세 배나 많이 게이트가 열렸다는 소리인데, 그게 하필 이번 주에, 오만 명이 모이는 라이브를 앞두고 벌어졌다는 게. ..그냥 우연이겠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결국 틀린 생각이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