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아침,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기가 다르다는 걸 문고리를 잡는 순간부터 느꼈다. 평소라면 누가 들어오든 신경도 안 쓰는 애들이, 오늘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다시 내렸다. 그 타이밍이 어색할 정도로 정확했다.
다들 나만 쳐다봤다. 정확히는 나를 보는 척하면서 안 보는 척하는, 그 애매한 시선들. 이거 뭐야.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뭐 묻었나. 손으로 얼굴을 슥 문질러봤는데 딱히 묻은 것도 없었다.
"소원아."
서은결이 다가와서 팔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은결이는 나랑 같이 연습생 시절을 버틴 유일한 친구다. 재능은 없는데 근성 하나로 여기까지 버텨온 애. 그 근성 때문에 나는 은결이가 뭔가 심각한 얼굴을 하면 진짜로 심각한 일이라는 걸 안다.
"뭔데."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나름 신경 썼는데, 은결이 눈빛을 보니 이미 실패한 것 같았다.
"매니저님이 너 찾으셔. 급하게."
"왜?"
"몰라, 나도. 근데 표정이.. 좀 이상했어."
"이상했다니 뭐가."
"그냥..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구분이 안 되는 표정이었어."
그 말이 제일 무서웠다. 나쁜 일이면 그냥 각오하면 되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는 건 각오를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니까.
대표실로 가는 복도가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평소엔 열댓 걸음이면 끝나는 복도인데, 오늘은 발걸음 하나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잘리는 건가. 정말로 잘리는 건가. 어제 연습실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있었던 건 알고 있었다. 그 파형인지 뭔지, 나도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 몸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던 그 순간. 그게 문제가 된 건가. 사고를 친 건가.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뭘 어떻게 사고를 쳤다는 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만 계속 재생됐다.
문 앞에 서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노크했다.
"들어와."
대표님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예상 밖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 대표님, 강 코치님, 그리고 어제 연습실 밖에서 봤던 그 정장 남자.
정장 남자를 다시 보니 확실히 낯이 익었다. 어제 창밖에 서서 우리 연습을 지켜보던 그 사람.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거나, 아니면 다른 팀 관계자인 줄 알았는데.
"앉아."
대표님이 말했다. 목소리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저 사람이 저렇게 긴장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우리 대표님은 방송 사고가 나도 태연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서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의자에 앉았다. 무릎이 붙지 않고 자꾸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눌러 붙였다.
정장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결계 방어청, 마력 관측관.
'네? 그게 뭔 소리예요.' 속으로만 되물었다. 겉으로는 그냥 눈만 깜빡였다. 방어청이라니. 그거 뉴스에서나 나오는 이름 아닌가. 결계, 마력 관측, 이런 단어들이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무지 감이 안 왔다.
"이소원 씨. 어제 연습실에서 마력 파형이 잡혔습니다."
그 말을 하는 남자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침착했다. 마치 늘 있는 일을 보고하듯이. 근데 그 침착함 뒤에서 뭔가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게 보였다. 눈빛이 너무 반짝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결계 시스템과 완벽하게 동조하는 파형이었습니다. 저희 쪽 관측 이래로 이런 파형은 처음입니다."
동조. 그 단어가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나는 그냥 연습하다가 숨이 차서 잠깐 멈춰 섰던 것뿐인데. 뭐가 동조가 됐다는 건지. 내가 뭘 했다는 건지.
대표님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방어청에서 정식으로 요청이 들어왔어. 이번 주 토요일, 도심 라이브 공연 있잖아. 거기 센터로."
숨이 턱 막혔다.
"저.. 센터요?"
내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져서 나왔다. 센터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겁게 들린 적이 없었다. 데뷔조에도 못 들어가서 백댄서로 몇 년을 버틴 내가, 갑자기 센터라니.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다.
"한유나가 원래 센터였는데, 최근 무리한 스케줄로 마력 소모가 심해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서브 센터가 필요하대. 방어청에서 너를 지목했어."
말이 안 됐다. 어제 그 짧은 순간, 그거 하나로. 십 초도 안 됐을 거다. 아니, 오 초? 그 오 초짜리 순간이 지금 이 방에서 벌어지는 이 난리를 다 만들어낸 거라니.
"저.. 저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내 말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관측관이 살짝 웃었다.
"아무것도 안 하신 게 맞습니다. 그게 더 중요한 겁니다.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자연 동조라는 뜻이니까요."
훈련되지 않았다는 말이 왜 칭찬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어리둥절했다.
강 코치님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강 코치님은 원래 나랑 눈을 잘 안 마주치는 사람이었다. 늘 다른 애들 쪽을 보거나, 서류를 보거나, 뭔가 다른 데 시선을 두고 나한테 지시만 던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나를 똑바로 보고 있으니까 그게 더 낯설고 무서웠다.
"이소원. 네가 그동안 제대로 못했던 거, 나도 안다."
그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안다는 걸 굳이 이 타이밍에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거 지금 안 해도 되는 말인데요.' 속으로만 삼켰다.
"근데 방어청이 지목한 이상, 우리한테 선택권이 없어."
선택권이 없다는 말이 그렇게 무섭게 들릴 줄 몰랐다. 나는 늘 선택권이 없는 쪽에 서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 방향이 완전히 반대였다. 못해서 밀려나는 게 아니라, 원해서 밀려 들어가는 상황. 근데 그게 더 무서웠다. 못해서 밀려나는 건 익숙했다. 이건 처음이었다.
"저.. 언제부터 준비하면 되나요."
겨우 그 말 한마디만 나왔다. 대표님이 살짝 웃었는데, 그 웃음이 위로인지 압박인지 구분이 안 갔다.
"오늘부터. 지금부터 메인 무대팀이랑 합류해."
지금부터. 그 말이 제일 무서웠다.
대기실로 돌아오자 은결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
"뭐래?"
나는 한참 말을 못 했다. 그냥 명함을 내밀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는데 은결이가 그걸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다.
은결이 얼굴이 하얘졌다. 명함을 받아 들고, 앞뒤로 몇 번을 돌려보더니, 결계 방어청이라는 글자를 소리 없이 입으로 따라 읽었다.
"야.. 이거 진짜야? 너가 이번 라이브 센터로 들어간다는 거야?"
"어.. 응."
"미친, 축하한다고 해야 되나 뭐라고 해야 되나."
"나도 몰라."
정말 몰랐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도망가야 하는 건지. 은결이는 명함을 다시 나한테 돌려주면서 한참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 부러움과 걱정이 반반씩 섞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게 더 미안했다. 몇 년을 같이 버틴 애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나를 보는데, 나는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는 상태였으니까.
"근데 그 파형이라는 거, 그게 뭔데?"
"몰라, 나도 그게 뭔지 몰라. 그냥.. 어제 잠깐 이상했던 거 있잖아. 그게 뭔가 대단한 거였던 것 같아."
"너 그때 그냥 숨차서 멈춘 거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은결이가 픽 웃었다. 웃음에 힘이 없었다.
"세상 진짜 불공평하다. 나는 십 년을 갈려도 안 되던 게, 너는 오 초 만에 되네."
그 말이 웃자고 한 말인 걸 알면서도, 가슴 어딘가가 따끔했다.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웃는 것도 어색했다.
그날 오후 내내 메인 무대팀 회의실을 들락거렸다.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계속 겉도는 느낌이었다. 다들 나를 신기한 물건 보듯이 쳐다봤다. 누군가는 대놓고 "저 애가 걔야?" 하고 옆 사람한테 물었고,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못 들은 척하는 것도 이제 나름 익숙해진 기술이었다.
한유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들 그 얘기는 조심스럽게 피했다. 왜 없는지, 상태가 어떤지, 아무도 나한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서브 센터로 준비만 하시면 됩니다" 하는 사무적인 말들만 오갔다.
그날 밤, 인터넷 기사가 하나 떴다. 아직 내 이름은 없었지만, 벌써 뭔가 부풀려진 느낌이었다.
[속보] 이클립스, 토요일 대형 라이브 무대에 '깜짝 센터 교체' 예고돼. 관계자들 침묵, 이유는 밝혀지지 않아.
댓글창을 열어봤다가 바로 닫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첫 댓글이 "한유나 무슨 일 있나?"였고, 두 번째가 "설마 사고 난 거 아니야?" 였다. 세 번째부터는 아예 못 읽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쳐다봤다. 이 방 천장은 몇 년째 그대로인데, 오늘 밤은 이상하게 낯설게 보였다.
창밖 어둠만 깊어졌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그 오 초짜리 순간이 재생됐다. 그때 내가 뭘 느꼈는지, 뭘 봤는지 다시 떠올려보려 해도 잘 잡히지 않았다. 그냥 뜨거웠다는 것, 그리고 뭔가가 내 안에서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게 다시 될까. 토요일에 그대로 될까.'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더 무서워졌다. 되든 안 되든,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뒤였다.
다음 날 아침, 메인 무대팀 합류 통지서가 도착했다. 그 종이 한 장이 내 발을 다른 세계로 밀어넣고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는 손끝이 떨렸다. 종이 위에 적힌 내 이름 세 글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소원. 분명 내 이름인데, 어쩐지 다른 사람의 이름표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 맨 아래, 작은 글씨로 붙어 있는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방어청 협조 요청 – 토요일 공연 전, 별도 마력 적합성 재검사 진행 예정]
재검사.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어제까지의 안도감이 순식간에 다시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