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해고당했으니 신이 되겠다

2화

종로 일대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밀치며 한 방향으로 몰려들었다. 경찰차 사이렌이 겹겹이 울렸다. 삐요, 삐요. 빨간 경광등이 건물 유리창마다 번쩍였다. 통제선 너머로 검은 소용돌이가 여전히 하늘을 갈랐다. 크기가 웬만한 아파트 한 채는 될 법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고 소용돌이를 찍기 바빴다. 와, 저거 진짜 실화냐. 누군가 옆에서 소리쳤다. 이도현은 그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인파를 헤치고 통제선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저게 뭔지 알아야 나중에 뭐라도 써먹지. 기자도 아니면서 습관처럼 드는 생각이었다. 선 넘으시면 안 됩니다. 경찰이 팔을 벌려 막았다. 표정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발밑에서 뭔가가 흔들렸다. 우웅. 지진 같은 진동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못 챈 듯 그대로 서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든 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도현만이 발밑의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지, 이거. 나만 느끼는 건가. 아니면 저놈들이 다 둔한 건가. 발바닥으로 올라오는 떨림이 점점 커졌다. 소용돌이가 갑자기 넓어졌다. 검은 공간이 순식간에 통제선을 삼켰다.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으아악!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도망쳤다. 누군가 넘어졌고, 그 위로 또 누군가가 넘어졌다. 이도현은 몸을 돌려 뛰려 했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안개가 다리부터 감싸 올라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냥 존재감이 없는 무언가였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손으로 안개를 쳐냈지만 소용없었다. 안개는 살아있는 것처럼 다리를 타고 허리까지 올라왔다. 시야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소리도, 빛도 모두 사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도현은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붉은색 하나로 뒤덮인 하늘이었다. 땅은 갈라진 바위투성이였다. 발밑에 밟히는 돌마다 균열이 나 있었다. 어디선가 짙은 쇠 냄새가 났다. 피 냄새와 비슷했지만 더 무거웠다. 여기가 어디야. 혼잣말을 뱉는 순간, 앞쪽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키가 얼추 삼 미터는 되어 보였다. 어깨에는 청동으로 된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갑주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붉은 하늘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손에는 사람 몸통만 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날 부분만 봐도 웬만한 승용차보다 클 것 같았다. 두 눈에서 붉은 광채가 뿜어졌다. 인간이 여기까지 들어왔군. 목소리가 땅을 울렸다. 발밑의 바위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이도현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무릎 관절이 저절로 꺾이려 했다. 하지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인지, 그냥 겁이 나서 몸이 굳어버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십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끝까지 말은 마쳤다. 거대한 존재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관심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미묘한 반응이었다. 치우. 전쟁을 다스리는 자다. 짧은 대답이었다. 이도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치우천왕. 신화 속 그 이름이잖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나 보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 말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존재감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목이 조여왔다. 공기가 무겁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이도현은 처음 알았다. 왜 인간이 이곳까지. 치우천왕이 도끼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쿠웅. 땅이 통째로 흔들렸다. 바위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도현은 몸이 붕 떠올랐다가 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으윽. 갈비뼈에 통증이 밀려왔다.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도현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쓰러진 채로 있으면 그대로 끝날 것 같다는 감이 왔다. 그냥 끌려 들어왔습니다. 제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힘겹게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 떨림이 섞였지만 문장을 완성했다. 치우천왕이 이도현을 내려다봤다.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마치 벌레를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네 몸에서 냄새가 난다. 죽음의 냄새다. 뭐라고요. 곧 죽을 몸이라는 뜻이다. 치우천왕의 도끼가 다시 들렸다. 날 끝에서 붉은빛이 반사되어 이도현의 얼굴을 스쳤다. 이도현은 온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런 생각이 스쳤다. 서울에서 소용돌이 구경하다가 이런 데 끌려와서 죽는다니. 말이 되냐, 이게. 하지만 다리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발이 먼저 움직였고, 머리는 뒤늦게 그 사실을 인식했다. 죽는 건 상관없는데, 이유는 알고 싶습니다. 이도현이 말했다. 목소리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말 끝에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치우천왕이 도끼를 든 손을 멈췄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바람 한 줄기가 붉은 하늘 아래로 지나갔다. 호오.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땅바닥까지 진동시키는 웃음이었다. 버릇없는 인간이군. 말투에 재미와 살기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이도현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그저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끼가 그대로 이도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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