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부터 훈련장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바위산 곳곳에 붉은 결정들이 박혀 있었다.
바위 틈마다, 갈라진 틈마다 붉은빛이 스며 나왔다.
마치 산 전체가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이게 뭡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목소리에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영기석이다.
네 몸에 강제로 힘을 주입할 것이다.
치우천왕이 짧게 설명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뻗었다.
강제로, 라니.
그 단어가 좋게 들릴 리 없었다.
파직.
붉은 전류 같은 것이 이도현의 몸을 관통했다.
으아아아악!
비명이 바위산 전체에 울렸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따로 타는 느낌이었다.
삐빅.
[강제 각성 시도 중]
[성공률 : 12%]
숫자를 본 이도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십이 퍼센트라뇨.
이게 무슨 도박판입니까.
낮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실패해도 어차피 몸은 재생시켜줄 테니까.
말투가 너무 태연했다.
이도현은 그 태연함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잖아요.
이도현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파직.
두 번째 전류가 몸을 뚫고 지나갔다.
으윽.
삐빅.
[각성 실패]
[신체 손상도 68%]
이도현은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이 타는 듯한 통증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런 걸 몇 번이나 더 해야 되는 겁니까.
성공할 때까지.
치우천왕의 대답은 짧고 냉정했다.
망설임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이도현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억지로 힘을 줬다.
죽기야 하겠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음 전류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그 몇 초가 제일 끔찍했다.
파직.
삐빅.
[각성 실패]
[성공률 : 15%]
파직.
삐빅.
[각성 실패]
[성공률 : 19%]
실패가 반복될 때마다 숫자가 조금씩 올라갔다.
하지만 몸은 그만큼 더 부서져갔다.
살가죽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도현은 몇 번이나 정신을 놓았다.
그럴 때마다 붉은 빛이 몸을 감싸며 상처를 되돌렸다.
삐빅.
[신체 재생 완료]
재생되고 나면 다시 전류가 날아왔다.
그 과정이 며칠, 몇 주 동안 반복됐다.
아침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안 됐다.
치우천왕은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고, 이도현도 묻지 않았다.
이도현은 시간 감각을 잃어갔다.
오늘로 몇 번째지.
세는 것도 포기한 지 오래였다.
백 번쯤 셌을 때부터는 그냥 숫자가 의미 없어졌다.
그저 버티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만 반복했다.
몸이 재생될 때마다 근육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는 걸 느꼈다.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걸지도.
왜 안 그만두나.
어느 날 치우천왕이 물었다.
전류를 쏘기 전, 처음으로 이유를 물은 것이었다.
이도현은 잠깐 숨을 골랐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그만두면 여기서 죽는 거잖아요.
죽는 게 무섭나.
무섭죠.
근데 그것보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는 게 더 싫어서요.
회사에서 쫓겨날 때도 그랬다.
아무 저항 없이 밀려나는 게 싫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발버둥은 칠 수 있으니까.
치우천왕이 잠시 이도현을 바라봤다.
표정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말없이 손을 들었다.
파직.
이번 전류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온몸이 뜨거운 게 아니라, 뭔가 안쪽부터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뼈가 아니라 뭔가 더 깊은 곳,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감각이었다.
삐빅.
[각성 성공률 급상승 감지]
[생의지 반응 : 최대치]
낯선 문구가 뜨는 순간, 이도현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바위산 전체가 그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뭐야, 이거.
치우천왕의 눈이 처음으로 크게 벌어졌다.
수백 년을 살아온 존재가 놀라는 얼굴은 흔치 않았다.
삐빅.
[각성 성공]
[속성 : 미확인 - 재측정 필요]
이도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치우천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반응은 처음 보는군.
마지막으로 들린 말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도현은 낯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천장이 낮고 조명이 어두웠다.
어디선가 향 비슷한 냄새가 났다.
치우천왕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일어났나.
여기가 어딥니까.
이도현이 몸을 일으키려다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다.
몸은 멀쩡해 보였지만 뼛속 깊은 곳이 아직도 저릿했다.
네 몸에 새로운 힘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직 불완전하다.
치우천왕이 손짓하자 창이 떠올랐다.
삐빅.
[각성 속성 : 파쇄(불완전)]
[제어 가능 범위 : 0%]
이도현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제어가 안 되는 힘이라니.
이게 무슨 축복입니까, 저주지.
그런 뜻이다.
지금 이대로 두면 언젠가 네 몸이 먼저 터진다.
치우천왕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장난기 하나 없는 어조였다.
이도현의 등줄기에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앞으로 백 년.
제어법만 배우는 데 그 정도는 걸릴 것이다.
백 년이라고요.
이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시간이면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이 죽고, 자신이 알던 세상 자체가 사라질 시간이었다.
여기서 백 년을 더 버텨야 한다는 겁니까.
치우천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 붉게 물든 하늘을 가리켰다.
그 하늘 저편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윤곽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거대하고 어두운 그림자였다.
저게 뭡니까.
이도현이 물었지만 치우천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늘을 응시하는 눈빛이 조금 전보다 더 무거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