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도현은 눈을 감았다.
죽는구나.
마지막 생각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살면서 겪은 온갖 순간들이 스쳐 지나갈 거라던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하얗기만 했다.
하지만 도끼는 그의 머리 앞에서 딱 멈췄다.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바람이 이도현의 앞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왜 안 도망쳤나.
치우천왕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거대한 체구, 붉은 뿔, 도끼를 쥔 손등에 새겨진 문양.
전설 속에서나 봤던 형상이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이도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도끼 날이 코앞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날 위로 서늘한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도망칠 다리가 없어서요.
이도현이 대답했다.
실제로 다리는 미리 풀려 있었다.
일부러 버틴 게 아니라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릎이 후들거리다 못해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죽을 것 같았다.
버틴 것처럼 보이는 게 낫겠지.
계산이 빠르게 돌았다.
목숨이 걸린 순간에 머리는 이상하게 잘 돌아갔다.
치우천왕이 도끼를 거뒀다.
캉.
도끼가 바닥에 부딧혔다.
그 진동이 발밑까지 타고 올라왔다.
인간, 이름이 무엇인가.
이도현입니다.
이도현.
치우천왕이 그 이름을 곱씹었다.
입 안에서 굴리듯 두 번을 더 되뇌었다.
네 목숨은 오늘 여기서 끝날 것이었다.
하지만 흥미가 생겼다.
이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입을 놀리다 죽을 것 같았다.
숨소리도 최대한 줄였다.
제안을 하나 하지.
내 밑에서 수련해라.
살아남으면 목숨은 붙여주마.
조건이 이상하게 들렸다.
수련이라니, 그것도 방금 자신을 죽이려던 존재 밑에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거절할 처지는 아니었다.
거절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조건이 그게 답니까.
이도현이 물었다.
습관처럼 나온 되받아치기였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입이 먼저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치우천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버릇없다더니, 뭘 더 바라나.
목소리에 서늘한 기운이 다시 섞였다.
이도현은 아차 싶었다.
방금 내뱉은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럼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이도현이 재빨리 답을 바꿨다.
죽는 것보다 나은 선택은 없었다.
자존심 따위는 이 상황에서 사치였다.
치우천왕이 손을 들었다.
손끝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빛이 실처럼 뻗어 나와 이도현의 이마에 닿았다.
삐빅.
[이도현의 잠재력을 측정합니다.]
갑작스러운 알림음이 울렸다.
이도현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뭐야, 이거 시스템 창이잖아.
게임에서나 보던 형태였다.
파란 테두리에 하얀 글자, 심지어 진동 효과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놀랄 여유도 없었다.
치우천왕도 그 창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었다.
삐빅.
[재능 판정 결과 : 최하급]
[신체 등급 : 최하급]
[속성 친화력 : 없음]
하나씩 뜨는 문구마다 이도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글자 하나가 뜰 때마다 심장이 한 칸씩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최하급, 최하급, 없음.
이렇게까지 총체적 난국일 수가 있나.
이도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하나라도 평범이었으면 위로가 됐을 텐데.
치우천왕도 창을 들여다보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 미간이 좁혀지는 폭이 심상치 않았다.
이런 재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군.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이도현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 그러니 할 말도 없었다.
그럼 여기서 그냥 죽는 겁니까.
이도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신경을 썼다.
기다려라.
아직 다 보지 않았다.
치우천왕이 짧게 대답하며 손을 다시 뻗었다.
삐빅.
[특이 항목 발견]
[생의지 : 측정 불가 (한계 초과)]
마지막 항목에서 알림음이 조금 다르게 울렸다.
평소보다 길고 낮은 음이었다.
치우천왕의 눈이 그 문구에 오래 머물렀다.
도끼를 쥐고 있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측정 불가라니.
치우천왕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도현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까지의 비웃음이 사라지고 뭔가 다른 게 그 얼굴에 스쳤다.
이게 뭔데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네 목숨줄이 유난히 질기다는 뜻이다.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말투에 아까와 다른 온도가 섞여 있었다.
이도현은 그 미묘한 차이를 느꼈다.
확실히, 방금 전까지의 비웃음과는 결이 달랐다.
뭔가 있긴 있나 보네.
속으로 생각하며 표정은 그대로 무덤덤하게 유지했다.
표정 관리만큼은 자신 있었다.
치우천왕이 손을 거뒀다.
붉은 빛이 스르륵 사라졌다.
일단 살려는 두겠다.
재능은 형편없지만, 죽지 않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다.
앞으로 겪을 일에 비하면 지금은 소풍이다.
치우천왕의 말투가 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도현은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등줄기로 서늘한 게 훑고 지나갔다.
소풍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들린 적이 없었다.
이도현이 속으로 삼켰다.
치우천왕이 돌아서며 손짓했다.
따라와라.
서서 구경할 시간은 지났다.
이도현은 그제야 다리가 풀린 걸 실감했다.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야 했다.
그럼에도 걸음을 옮겼다.
지금 멈춰 서면 정말로 저 도끼가 다시 날아들 것 같았다.
등 뒤로 도끼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캉, 캉.
발걸음마다 그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이도현은 생각했다.
최하급 재능으로, 최하급 신체로, 속성 친화력 하나 없이.
대체 뭘 어떻게 버티라는 건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확신처럼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