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삼십 년 만의 귀환자

4화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숙소 방 안에는 낡은 촛대 하나만 켜져 있었다. 벽에는 누군가 남기고 간 낙서들이 빼곡했고, 바닥에는 얇은 담요 세 장이 나란히 깔려 있었다. 서연은 담요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고, 지은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물병을 만지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아서 한참을 망설였다. "할 말 있으면 해." 서연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표정이 이상했어." 나는 손끝으로 담요 끝을 만지작거렸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사실 이 세계 사람이 아니야."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연과 지은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촛불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서연이 물었다. "다른 세계에서 왔어. 지구라는 곳에서." 내가 대답했다. 지은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럼 여기 어떻게 온 거야?" 나는 그날의 기억을 천천히 풀어냈다. 학교 견학, 무너지는 발밑, 그리고 눈을 떴을 때의 낯선 숲. 그날의 공기 냄새, 흙바닥의 서늘함, 멀리서 들리던 이상한 새 울음소리까지 하나씩 말로 옮겼다. "처음엔 꿈인 줄 알았어." 내가 말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도 안 깨어나더라." 말을 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감정이 조금씩 올라오는 걸 느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어." 내가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부모님이랑 여동생이 있었어." "여동생?" 지은이 물었다. "이수진. 나보다 세 살 어려." 내가 대답했다. "맨날 내 방에 들어와서 리모컨 뺏어가는 애였어." 말을 하다 보니 목이 메어왔다. "엄마가 저녁밥 차려놓고 기다렸을 텐데... 나는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수진이 방에 걸린 시계, 그 초침 소리까지 기억나는데." "이제 그 방에 내가 없다는 거잖아."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은 검처럼 단단한 굳은살이 박여 있었지만, 잡는 힘은 조심스러웠다. 지은은 등을 쓰다듬어줬다. 느리고 규칙적인 손길이었다. "돌아갈 방법 찾은 거야?" 서연이 물었다. "아니, 아직. 하지만 언젠가 찾을 거야."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 세계에 30년째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대." 지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이가 되긴 되는데, 돌아가는 방법은 아직 아무도 몰라."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30년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에서 무겁게 내려앉았다. '30년이나 여기 있어야 한다고?'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럼 나는 마흔다섯이 되겠네. 수진이는 마흔둘이 되고.' '엄마 아빠는... 그때까지 살아 계실까?'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며 그 생각을 지웠다. "난 반드시 돌아갈 거야." 내가 다시 말했다. 서연이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손톱이 살짝 파고들 정도로 힘이 들어갔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위저드 중에는 공간계 마법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내가 알아볼게." 지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교회 자료실에 그런 기록이 있는지 찾아볼게." "거기 오래된 문서들이 많이 쌓여 있어서, 뭐라도 나올 수도 있어."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15년을 살아온 세계에서 갑자기 끌려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던져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조금은 덜 외롭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만은 믿어도 되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촛불이 다 타서 꺼질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무도 먼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 셋은 서로의 비밀을 나눈 사이가 됐다. 조사단 안에서 우리는 늘 붙어 다녔고, 임무를 나갈 때도 서로를 우선적으로 챙겼다. 식사 시간에도 셋이서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서연은 틈틈이 도서관에서 공간마법 관련 서적을 찾아 나에게 보여줬다. 대부분은 실패한 실험 기록이거나, 이론뿐인 논문이었다. 페이지마다 곰팡이 냄새가 났고, 표지는 손이 닿을 때마다 부서질 것처럼 낡아 있었다. "이건 좀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서연이 어느 날 낡은 책을 펼치며 말했다. 책장은 벌레 먹은 흔적이 가득했고, 표지에는 '균열 연구 보고서'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던전 최심부에 있는 균열들 중에,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것도 있다는 기록이야." "근데 위험하대." 지은이 옆에서 덧붙였다. "균열에 들어가면 어디로 튕겨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고 해." "기록에 있는 사람들 중 절반은 돌아오지도 못했대." 나는 그 기록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위험하다는 경고보다, '가능성이 있다'는 문장이 더 크게 눈에 들어왔다. 그 문장 하나를 손끝으로 몇 번이나 짚어보았다. '절반이라도, 나머지 절반은 돌아왔다는 거잖아.'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나는 그 절반에 들면 돼.' 그해가 지나가고, 조사단은 점점 규모를 키워갔다. 처음에는 스무 명 남짓이던 인원이 어느새 백 명을 넘겼다. 조성재의 위상도 함께 높아졌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그의 말 한마디에 임무 배치가 바뀌곤 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세 사람의 관계에 조용히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서연과 지은은 그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미묘한 공기를 느끼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했다. 한 달 후, 조사단 전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던전 공략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전 회의실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고, 게시판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종이 앞에 서서, 내 이름이 참가자 명단 어디에 적혀 있는지 눈으로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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