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쿵!
짧은 충돌음이 공터를 울렸다. 곽대웅의 두 번째 주먹이 도윤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갔고, 도윤은 그 힘을 흘려보내며 상대의 팔을 가볍게 밀어냈다. 별다른 힘을 쓴 것 같지 않았는데, 곽대웅의 몸이 크게 휘청이며 앞으로 쏠렸다.
쿠당탕!
곽대웅이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흙먼지가 확 일었다. 주변에 둘러선 아이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정적. 매미 울음소리만이 그 정적을 메웠다.
"......뭐?" 곽대웅의 뒤에 있던 소년 하나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도윤은 재빨리 뒷걸음질을 치며 놀란 얼굴을 만들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리고, 두 손을 허공에 어색하게 휘저었다. 시골 아이가 얼떨결에 일을 낸 뒤 짓는 표정으로는 이만하면 백점이었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몸이..." 겉으로는 얼떨결에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완벽하게 계산된 결과였다. '체중 이동을 그대로 방향만 틀어준 것뿐이다. 힘의 크기를 보여주면 안 돼. 저 녀석의 팔뚝 힘 정도야 손가락 하나로도 끊어낼 수 있거늘, 여기서 그런 걸 보였다간 내일부터 마을 전체가 요괴 잡는다고 몰려올 터. 이 정도가 딱 알맞다.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곽대웅은 코피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콧구멍에서 흐른 붉은 피가 흙바닥에 점점이 떨어졌다.
"너, 너 이 새끼..."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인지 당황인지 구별하기 힘든 떨림이었다.
"그, 그만해!" 도윤이 다시 겁먹은 목소리를 냈다. 눈꼬리를 살짝 내리고, 입술을 파르르 떠는 것까지 곁들였다. "난 그냥 넘어졌을 뿐인데... 진짜야,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몰라..."
'너무 과하면 의심을 사겠지. 이 정도의 억울함, 이 정도의 무지함. 딱 열네 살배기가 할 법한 표정이면 되었다.'
그 말에 오히려 주변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쟤가 지금... 곽대웅을 넘어뜨린 거야?"
"저 덩치를 저렇게 쉽게?"
"아까 봤어?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도윤의 귀에까지 들렸다. 소문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었다. 아이들 특유의 과장된 상상력이 붙으면 어디까지 커질지 모를 이야기였다. '좋다. 딱 이 정도의 소문이면 된다. 진실의 절반은 숨기고 절반만 보이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이거늘.'
곽대웅은 다시 달려들려 했지만, 함께 온 소년 하나가 팔을 붙잡았다.
"됐어, 그만해. 사람들 다 보고 있잖아."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이 그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던 탓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퇴각이었다. 곽대웅은 도윤을 한 번 더 노려본 뒤, 씩씩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어깨는 여전히 들썩였고, 걸음걸이는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고 보자, 이도윤." 마지막 말을 던지고, 세 소년은 공터를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이 골목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남은 아이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남은 아이들의 시선이 도윤에게 집중되었다. 열 개, 스무 개의 눈동자가 그를 훑고 지나갔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니었어. 진짜로 운이 좋았을 뿐이야." 겉으로는 겸손한 아이의 말이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정도 소문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명분이 생기겠지. 재능 있는 아이. 관심을 끄는 아이. 그런 껍데기 하나쯤은 있어야, 이 몸이 원하는 걸 손에 넣기 편해질 터.'
한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도윤아, 너 혹시... 무술 배운 적 있어?"
"아니? 나 그런 거 배운 적 없는데." 도윤은 눈을 깜빡이며 진심으로 궁금한 척 되물었다. "근데 왜 그런 걸 물어?"
아이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 반응이야말로 도윤이 원하던 것이었다. 궁금함, 의심, 그리고 확신하지 못하는 애매함. 그 세 가지가 뒤섞인 시선이야말로 지금 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소문은 이미 마을 전체에 퍼져 있었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아낙들 사이에서도, 밭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농부들의 걸음 사이에서도 그 이야기가 오갔다. 저녁상을 준비하던 한소영의 귀에도 이야기가 들어갔다.
"도윤이가 곽씨네 대웅이를 넘어뜨렸다던데, 그게 정말이니?"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놀라움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손에 든 나물을 무치던 손길이 잠시 멈췄다.
"그냥... 얼떨결에요." 도윤이 숟가락을 만지며 시선을 피했다. 밥상 위로 김이 오르는 나물국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냄새였다.
"얼떨결이라니, 그 애가 너보다 두 배는 크다던데." 한소영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도윤의 얼굴을 살폈다. "다친 데는 없니? 어디 맞은 데 없어?"
"없어요, 진짜 없어요." 도윤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 손짓을 보며 한소영은 안심한 듯 작게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이건우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바라보았다. 낮에 본 장작더미 사건과 방금 들은 소문이 겹쳐지며,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확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 아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숟가락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국그릇으로 향했다.
도윤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태연하게 밥을 먹었다. 속으로는 다른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사람, 무인이니 무언가 눈치를 챘을 터. 하지만 캐묻지 않는다. 그것이 이 사람의 방식인가, 아니면 그저 아직 확신이 없는 것인가.'
이건우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밥그릇을 조용히 아들 쪽으로 밀어주었다.
"많이 먹어라."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무뚝뚝한 배려에 도윤은 잠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사람, 눈치는 챈 것 같은데. 굳이 묻지 않는군.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아버지라는 존재의 무게가 새삼 낯설고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서른 해 넘게 살아오며 온갖 위험과 책임을 감당해왔던 몸이었으나, 이런 식의 조용한 관심은 처음이었다.
한소영이 국그릇을 하나 더 채워주며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싸움 같은 거 하지 마. 다치면 큰일이야."
"네, 안 할게요." 도윤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하게 웃었다. '싸움이라... 저것들이 먼저 걸어온 것을, 이 몸이 어찌 마다할 수 있었으랴.'
저녁상이 정리되고, 방 안에 등불이 켜졌다. 도윤은 이불 위에 누워 낮의 일을 되짚었다. 곽대웅의 표정, 아이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그 소문이 퍼져나가는 속도까지.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이제 이 마을에서 이도윤이라는 이름이 조금씩 무게를 갖기 시작하겠지. 그다음은...'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늦은 밤, 싸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쾅쾅쾅!
집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등불의 그림자가 벽에서 흔들렸다.
"이건우! 안에 있는가!" 굵고 위압적인 목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이건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밥상을 치우던 손이 멈췄고, 방금까지 편안했던 어깨가 순식간에 긴장으로 뭉쳤다.
"적하무관의 교두님이시다." 그가 낮게 중얼거리며 서둘러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걸이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예의를 갖추려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긴장감.
한소영도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길래."
도윤은 이불에서 몸을 일으켰다. 문틈으로 바깥을 살폈다. 등불 아래 서 있는 중년 남자는, 이건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깨에 걸린 검, 단단히 다져진 몸, 그리고 무엇보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산처럼 버티고 선 그 존재감은 조그마한 마당을 순식간에 무겁게 짓눌렀다.
'저 정도 기운이라면...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로군.' 도윤의 속에서 오랜 세월 쌓인 감각이 조용히 반응했다. '무공을 익힌 지 오래, 그것도 제법 깊이 익혔구나. 이 시대의 인간으로서는 나름 괜찮은 수준인가.'
이건우가 문을 열자, 교두는 마당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 발걸음 하나에도 절도가 있었다. 등불에 비친 얼굴은 굳고 단단했으며, 눈빛은 마당 곳곳을 훑듯이 움직였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교두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건우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애써 감춘 불안이 배어 있었다.
교두는 대답 없이 잠시 마당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문틈 사이, 안쪽에 서 있는 작은 형체에 닿았다. 그 눈빛이 지금, 마당 안쪽에 숨어 있는 도윤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날카롭고도 신중한 시선이었다.
도윤의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긴장감이 흘러내렸다. '저 사람... 낮의 일 때문에 온 건가.'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겉으로는 아이답게 눈을 크게 뜨고 그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몇 가지 가능성을 빠르게 헤아리고 있었다. '곽대웅 그 아이의 부모가 무관에 항의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저 눈빛, 단순한 항의를 하러 온 자의 눈빛이 아니다. 무언가를 시험하려는 자의 눈빛이거늘.'
교두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쳤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윤은 아직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