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웃으며 유산만 챙기겠습니다

1화

장례식장의 향 냄새는 언제나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걸, 나는 시어머니의 영정 앞에 세 번째 절을 올리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이 와중에도 향 냄새 감상이라니, 나도 참 대단하다.' 절을 마치고 일어서는 다리가 살짝 저릴 만큼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도, 정작 마음속에서는 슬픔보다 이상한 종류의 침묵이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최정숙 여사의 영정 속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젊고 온화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마지막 반년 동안 병상에서 살이 많이 빠지고 눈가에 그늘이 깊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 넓은 대청에서 나와 근호 아저씨뿐일 거라는 생각이 스치자 괜히 서글퍼졌다. 사진관에서 손을 봐서 그런 건지, 원래 남기고 싶었던 얼굴을 골라 걸어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저 사진 속 여자는 병실 침대에서 링거 줄을 매달고 내 손을 붙잡던 그 사람과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문객들은 청암 강씨 가문의 위세에 걸맞게 줄지어 들어와 향을 올리고 나갔으며, 그 사이사이 낮게 오가는 수군거림이 상복 자락 스치는 소리와 뒤섞여 대청을 채웠다. "그래도 며느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다행이지." "저 집 아들내미는 원래 저렇다니까요." 귀에 들려오는 말들은 대부분 나와 도현에 대한 평가였는데, 정작 그 평가를 듣는 당사자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척 앉아 있어야 했다. 나는 상주 옆자리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조문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는데, 옆에 앉은 남편 강도현은 딱 세 번 고개를 숙이고는 그 이후로는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무언가 다른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옆얼굴은 조각가가 정성껏 깎아놓은 대리석 석상처럼 흠 하나 없이 단정했지만, 그 안에 슬픔이 담겨 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는지는 겉모습만 봐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딴생각에 빠져 있을 수 있는 것도 재주지.' 나는 그 옆얼굴을 흘겨보다가 다시 시선을 거둬들였고, 도현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원래 이런 식이라는 걸 오 년째 결혼 생활을 하며 이미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새삼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한 번은 그가 상단 간부 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딱 저런 표정으로 공문을 검토하던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저 사람에게 감정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궁금했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같은 표정을 다시 보고 있자니 그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남들 앞에서 꺼내놓지 않는 종류의 사람일 뿐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친어머니라는 점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대청 한쪽에서 근호 아저씨가 조문객들에게 자리를 안내하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암 강씨 가문의 집사로 삼십 년 가까이 일한 그는 최정숙 여사가 가장 신뢰하던 사람이었고, 나 역시 시집온 첫날부터 그의 손을 빌리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 그는 상복을 갖춰 입은 조문객들 사이를 오가면서도 틈틈이 이쪽을 살피는 눈치였는데, 그 시선이 나를 향할 때마다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문 행렬이 잠시 끊긴 틈을 타 그가 내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을 좀 드시라고 권했을 때, 나는 그 짧은 한마디 속에 담긴 진심 어린 염려를 놓치지 않고 옅게 웃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대답은 짧았지만 근호 아저씨는 내 얼굴을 잠깐 더 살피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고,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 가문에서 진짜로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몇이나 남았는지 손가락으로 꼽아보다가 금세 그만두었다. 손가락이 다 접히기도 전에 답이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근호 아저씨 하나. 그거면 이 넓은 대청에서 셀 사람은 다 센 셈이었다. 물러가는 그의 걸음이 살짝 느려지는 걸 보며, 나는 그가 삼십 년 동안 이 집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삼켰을지 잠깐 궁금해졌다. 최정숙 여사가 병상에 눕기 전까지, 이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죄다 그의 손을 거쳐 갔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그 손이 향할 곳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서만큼은 그가 나에게 향해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내게 유독 각별했던 분이었다. 친정에서 정략의 대가로 이 집안에 넘겨지듯 시집왔을 때, 나는 그저 청암 강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장부 위의 이름 하나에 불과했는데, 최정숙 여사만은 나를 딱딱한 계약서 조항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너도 여기서 숨 좀 쉬고 살아야지" 하고 말했었는데, 그 말 한마디가 그때는 얼마나 낯설고 또 얼마나 반가웠는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병상에서도 종종 내 손을 잡고 "너는 이 집구석에서 제일 똑똑한 애야"라고 말씀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는데, 그 목소리가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향 냄새보다 더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갔던 날, 그녀는 야윈 손으로 내 손등을 몇 번이고 쓸어내리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이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이제는 영영 물어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똑똑한 애치고는 이 결혼 생활을 참 오래 버텼지.' 나는 속으로 자조하며 다시 허리를 곧게 폈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대청의 높은 천장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걸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이 집안에서 오 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되짚어보았다. 결혼식 날 도현이 짓던 무표정한 얼굴, 신혼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다녀온 사업상 출장, 명절마다 오가던 형식적인 인사말들.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를 사람으로 대해준 건 오직 최정숙 여사뿐이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아프게 다가왔다. 조문이 얼추 마무리되어 갈 무렵,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 밖으로 나가려 했다. 상주가 조문 시간 내내 자리를 비운다는 건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얼굴로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나를 향해 짧게 말을 건넸다. "곧 이야기 좀 하지." 그 말투에는 어머니를 여읜 슬픔이라고는 한 톨도 묻어 있지 않았고, 오히려 다음 일정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사무적이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곧았고, 넥타이를 매만지는 손끝조차 침착했는데, 그 침착함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슬프지 않아서 침착한 것과, 이미 다음 단계를 계산해두어서 침착한 것은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속은 전혀 다른 법이었다.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짧은 한마디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서곡이라는 걸 그 순간에는 어쩐지 예감했던 것 같다. 대청을 빠져나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이 집안에 남은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향 냄새보다 먼저 감지하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문 쪽에서 잠시 서늘한 바람이 흘러들어왔고, 나는 그 바람이 단순한 계절의 흔적이 아니라는 걸, 어쩐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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