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숲은 어두웠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조차 희미해서, 이청은 발밑을 살피며 걸음을 옮겨야 했다. 사흘째였다. 사흘 동안 그는 먹은 것도 없이 산길을 헤맸고, 등 뒤에서는 여전히 그 검은 기척이 떠나지 않았다.
발바닥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짚신은 어디선가 벗겨져 사라졌고, 맨발에 박힌 잔가지들이 걸음마다 살을 찔렀다. 배 속은 텅 비어 뒤틀렸지만, 배고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등 뒤의 서늘함이었다.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쉬지도, 숨을 고르지도 않았다. 그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이청은 나무 둥치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품속의 목함이 옷깃에 눌려 딱딱하게 느껴졌다. 이것만은, 이것만은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이라는 것만은 어렴풋이 짐작했다.
히힝―
어딘가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청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 나뭇잎 사이로 횃불의 빛이 어른거렸다. 여러 개의 불빛이었다.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을 구해줄 사람인지, 쫓는 자인지 알 수 없었다.
이청은 숨을 죽이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손끝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발소리, 말발굽 소리, 낮은 대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중 누군가가 검을 뽑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청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거기, 누구냐!"
날카로운 외침이 숲을 갈랐다. 이청은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달렸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긋고, 돌부리에 발끝이 걸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고꾸라졌다. 흙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서려는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확 밀려들었다.
귀도지네였다.
사흘 동안 그를 쫓던 그 검은 것이, 마침내 손을 뻗을 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안개 같은 형체가 소년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가운 냉기가 목덜미의 잔털을 곤두세웠다. 이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끝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서걱―
칼날이 무언가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눈을 뜨자, 한 여인이 그의 앞을 막아서 있었다. 검은 무복에 은빛 검,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의 눈매가 형형하게 빛났다. 그녀의 검끝에서 희미한 기운이 흘러나와 안개를 밀어내고 있었다.
"물러서라, 귀물(鬼物) 따위가."
여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숲을 뒤흔들 만한 무게가 있었다. 그녀의 검이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서걱―. 검은 안개가 흩어지며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사람의 목소리도, 짐승의 울음도 아닌 그 소리에 이청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안개는 결국 뒤로 물러나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주위에서 횃불을 든 무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쓰러진 이청과 여인 사이를 오갔다.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귀도지네가 정말 있었군." 다른 누군가는 이청의 남루한 행색을 훑으며 미심쩍은 눈빛을 던졌다.
여인은 검을 거두고 이청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소년의 얼굴과 손, 발끝의 상처까지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이름이 뭐지?"
"…이청." 소년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사흘 동안 제대로 말을 한 적이 없어서인지,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이청." 여인이 짧게 되뇌었다. "나는 손이화라 한다. 유풍학원(儒風學院) 흑기(黑旗)의 원장이지." 그녀는 소년의 몰골을 훑어보다가 품속에서 목함이 삐져나온 것을 보았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다만 그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소년의 눈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일단 걸을 수 있겠느냐?"
이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멈추면 안 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손이화가 손을 내밀었다. 이청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잡았다. 손바닥에 닿은 온기가 낯설었다.
***
유풍학원은 산 중턱에 자리한 거대한 전각군이었다. 담장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코끝을 스치는 것은 향나무 냄새였고, 그다음은 낮게 울리는 종소리였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다. 이청은 낯선 공기 속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이곳은 그가 알던 세상과는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돌길을 따라 늘어선 전각마다 불빛이 새어 나왔고, 마당을 지나는 무사들의 발걸음은 절도가 있었다. 누구 하나 이청을 함부로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는 시선들이 스치듯 그를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손이화는 그를 흑기 처소의 한 방으로 데려갔다. 방은 작았지만 깨끗했다. 구석에 이불이 개켜져 있었고, 창가에는 낡은 서안이 놓여 있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라. 옷가지는 곧 가져다주마."
그녀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빼꼼 열렸다. 작은 얼굴 하나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 어… 저기, 오, 옷 가져왔어요." 여덟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말을 더듬으면서도 눈빛만은 또랑또랑했다. 보따리를 두 팔로 꽉 끌어안고 있었는데, 몸집보다 짐이 더 커 보였다. "저, 저는 독고소은이에요. 소, 손이화 원장님 딸이에요."
이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아이가 내미는 옷 보따리를 받아 들었을 뿐이었다. 낡았지만 깨끗하게 손질된 옷이었다. 옷감에서 은은한 볕 냄새가 났다.
소은은 방 안으로 살짝 들어와 이청의 발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상처투성이인 맨발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바, 발… 아파요? 저, 저기 약도 있는데, 가, 가져다드릴까요?"
이청은 고개를 저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은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옷 보따리 위에 슬쩍 마른 떡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 이거 먹어요. 배고프면 힘이 없어져요."
"추, 춥죠? 이거 입으면 좀 나, 나을 거예요." 소은이 배시시 웃었다. "여기 있으면… 괜, 괜찮아요. 아무도 안 잡아가요."
그 말에 이청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그저 옷을 꼭 끌어안았을 뿐이었다.
소은은 더 말을 붙이려다가, 그의 표정을 읽었는지 조용히 문을 닫고 물러갔다. 작은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그날 밤, 이청은 처음으로 지붕 아래에서 잠들었다. 이불은 낯설었지만 따뜻했고, 창밖으로 스며드는 종소리는 사흘간의 어둠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눈을 감아도 등 뒤로 스며들던 그 서늘한 기운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품속의 목함은 여전히 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을 쥔 손끝에, 알 수 없는 무게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