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이후 학원 안의 공기는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회랑을 오가는 걸음마다 낮은 목소리가 따라붙었고, 그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같은 이름을 향해 있었다. 백기 처소 쪽에서 흘러나오는 소문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저자질 아이를 받아들인 흑기의 판단이 학원 전체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이야기가, 제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녔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쳤고,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렸으며, 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침묵조차 소문의 일부가 되어 학원 전체를 덮었다.
원장실 안,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서류 더미를 살짝 들썩였다. 조엄관은 그 서류를 붙잡으며 이효운을 마주 보고 섰다.
이효운, 이청의 큰아버지이자 유풍학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형 이효림의 얼굴을 어렴풋이 닮은 구석이 있었으나, 눈빛만은 훨씬 무겁고 신중했다. 형처럼 쉽게 웃지 않았고, 형처럼 쉽게 노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침묵의 깊이가 형보다 훨씬 깊었다.
"원장님, 그 아이는 경맥 셋이 막혀 수련조차 불가능한 몸입니다." 조엄관이 언성을 높였다.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게다가 정체도 불분명하지 않습니까. 제자들 사이에서 이미 말이 많습니다. 흑기 전체의 체면이 걸린 문제입니다."
"내 조카일세." 이효운이 낮게 답했다.
조엄관의 눈이 커졌다. 순간 그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이네." 이효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하늘이 흐렸고, 먼 산등성이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바람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허나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어."
"이유라 하시면―"
"자네가 알 필요는 없네." 이효운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날이 섰다. 조엄관은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대성 제국 쪽에서 항복을 요구하는 서신이 다시 도착했네. 지금은 학원 내부의 분란까지 감당할 여유가 없어."
조엄관은 손에 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표정만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원장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에는 풀리지 않은 의문이 그대로 얹혀 있었다.
이효운은 홀로 남아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먹구름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형님, 이 아이를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 겁니까."
대답은 없었다. 바람 소리만이 창틈을 스치고 지나갔다.
***
같은 시각, 위덕수는 학원 외곽의 산길을 홀로 걷고 있었다. 그는 이효림의 옛 측근으로, 이청을 뒤에서 지키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소년이 학원에 정착한 뒤로도, 그는 매일 밤 학원 주변을 살피며 귀도지네의 흔적을 쫓았다. 낮에는 평범한 노인처럼 학원 뒤편을 오가며 잡일을 거들었지만, 밤이 되면 그의 눈빛은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
산길은 좁고 험했다.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희미했고, 나무 그림자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위덕수는 그 그림자들 사이를 지나며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날 밤도 그러했다. 산길 초입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아니었다. 뼈 속까지 파고드는, 낯선 한기였다. 위덕수는 걸음을 멈추고 검을 뽑았다. 검신에 맺힌 이슬이 달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어둠 속에서 안개 같은 형체가 스며 나왔다. 지난번보다 훨씬 짙고, 훨씬 컸다. 마치 여러 번의 실패 끝에 힘을 키워 온 것처럼, 그 안개는 산길 전체를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나뭇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조차 그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위덕수는 숨을 고르며 자세를 낮췄다. 노쇠한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번엔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
서걱― 콰앙―
검과 그림자가 부딪히는 소리가 산길을 울렸다. 위덕수의 몸놀림은 노쇠했음에도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러나 상대는 인간의 검술로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검이 안개를 갈랐다고 생각한 순간, 안개는 이미 다른 형태로 재조합되어 있었다. 안개의 손이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통증이 뒤늦게 번졌다.
"크윽―"
위덕수는 이를 악물고 검을 고쳐 잡았다.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옷자락을 적셨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자세를 잡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학원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청이었다. 잠에서 깨어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뛰쳐나온 것이었다. 맨발이었다. 잠결에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오직 이 기운을 향해 무작정 달려온 얼굴이었다.
"위 할아버지!"
"오지 마라!" 위덕수가 외쳤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러나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손에는 어느새 나뭇가지를 무기 삼아 쥐고 있었다. 얇고 볼품없는 나뭇가지였지만, 소년의 손아귀에는 그것이 마치 검이라도 되는 양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할아버지, 그거 놔두고 이리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림자가 몸을 뒤틀며 위덕수를 덮쳤다. 노인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둔탁한 소리가 산길을 울렸다.
"으윽―"
이청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리가 저절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저 안개를 걷어내야 한다는, 그 하나의 충동만이 소년을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안개가 위덕수를 완전히 집어삼키려는 찰나, 노인은 마지막 힘을 다해 소년을 향해 외쳤다.
"청아, 도망쳐! 그 문장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개는 그를 통째로 삼키고 산 아래 어둠 속으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덕수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그 뒷말은 끝내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
이청은 나뭇가지를 움켜쥔 채, 위덕수가 사라진 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발바닥은 돌부리에 긁혀 피가 배어 나왔지만, 소년은 그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핏자국 몇 방울과, 흙 위에 깊게 파인 발자국뿐이었다.
소년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손끝이 떨렸고,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방금까지 눈앞에서 있었던 사람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위덕수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아니면 어딘가로 끌려간 것인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소년은 흙바닥에 손을 짚은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산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무엇도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멀리서, 학원 쪽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청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도움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위험을 향한 것인지, 소년은 판단할 겨를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