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새벽 공기는 칼날처럼 예리했다. 강씨 가문의 뒷산, 인적 없는 계곡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은 강하늘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그 땀방울이 턱 끝에 매달려 떨어질 때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새벽의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으나, 몸속에서 끌어올린 기운이 온몸을 태울 듯이 뜨거워, 겉과 속이 서로 다른 계절을 사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단전(丹田) 안쪽에서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으나, 그 기운은 언제나 그렇듯 특정한 지점—인기후기(引氣後期)의 벽이라 불리는 곳—에 다다르는 순간 흩어지고 말았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아무리 끌어모아도 결국은 새어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강하늘은 다시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단전 깊은 곳에 흩어진 기의 잔재를 다시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셀 수 없이 반복해온 과정이었다. 기가 단전을 벗어나 경맥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는 마치 얇은 유리 위를 걷는 듯한 긴장이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대로 산산이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가 경맥의 굽이를 돌아 벽 앞에 다다르는 순간, 강하늘은 온 신경을 그 한 점에 집중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듯한 압박감 속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기운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빠르게 흩어져버렸다.
"흐읍—!"
강하늘은 신음을 삼키며 앞으로 몸을 숙였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고, 손끝까지 떨림이 전해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실패였다.
무공을 익힌 지 벌써 17년, 그중에서도 인기후기의 벽 앞에서 멈춰선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강씨 가문의 아이들은 보통 열 살 전후로 파범경(破凡境)에 이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나, 강하늘은 열일곱이 된 지금까지도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그를 안타깝게 여겼다. 족장의 아들이니, 언젠가는 벽을 넘으리라 믿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믿음은 조소로 변했고, 조소는 다시 무관심으로 굳어져갔다. 가문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족장의 아들이라 부르지 않았다. '폐물(廢物)'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이름을 대신한 지 오래였다.
"또 실패인가."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박만복, 조부 때부터 가문을 섬겨온 늙은 가신이자 강하늘을 어릴 적부터 손수 길러낸 이였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지팡이를 짚은 채 계곡 어귀에 서서, 안타까운 눈으로 강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흰 머리카락이 새벽바람에 흔들렸고, 깊게 팬 주름 사이로는 오랜 세월 쌓인 걱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 노야." 강하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숨을 골랐다. 다리가 후들거려 자칫 넘어질 뻔했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잡았다. 이만큼 기를 끌어올렸다가 놓쳐버리기를 반복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괜찮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오래 버텼습니다."
"오래라 함은, 얼마나 말입니까." 박만복이 지팡이를 짚으며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걱정이 배어 있었다.
강하늘은 잠시 대답을 미뤘다. 정확한 시간을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탓이었다. "...세 호흡 정도였습니다."
박만복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앙상한 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만큼은 진심이었다. "도련님, 그만 내려가시지요.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그 한마디에 강하늘의 얼굴에서 미세한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가 부른다는 것은, 대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최근 몇 달 사이, 아버지의 부름은 언제나 무거운 이야기로 이어졌다. 가문의 후계, 대장로전의 압박, 그리고 강하늘 자신의 미래에 관한 것들.
"...무슨 일로 부르신다 하셨습니까?"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박만복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로께서 오늘 아침 가주님을 찾아뵈었다 들었습니다."
강하늘의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대장로가 아버지를 찾아왔다는 것은, 필시 그와 관련된 이야기였을 터였다. 가문 내에서 대장로의 목소리는 족장의 목소리와 맞먹을 만큼 컸고, 최근 들어 그가 가문의 후계 문제를 두고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참이었다.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강하늘은 말이 없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대신 가문 저택의 기와지붕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젖은 옷자락이 다리에 감겨왔고, 새벽 이슬에 젖은 풀잎들이 발목을 스쳤다. 그 서늘한 감촉이, 마치 지금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대문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시종들의 눈빛에는 언제나 미묘한 동정과 조소가 섞여 있었다. 족장의 아들이면서도 열일곱이 되도록 파범경조차 넘지 못한 아이. 그것이 그들의 눈에 비친 강하늘의 전부였다. 어린 시종들은 그가 지나가면 슬쩍 고개를 돌렸고, 나이 든 하인들은 짧게 예를 갖추었으나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언제나 의심스러웠다.
"저기 폐물 도련님 지나가신다."
담벼락 뒤에서 누군가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낮은 웃음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강하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익숙해졌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볼 만큼 어리지도 않았다. 그저 앞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박만복이 그의 곁에서 낮게 헛기침을 했다. 그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마시라'는 뜻이었다. 강하늘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족장의 처소에 들어서자, 강태웅은 책상 앞에 앉아 문서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짧은 시간 사이에도 몇 겹의 주름이 더 늘어난 듯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그의 옆얼굴을 비추었고, 그 빛 속에서 강태웅은 유독 늙어 보였다. 강하늘이 예를 갖추어 절하자, 강태웅은 문서를 내려놓고 오랫동안 아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얼마나 버텼느냐."
"...세 호흡 정도였습니다."
강태웅의 입가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것은 실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슬픔에 가까운 것이었다. "세 호흡이라." 그가 되뇌었다. "열 살짜리 아이도 그 정도는 버틴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강태웅이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정원 너머로 대장로전의 지붕이 보였다.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강하늘은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평소와는 다른 종류의 무게를 느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강태웅의 시선은 여전히 정원 너머 대장로전의 지붕에 머물러 있었고, 강하늘은 감히 먼저 입을 열 수 없었다. 처소 안에는 오직 문서 넘어가는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대장로께서 다녀가셨습니까." 마침내 강하늘이 조심스레 물었다.
강태웅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근심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박 노야에게서 들었습니다."
강태웅은 짧게 헛웃음을 지었다. "그 늙은이, 입이 가볍구나."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노기보다는 오히려 안도가 섞여 있었다. 마치 아들에게 굳이 자신의 입으로 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안도였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강태웅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가 굳이 알 필요는 없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으나, 그 안에 담긴 떨림은 숨길 수 없었다. "다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만 알아두어라."
강하늘은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리려 했으나,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손을 내저어 물러가라는 뜻을 전할 뿐이었다.
처소를 나서는 강하늘의 발걸음은 처소에 들어설 때보다 더 무거웠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그 한마디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으나,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날 밤, 강하늘은 잠들지 못했다. 방 안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어째서 자신만이 이토록 무공에서 뒤처지는지를 곱씹었다.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수련했다. 남들이 하루에 한 시진을 앉아 기를 다스릴 때, 그는 세 시진을 앉아 있었다.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몇 겹으로 겹쳐 박였고, 무릎에는 오랜 가부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벽 앞에서 멈추고, 흩어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왜일까.'
강하늘은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다. 재능이 없는 것인가, 노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하늘이 그에게 무공을 허락하지 않은 것인가. 어느 쪽이든,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무거운 침묵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달빛이 희미하게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이 방바닥 위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렸고, 강하늘은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뒤척였다. 아버지의 말이, 대장로의 이름이, 그리고 열일곱 해 동안 넘지 못한 벽이, 모두 뒤섞여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런데 그날 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잠들기 직전, 반쯤 감긴 눈으로 어둠을 응시하고 있던 강하늘은 문득 단전 깊은 곳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각을 느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마치 무언가가 아주 오랜 잠에서 뒤척이는 듯한—그런 미세한 파동이었다.
그는 숨을 멈췄다.
'...뭐지?'
조심스레 의식을 단전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언제나처럼 흩어져버릴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번에는 무언가가 그 흩어짐을 붙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손끝으로 만져본다면 잡힐 듯 말 듯한, 실체 없는 그림자 같은 감각.
강하늘은 그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집중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전율이 흘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벽 앞에서 흩어지던 기운과는 전혀 다른, 마치 그 벽 너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그를 향해 손을 뻗어오는 듯한 느낌.
'이건... 대체...'
그리고 다음 순간, 그것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강하늘은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눈을 뜨고 있었다. 방금 그것이 착각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가 그의 몸 안에서 움직였는지, 그로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 단전에 의식을 집중해보았으나, 그 낯선 파동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17년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낯선 파동이, 분명히 그의 몸 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강하늘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창밖의 달빛은 여전히 방바닥 위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그 그림자 위로 강하늘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열일곱 해 동안 그를 가로막았던 벽, 그리고 그 벽 너머에서 방금 느껴졌던 낯선 파동. 그 두 가지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무관한 것인지, 그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그의 몸 안에서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