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제단 앞에 선 강하늘은 온몸의 피부가 조여드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제사실 안을 채운 기운은 마치 수백 년간 쌓여온 조상들의 무게를 대변하듯, 그의 폐부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제사실은 어두웠다. 벽 곳곳에 세워진 낡은 위패들이 희미한 등불 아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고, 그 그림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벽을 타고 꿈틀거렸다. 강씨 가문의 시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거쳐간 모든 이들의 흔적이 공기 속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그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이곳에서, 지금.'
강하늘은 눈을 감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다시금 되새겼다. 정도(正道)가 아니었다. 이것은 금기였다. 족장의 아들이, 원로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구해온 위험한 단약을 삼키는 것이.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질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그 모든 두려움을 짓눌렀다.
'지금이다.'
그는 품속에서 파범단을 꺼내 입에 넣었다. 단약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뱃속에서 폭발적인 열기가 솟구쳤다. 마치 용암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듯한 격통이었다. 그는 신음을 억누르며 가부좌를 틀고 의식을 단전 깊은 곳으로 밀어넣었다.
순간, 단전 안에서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파범단의 기운이 그가 그동안 쌓아온 미약한 진기와 뒤섞이며 폭풍처럼 휘몰아쳤고, 그 격류는 곧 인기후기의 벽을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벽이 흔들렸다.
17년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던 그 견고한 경계가, 처음으로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하늘은 이를 악물며 그 균열을 향해 남은 모든 기운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파범단의 기운은 너무나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그것은 벽을 넘기 위한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혈맥을 파괴할 듯한 폭주로 변해가고 있었다.
"으윽...!"
그의 입에서 억누르지 못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온몸의 혈맥이 터져나갈 듯한 격통이 밀려왔고,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이대로라면 벽을 넘기 전에 그의 몸이 먼저 무너질 것이었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저림이 팔을 타고 어깨로, 다시 척추를 따라 온몸으로 번져갔다.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혈관 안쪽에서 동시에 터져나가는 듯한 감각. 강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가 살을 파고들어 비릿한 피맛이 혀끝에 감돌았지만, 그는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안 돼...!'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었다. 17년을 기다려온 시간이, 은밀히 파범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접촉했던 그 위험한 거래가, 모든 것이 이 한순간의 실패로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단전을 향해 의식을 더욱 깊이 밀어넣었다.
그 순간, 단전 가장 깊은 곳에서, 지난밤 느꼈던 그 낯선 파동이 다시 깨어났다.
처음에는 미약한 진동에 불과했다. 마치 깊은 우물 바닥에서 울려오는 희미한 물결처럼, 존재감조차 희박한 떨림이었다. 그러나 파범단의 폭주하는 기운이 그 파동에 닿는 순간,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존재가 눈을 뜨듯, 그것은 순식간에 존재감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강하늘의 뇌리 속으로,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언어도, 그림도 아닌, 순수한 개념 그 자체로 그의 의식 안에 새겨지는 무언가였다. 마치 태초부터 그의 몸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서적이, 지금 이 절박한 순간에 마침내 첫 페이지를 펼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운신전(氣運神典)》.
그 이름이 어디에서 떠오른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이름을, 잠시 잊고 있다가 다시 떠올린 듯한 기묘한 기시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이 순간 그의 몸을 지배하는 존재의 이름이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서적의 첫 장이 펼쳐지며, 폭주하던 파범단의 기운을 삼키고, 뒤틀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문자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혈맥을 타고 흘렀다. 각 글자가 지나갈 때마다, 그동안 제멋대로 날뛰던 파범단의 화기(火氣)가 조금씩 방향을 잃고, 이내 새로운 질서 속으로 편입되어갔다. 격통은 여전히 그의 전신을 헤집고 있었으나, 그 격통의 결이 달라지고 있음을 강하늘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기운분천결(氣運分天訣)》.
낯선 구결이 그의 의식 속에서 스스로 흘러나왔다. 그것은 누군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의 몸 안에 새겨져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진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구결의 한 소절, 한 소절이 그의 단전을 스칠 때마다, 흩어져 날뛰던 진기의 조각들이 마치 자석에 끌리듯 하나로 모여들었다.
폭주하던 기운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격통은 여전했으나, 그 격통 속에서 강하늘은 처음으로 무언가가 '통하는' 감각을 느꼈다. 지금까지 흩어지기만 했던 진기가, 이번에는 흩어지지 않고 응축되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탁류(濁流)가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맑아지는 것과 같았다. 진흙과 모래가 뒤섞여 앞을 가늠할 수 없던 물줄기가, 어느 순간 하나의 방향을 잡고 곧게 뻗어나가는 광경. 강하늘은 그 흐름의 한복판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왜 그토록 벽을 넘지 못했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그 힘을 담을 그릇이, 흐르게 할 물길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 흐름은 곧장 인기후기의 벽을 향해 밀려들었다.
쩌적-.
균열이 커졌다.
강하늘은 눈을 부릅떴다. 17년간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던 그 벽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의식을 모아 그 균열 속으로 자신의 진기를 밀어넣었다.
그 순간, 제사실 밖에서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대장로의 얼굴이 굳어졌다. 결계 너머로 느껴지는 기운의 파동이, 지금까지 어떤 시험자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이질적인 흐름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장로는 평생 강씨 가문의 제사를 관장해온 인물이었다. 수백 명의 방계 자손들이 이 제사실을 거쳐 인기후기의 벽 앞에 섰고, 그들 중 대부분은 벽을 넘지 못한 채 스러졌으며, 소수만이 파범경의 문턱을 밟았다. 그 모든 흐름을 지켜본 대장로의 눈에도, 지금 강하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낯설었다. 마치 물과 불이 동시에 흐르는 듯한, 상반된 성질이 하나의 그릇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듯한 기이한 흐름이었다.
"이것은..." 대장로가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함께, 억누르지 못한 전율이 섞여 있었다. 그의 곁에 서 있던 강태웅의 얼굴에도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강태웅은 강하늘의 아버지였다. 유독 재능이 뛰어나다 평가받아 젊은 시절 이미 파범경에 올랐던 인물이었기에, 지금 결계 너머로 느껴지는 이 이질적인 파동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대장로님, 저것이... 정상적인 흐름입니까?"
"모르겠네." 대장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60년을 이 제사실을 지켜왔건만, 이런 흐름은 처음 보는군. 마치..."
대장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무엇과 같다고 표현해야 할지조차 가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결계 너머로 전해지는 그 압도적인 이물감만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사실 안, 강하늘의 몸을 감싼 기운은 이제 그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강씨 가문 누구도 본 적 없는, 낯설고도 압도적인 흐름이었다. 붉게 타오르던 파범단의 화기가, 이제는 마치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청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으며, 그 색채의 변화는 결계 너머의 대장로와 강태웅의 눈에도 어렴풋이 비쳐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벽이 완전히 부서졌다.
쩌엉-!
제사실 전체가 진동했다. 강하늘의 눈앞에서 인기후기의 벽이 산산이 조각나며 흩어졌고, 그 조각들 사이로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파범경의 문턱이 열리고 있었다.
부서진 벽의 조각들은 마치 유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조각 하나하나가 그의 시야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강하늘은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순간을 갈망해왔는지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17년. 폐물이라 불리며 멸시받고,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던 17년의 세월이, 이 한순간의 균열 속에서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강하늘의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고, 의식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신이 방금 넘어선 것이 벽인지, 아니면 자신의 한계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전신의 혈맥이 마치 불타는 실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이내 하나둘씩 끊어지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그는 그 격통 속에서도 웃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넘어선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귓가에 들려온 것은, 제사실 밖에서 터져나온 원로들의 놀란 탄성이었다.
"저것이... 파범경의 벽을 넘었단 말인가!"
"폐물이라 불리던 아이가, 저런 재능을 숨기고 있었다니!"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여 그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이미 아득한 저편에서 울려오는 것처럼 흐릿하게 느껴졌다. 강하늘의 의식은 점점 그 소리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 강하늘은 마지막으로 하나의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고통도, 환희도 아닌, 낯선 이물감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 안에 무언가 다른 존재가 함께 깃들어 있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 《기운신전》이라는 그 이름이 다시 한번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의 시야는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제사실 밖, 결계 너머에서 대장로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계 안의 기운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으나, 그 잔향은 여전히 대장로의 살갗을 서늘하게 스치고 있었다. 그는 강태웅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태웅. 지금 당장 가주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네. 저 아이가... 우리가 알던 강하늘이 아닐세."
강태웅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결계 너머로 보이는 강하늘의 쓰러진 몸을, 그는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 몸 안에서 방금 눈을 뜬 것이 무엇인지, 그로서도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강씨 가문의 오랜 역사 속에서 오늘,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제사실 안의 등불이 흔들렸다. 위패들의 그림자가 다시 벽을 타고 길게 늘어뜨려졌고, 그 어둠 속에 쓰러진 강하늘의 몸만이, 미약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