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케이티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유하린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꺼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소영에게 들었습니다."
"공작 영애님이야 예외죠." 케이티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저희 같은 정보상 쪽에서는, 그 이름이 나오면 다들 입을 닫습니다."
"왜요?"
케이티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지하실 벽에 붙은 지도 하나를 가리켰다. 한도의 왕궁 인근을 표시한 지도였는데, 특정 구역 위에 붉은 선이 여러 겹 그어져 있었다. 선은 겹칠수록 색이 짙어졌는데, 가장 짙은 부분은 이미 붉은색이 아니라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이 구역, 최근 반년 사이에 정보상 세 명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는 게, 죽었다는 뜻입니까."
"확인은 안 됩니다. 그냥, 사라졌습니다." 케이티가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그 세 명 다, 유하린이라는 이름을 조사하던 중이었습니다."
"세 명 다 같은 조직입니까?"
"아니요. 서로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각자 다른 의뢰를 받고 움직이다가, 우연히 같은 이름에 손을 댔을 뿐입니다." 케이티가 지도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도 셋 다 사라졌다는 게, 저희 쪽에서는 우연이 아니라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서연은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세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같은 이름 하나를 파고들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은 무겁게 가슴에 얹혔다.
***
다음 날, 소영은 서연을 데리고 한도의 정보상 거리로 향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낮게 늘어선 가게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간판도 없이 문패만 걸어 둔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지나는 사람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날카로웠다.
"여기서는 눈을 너무 오래 마주치지 마." 소영이 걸으며 낮게 일러 주었다. "시비로 여기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이 거리 규칙이야. 익숙해지면 별거 아니야."
케이티가 소개한 정보상 하나는, 이름을 듣자마자 대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이름은 취급 안 합니다."
"돈은 부족하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서연이 다급히 붙잡았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애님." 남자가 목소리를 죄어 붙였다. "목숨이 문제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남자는 곧장 뒷문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서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 정도로 무서운 이름이야?'
다른 정보상은 아예 유하린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소금을 뿌리는 시늉을 했다. 소금 몇 알이 서연의 발치까지 튀어와 서연은 얼떨결에 한 발짝 물러섰다.
"저기, 굳이 소금까지는……"
"조심해서 나쁠 거 없습니다." 정보상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름 하나로 사람이 사라지는데, 소금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
세 번째 정보상은 서연 일행을 보자마자 문에 빗장을 걸어 버렸다. 두 번, 세 번 두드려도 안에서는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소문이 아니라 저주 수준이네." 소영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넷째 집도 가 볼까요."
"의미 없을 것 같은데." 소영이 골목 끝을 가리켰다. "저기 다섯 번째 집주인, 방금 우리 보고 창문 닫는 거 봤어?"
서연이 시선을 돌리자 정말로 창문 하나가 소리 없이 닫히고 있었다. 서연은 그 광경들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확신했다. 유하린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소문 이상이었다. 이 정도의 공포가 근거 없이 퍼질 리는 없었다.
***
그날 밤, 서연은 지하 은신처로 돌아와 케이티와 마주 앉았다. 하루 종일 문전박대만 당한 탓에 다리가 뻐근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람 손을 빌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케이티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 이상은, 영애님이 직접 움직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이라니요."
"정보상들이 다 몸을 사리니,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영애님이 직접 조사하는 겁니다. 저희는 뒤에서 자료로만 돕겠습니다."
"자료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라진 정보상 세 명이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이 조금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이 어디까지 알아냈는지 정도는 짜 맞춰 볼 수 있을 겁니다." 케이티가 서류철 하나를 슬쩍 밀어 두었다. "다만 이걸 넘기는 것만으로도 저는 위험을 감수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이후로는, 정말로 영애님 몫입니다."
서연은 그 말을 곱씹었다.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청하의 미래가 걸린 문제를 남에게만 맡겨 둘 수도 없었다.
"좋습니다." 서연이 마침내 결심했다. "제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케이티의 얼굴에 걱정과 안도가 뒤섞였다. 소영은 그런 서연을 보며 짧게 웃었다.
"드디어 재밌어지네."
"재미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알아. 근데 표정은 이미 재밌어 보이는데."
서연은 그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재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소영의 말대로, 이제부터의 조사가 이 소동의 진짜 시작이 될 것이라는 예감만은 틀리지 않았다.
***
같은 시각, 유가 남작가의 저택.
유하린은 창가에 앉아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여섯 소녀치고는 지나치게 차분한 눈빛이었다. 촛불 하나만 켜 둔 방 안에서, 그 눈만이 유독 또렷하게 빛났다.
시녀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였다.
"아가씨, 최근 들어 영애님 이름을 캐묻는 자들이 늘었습니다. 청하 변경백가의 이서연이라는 영애가 특히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요."
"이서연." 유하린이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듯 되뇌었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인데."
"변경 지역 출신이라 사교계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최근 한도 정보상 거리를 연달아 돌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유하린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청하의 영애가."
그 이름을 되뇌는 목소리에는, 경계보다는 흥미가 더 짙게 묻어 있었다.
"제가 경계를 붙일까요, 아가씨."
"아니." 유하린이 손을 저었다. "그냥 놔둬. 어디까지 오는지 보고 싶으니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건 저쪽이지." 유하린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내 쪽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잖아."
시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하린의 눈빛이, 흥미라는 말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무언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의 진짜 시작이었다.